쾌속의 충격, 그 한계는 없다.

글: 장인주(파리1대학 무용미학박사)
충격! , 예술작품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면 감동보다 훨씬 더 강하고 진한 감상을 의미한다. 1991년 처음으로 캐나다 현대무용단 랄랄라 휴먼 스텝스를 만났을 때의 느낌은 바로 충격! , 그 한마디였다. <에스파냐 공주>의 세계 초연이 올려진 파리의 테아트르 드 라 빌에서는 전광석화에 견줄만한 빠른 속도의 움직임으로 질주하는 루이즈 카발리에의 돌발적인 발광에 객석이 술렁였다. 여자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의 탄탄한 근육으로 잘 포장된 작은 키의 카발리에가 보여주었던, 수평으로 꼬이며 말아 뛰는 연속동작은 아직도 생생하게 그려진다. 이를 서포트하던 안무가 에두아르 록의 민첩하면서도 정제된 움직임도 미가공 상태의 원초적 에너지를 담고 있었다. 록이 직접 구상한 영상과 그 위에서 펼쳐지던 흥분과 격정의 소용돌이, 한마디로 충격! 이었다.

에두아르 록, 세계가 그를 주목하는 이유

에두아르 록은 스페인계 어머니와 모로코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모로코에서 출생한 후 캐나다로 이주한 그는 무용을 접하기 전 이미 문학과 영화를 전공한 예술학도였다. 1975년 처녀작 <도둑맞은 시간>을 발표한 후 그가 무용가로서 걸어온 행보는 여느 안무가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1985년 베시 어워드를 안겨준 <휴먼 섹스>를 계기로 그는 세계적 안무가의 반열에 우뚝 서게 되었다. 마기 마랭, 도미니크 바구에 등 프랑스 현대무용가들이 독일 표현주의와는 차별화되는 또 다른 형태의 댄스 시어터를 구축하던 시기에 에두아르 록은 새로운 조류에 영향 받지 않고 오직 ‘움직임’에 승부를 걸었다. 억제할 수 없는 저돌적인 격정, 그 안에서 폭발하는 신경질적일 정도로 빠른 움직임. 그의 독창적인 춤언어는 이때부터 세계적 평단으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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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록음악계의 기인들 데이빗 보위, 프랭크 자파는 물론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백남준과의 공동작업 등 타장르 예술과의 접합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록의 대담한 도전은 지난 20년 동안 그를 세계 무용계의 독보적 존재로 평가받게 했다. 멀티미디어를 이용해 관객의 상상력을 자유롭게 하는 배려 또한 그의 탁월한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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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아! 그(녀)는 누구인가?

아멜리아는 에두아르 록이 오래전에 우연히 만났던 여장 남자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다. 3D 애니메이션 화면을 통해 남성도 여성도 아닌 또 다른 젠더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동안 에두아르 록이 추구해온 기계적인 움직임에서 휴머니티를 느낄 수 없었다면(단체이름에서 강조하고 있긴 하지만) 가상의 인물 아멜리아에게서는 과연 휴머니티를 찾을 수 있을까?
에두아르 록 자신은 역설적으로 <아멜리아>가 인간적인 작품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사이버 캐릭터와 무용수들 간의 교감위에 사랑의 감정을 담았다고 한다. 그의 작품 중 보기 드물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서정적으로 풀어냈다.
검은 양복에 흰 셔츠를 입은 4명의 남자무용수와 망사로 된 검은 색 짧은 유니타드를 입은 5명의 여자무용수들은 절벽에서 벼랑 아래로 질주하는 남녀처럼 저돌적이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듯 하면서도 강렬한 비트를 구사하고 때로는 차분하게 다가오는 데이빗 랭의 음악과 발끝으로 말하는 여자무용수들, 그리고 그들과 한 몸이 된 듯 몽롱할 정도까지 빠르게 움직이는 남자무용수들. 내레이션 동작없이 극단의 민첩함만으로 초현실주의무용의 최고조 경지에 이른다.
2002년 초연당시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기대를 모은 에두아르 록의 <아멜리아>에 LG아트센터가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불행하게도 세계초연으로 잡혀있던 국내공연이 취소되어 2년이 지나 만나게 되었지만 지난해 제작된 시네댄스 <아멜리아>와 앞서 대면한 소감은 한마디로 ‘또 하나의 충격!’ 이다.
암흑속의 무대와는 달리 바닥이 둥글게 마무리된 4차원의 갇혀진 공간. 그 안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배합의 군무는 지칠 줄 모르는 열기로 귀결된다. 기이할 정도로 완벽한 하체 움직임과 이를 수평적으로 분산시켜줌으로써 균형을 잡아주는 상체 움직임의 조화는 소프트웨어에 저장되어있는 프로그램에서 쏟아져 나온 듯 잘 정돈되어있다.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로 여러 각도에서 앵글을 잡는 영상기법 또한 안전장치 없이 펼치는 곡예를 보는 듯한 재미를 한층 더해준다. 포인트 슈즈를 신은 남자와 양복 입은 여자가 뒤엉켜 중성의 젠더를 창조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에두아르 록의 말 한마디가 뇌리를 스쳐간다.
“육체는 말로 정의할 수는 없어요. 움직이는 육체는 어느 순간 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남은 것은 오직 정신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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