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제가 생각하는 음악감독은 스탭, 배우들을 안내하는 지휘자 입니다. 요즘은, 지휘자인 음악감독에게 상당히 ‘멀티맨’적인 모습을 요구합니다. 피아노 연주도 잘하고, 편곡도 잘하고, 이왕이면 노래도 잘하길 원합니다. 한 편으로는, 뭐하나 기가 막히게 잘하지 않고 얇게 잘해도 된다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웃음), 그런 면에서는 어려운 부분도 많습니다.



조연출에서 시작 뮤지컬은 제가 아주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분야입니다. 활발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무대를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해서 뮤지컬이 좋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기독교 뮤지컬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정말 저한테는 멀리 있는 로망이었던 음악감독에 대한 꿈을 키웠습니다. 대학교 때 (서울대학교 기악과), 국제 기타 콩쿠르 대회 수상을 통해 주목을 받으면서, 속된 말로 남들보다 돈을 좀 더 일찍 만지기 시작했습니다.

기타 연주자로 분에 넘치는 주목을 받았지만, 전 뮤지컬이 하고 싶었습니다. 뮤지컬 연출을 배우기 위해 콩쿠르를 통해 모은 돈으로 공연연출 아카데미에 등록했습니다. 아카데미 재학 시절, 조연출을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던 작품이 장유정 연출님의 <러브퀼트>라는 작품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숨기고 조연출로 작품에 참여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치않게 장유정 연출님이 제가 기타를 친다는 사실을 알게 되셨고, 기타가 필요한 상황에서 저한테 기타를 쳐보라고 하신 거죠. 알고 봤더니, 연출님이 누가 친 건지도 모르고 좋아했던 기타음악이 바로 제가 연주했던 곡이었던 거에요.

연출님이 바로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라는 뮤지컬을 만드는데 같이 만들어보자고 제의하셨고, 그 작업이 흔히 말하는 대박이 터진 거죠. <오! 당신이…> 이후에 많은 작품들이 들어왔지만, 다 떨쳐내고 영국으로 유학을 (영국 스코틀랜드 왕립음악원) 떠났습니다. 방학 때 들어와서 <햄릿> 등 작품활동은 꾸준히 했습니다. 제 출발은 행운도 따랐고, 운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뮤지컬 지휘는 제가 뮤지컬을 시작하고, 20년 후에 할 수 있는 작업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늘 해왔습니다. 그 꿈을 빨리 이루게 돼서, 조금은 어리둥절하지만 그래서 더 감사한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김문정, 변희석 음악감독님처럼, 존경 받는 음악감독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자유, 그 안의 카리스마 악보와 똑같이 부르는 노래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작곡가의 의도를 살리기 위해서 악보 그대로 노래를 불러야 한다고 말하는 음악감독 분들도 계시지만, 전 ‘듣기 좋은 음악’을 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안되겠다’고 하면, 본인이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라고 말합니다. 악보와 다른 노래를 부르더라도 그 노래가 듣기에 좋고, 그 뜻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만 된다면, 악보에 얽매일 필요는 없는 겁니다. 좋은 결과물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배우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하고, 그 정리는 제 몫으로 남겨둡니다. 가끔씩은 제가 ‘그건 아닌 것 같다’라고 막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는 이유가 있어서 막는 것이지요(웃음). 논다는 표현은 지나치지만, 배우들과 스탭들과 즐겁게, 웃으면서 일하는 작업환경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자유로움 속의 원칙, 예의, 카리스마를 좋아합니다.




솔직함 단점은, 지나치게 솔직하게 말할 때가 있다는 겁니다. 다혈질은 아닌데, 가끔은 말실수 아닌 말실수를 하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가령, ‘이 음악, 이상해요!’라고 직설적으로 말해서 상대방이 상처를 입는 경우가 생기는 거죠. 말을 포장해서 할 줄 아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부분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제 솔직함이 장점인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상대방에게 가식 없이 솔직하게 대하기 때문에, 진심을 나누는 사람과는 좋은 관계로 남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시간 약속도 심하게 챙기는 편입니다. 공연도 결국은 ‘시간약속’ 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연인들은 준비가 안됐다 하더라도 8시에 시작해야 하고, 잘 못했더라도 10시에 끝내야 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는 거죠. 잘 웃고, 즐겁게 작업하려는 마음도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 뮤지컬 <모차르트!>의 ‘왜 나를 사랑하지 않나요’라는 뮤지컬 넘버를 가장 좋아합니다. 그 노래에서 모차르트는 다시 태어난다면, 천재로 태어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모차르트가 아버지를 향해 마음의 문을 열지만, 아버지는 마음의 문을 닫고 몇 년 후에 죽음을 맞게 됩니다. <모차르트!> 가사를 쓰면서 모차르트에 관한 많은 책을 읽었는데, 모차르트와 아버지의 이야기 때문에 이 노래를 가장 좋아하게 됐습니다. 박은태 배우가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불렀을 때, 울면서 지휘를 했던 기억도 납니다.




<빌리 엘리어트>의 ‘일렉트릭 시티’를 좋아합니다. 이 노래를 듣고 전율을 느끼고, 설레고,잠을 못 이뤘던 기억이 납니다.



2009년, <살인마잭> 공연이 생각납니다. 안재욱 다니엘의 첫 등장신 이었는데, 노래를 본인이 불러야 할 음 보다 한 옥타브 높게 시작한 거죠. 거의 하이C를 불러야 되는 마디까지 높인 겁니다. 이상하게 부르지는 않았지만, ‘내가 음을 안 들리게 해줬나?’ 싶어서 1막이 끝나고 바로 대기실로 뛰어갔어요. 안재욱 배우가 거의 머리를 벽에 박고 있더라고요, 그 날 따라 그 노래를 많이 연습했고, 관객들도 많아서 기분이 좋아진 바람에 그렇게 불렀다면서요.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삼총사><살인마잭><모차르트!> 때에는 주인공들이 세 명, 심지어는 네 명이었던 경우도 있어서 마음이 많이 바빴던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도, 큰 사고 없이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시아준수 같은 경우에, 어떻게 알고 찾아오시는지, 리허설 장소로 찾아오는 팬 분도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외국에 팔 수 있는 우리나라 작품을 만들고 싶습니다. 문화적으로 안 맞고, 길이 없어서 해외로 진출하지 못하는 훌륭한 창작작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잘 만들어진 공연으로 우리나라 공연의 범위를 세계적으로 넓히고 싶습니다. 뮤지컬 음악이 묶여진 기타 연주 앨범을 내는 것도 또 하나의 목표입니다.



같은 꿈을 꾸는, 그대들에게 직업이 음악감독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저도 음악감독을 향해 꿈꾸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음악감독을 간절히 원한다면, 그 꿈을 갖고 자신이 지금 배우고 있고, 활동하고 있는 것에서 최선을 다했으면 합니다. 간혹, “클래식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데, 뮤지컬을 하려면 실용음악으로 바꿔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아니요”라고 대답합니다.


클래식 피아노를 최고로 잘할 수 있을 때까지 배우고, 재미가 없을 때 다른 걸 배우면 된다고 조언합니다. 클래식 피아노만 잘해도 음악감독으로 활동할 수 있는 뮤지컬은 많이 있습니다. 무엇을 배우든, 최선을 다하세요. 세상에는 정말, 배워서 헛된 것이 없습니다. 저는 슬럼프에 빠져서 일이 잘 안 풀릴 때, 이 인터뷰 코너에 실린 다른 음악감독님들의 인터뷰를 읽으며 힘을 얻곤 했습니다. 힘들 때,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정리 : 강윤희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kangjuck@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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