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인터뷰하신 음악감독님들이 잘 설명해 주셨는데요. 제가 하고 싶은 말도 같은 말입니다. 음악감독은 중재자, 조율자에요. 덧붙이자면 음악은 시간 예술이기 때문에 극의 흐름 속에서 음악을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야 하는 역할이기도 합니다.



대학에서 클래식 작곡을 전공하며 음반 일을 하고 있던 중에 성재준 연출님의 뮤지컬 <컨페션> 워크숍에 참여하게 된 게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여주인공 역할인데 3일만에 8곡을 소화해야 했기 때문에 악보를 빨리 익힐 사람이 필요해서 제가 도와드리게 된 겁니다. 워크숍에 원미솔 음악감독님이 반주를 하셨는데 그게 인연이 돼서 다음에 <그리스>에 참여하게 됐어요. 음악감독 입봉 작품은 2008년 <브레멘 음악대>였고, 이후 <김종욱 찾기> <돈 주앙> 등 좋은 작품들을 만나게 됐습니다.



배우들 대부분이 연기, 춤, 노래 중 노래에 가장 큰 부담을 느끼고 넘기 어려운 산처럼 여깁니다. 연습 때 노래 시간만 되면 잘 하는 배우들도 부담스러워 하곤 해요. 전 스탭과 배우들이 모인 상태에서 가장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배우들의 능력을 더 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방법으로 첫 연습 때 다 같이 모아놓고 한 사람씩 노래를 시킵니다. 첫 날 가장 편안하지 않은 순간을 주고, 모두 펼쳐 보이게 하는 것이죠. 순서도 자발적으로 하다 보면 서로 노래를 따라 부르고 박수도 치고 웃기도 하면서 편해지더군요. ‘그래 나 이렇다’라고 첫 날 모두 보여주면 그 다음부터 배우들이 심리적으로도 부담이 덜 하고 발전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합니다.



젊음이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조감독부터 시작해 28살에 <김종욱 찾기> <돈주앙> <젊음의 행진> 등 좋은 작품을 많이 했어요. 어떻게 보면 이른 나이에 시작한 것이지만 객기로 시작한 게 아니기 때문에 열정을 가지고 할 수 있었고, 좋은 작품을 일찍 만날 수 있어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점을 말하자면 보컬코칭 스타일이에요. 전 보컬 코칭을 디테일하게 하는 편입니다. 말로 ‘이게 아니다’가 아니라 왜 그런지를 설명하고, 전, 후를 제가 직접 노래해 보이거든요. 그래서 배우들이 빠르게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그게 독이 될 때도 있습니다. 음 하나를 구부리고 펴는 걸 제가 다 관여를 해서 너무 많은 걸 제어하는 게 아닌가 고민될 때도 있어요. 하지만 노래는 작곡가의 의도가 정확하게 전달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악보에 답이 있는데 이를 벗어나서 자기식대로 푼다든가, 연기적으로 접근하는 걸 싫어하는 편이에요. 노래할 때 연기적으로 푸는 건 더 잘하려고 하는 것보단 자기가 버거운 순간에 하거든요. 음악감독으로서 너무 빨리 타협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죠. 마지막 순간에 열어 놓고 맡기기도 하고, 그 선을 조율하려고 노력합니다.



뮤지컬 <돈 주앙>. 사전연습을 다른 공연의 두 배를 한 공연입니다. 특히 저에게 뜻 깊었던 게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보컬 코치를 하셨던 분이 저와 이틀 작업하시곤 ‘이 사람은 믿어도 될 것 같다고’ 하셨어요. <돈주앙>을 저에게 맡겨 놓고 본국으로 가셨는데, 그 힘으로 제가 매일 매일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오페라의 유령>도 빼 놓을 수 없어요. 워낙 큰 컴퍼니이다 보니 연습이 굉장히 길었고 세컨드 커버까지 연습을 했습니다. 16개월을 공연하니 배우들이 힘들었겠죠. 그래도 그렇게 하니까 작품이 망가지지 않고 30년을 이어왔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직 한국에 들어오지 않은 작품이지만 <라이트 인 더 피아자> 노래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색채감이 있는 음악을 좋아하는데 이 작품의 노래들은 음악적 색채감이 뛰어나고 음악만 들어도 그림이 상상하게 만들 정도로 클래식 하면서 편곡이 유려해요. 갈라 콘서트에서 악보가 없는 것을 제가 만들어 편곡할 정도로 좋아했죠. <위키드> 음악도 정말 좋아합니다. 2막 ‘노굿디드(No Good Deed)’를 특히 좋아해요.



지휘봉 날리는 실수는 다들 몇 번씩 있으시더라고요(웃음). 뭘 이야기 할 지 고민이 되는데.. <오페라의 유령> 갈라 콘서트가 기억에 남네요. 그렇게 규모가 큰 갈라 콘서트는 처음 맡아서 열의가 넘치는 나머지(웃음) 우리나라에 악보가 없는 곡을 너무 많이 연주했던 콘서트였어요. <라이트 인 더 피아자> 노래들도 있고요. 이 노래들을 32인조 오케스트라 악보로 편곡하고 만드느라 한 달 동안 밤을 새야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정말 즐거웠어요. 오랜만에 클래식으로 돌아가 수십 줄의 오선지를 가지고 밤새 편곡하고 상상하는 게 행복했습니다. 힘들었지만 콘서트에서 참신한 레파토리를 선보일 수 있었고, 그때 만든 악보는 다 재산이니 보람이죠.



초심을 잃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전 초심에 대해선 약간 강박관념도 있어요. 그걸 잃는 순간 매너리즘에 빠지고, 매너리즘에 빠지면 새로운 걸 할 수가 없죠. 새로운 걸 할 수 없으면 이 자리가 무의미하고, 반복될 뿐입니다. 항상 열정적으로 새로운 걸 찾고, 더 새롭게 보려는 마음을 늘 숙제처럼 갖고 있어요. 그리고 올해 터득한 건, 쉬는 걸 미안해 해서는 안 된다는 것. 쉬고 호흡하는 휴식이 주는 게 많더라고요. 그게 공존해야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직접 작곡해서 제 작품을 올리는 게 목표입니다.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이 딱 끝나자마자 순식간에 기립해서 순간이 여러 번 있었거든요. 그 모습에 전율이 일더군요.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한번쯤은. 오랜 시간을 두고 꼭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두려움 없이 도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저 같은 경우도 클래식 작곡을 전공하면서 뮤지컬 음악감독이 됐어요. 무슨 일을 맡아도 열심히 하려고 했고, 무슨 일을 하든 손해 볼 건 없으니 일단 해보란 거에요. 요즘 자주 하는 말인데, ‘선행동후용기’라는 말이에요. 제가 만들고 전파하는 말인데요(웃음). 먼저 저지르고 용기를 내자는 것이죠. 다들 입문을 어떻게 하는지 궁금해 하는데 찾으려면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회는 자기가 만들어야 합니다.


정리: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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