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배우 아이비 "화끈하게 질주하는 마츠코의 사랑, 저와 닮았죠"

작성일2017.12.05 조회수4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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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원톱의 작품이 많지 않은 공연계에 여배우를 타이틀 롤로 한 새로운 창작 뮤지컬 한 편이 올라왔다. 바로 일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져 많은 마니아를 양산한 작품이었기에, 캐스팅 역시 많은 관심을 받았던 것도 사실. 특히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내는 주인공 마츠코는 내공 있는 연기가 필요한 역할인 만큼 누가 그녀를 연기할지에 대한 궁금증도 클 수밖에 없었다.

마츠코 역에 캐스팅된 아이비는 그만큼 엄청난 부담감에 시달려야 했다. 오랜만에 다시 오른 중극장 무대인 데다, 극을 이끌어가야 하는 타이틀 롤인지라 잘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이 앞섰기 때문. 대본도 보지 않고 출연을 결심할 정도로 좋아했던 작품이었지만, 부담감은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매 공연을 마치고 나면 1kg씩 빠질 정도였다고. 하지만 개막 후 한 달이 지난 지금, 아이비는 힘든 것보다 얻는 것이 더 크다고 한다. 작품을 통해 자기 자신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된다는 것. 마츠코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계속 발견하게 된다는 그녀의 이야기에 조금 더 귀를 기울여봤다.

 
영화의 굉장한 팬이라고 들었다. 대본도 안 보고 출연을 결심했을 정도였다고. 처음에는 워낙 시각적인 것에 관심이 많다 보니 영화의 영상미가 좋았다. 만화 같으면서도 뮤지컬 같은, 일본영화 특유의 독특한 감성이 작품을 끌리게 했던 것 같다. 사실 영화 내용은 같은 여자로서 불쾌하기도 했었다. 너무 폭력적이기도 하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영화를 볼 때마다 와 닿는 느낌이 다르더라. 나중에는 내가 마츠코에게 빙의가 될 정도였다. 그런데 이 작품을 토대로 창작 뮤지컬이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됐다. 좋아했던 영화인만큼 꼭 마츠코를 연기하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원하던 마츠코를 맡았는데, 직접 연기해보니 어땠나. 이제까지 당당한 여성 캐릭터들을 연기하다가 남자 때문에 힘들어하고 버림받는 역을 하려니 힘들더라. (웃음) 특히 마츠코는 감정 소모가 큰 역할이라 정말 매 순간 힘들었다.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패기 있게 시작했는데, 하고 보니 만만치 않은 캐릭터였다. 음악도 정말 어려웠다. 다양한 장르를 소화해야 하기도 했고, 평소에 불러보지 않던 음역의 곡들이 많아 쉽지 않았다.

개막 초반 관객들의 반응은 호불호가 많이 갈리더라. 특히 영화를 좋아했던 관객들이 상대적으로 아쉬운 반응을 쏟아냈는데. 아무래도 무대에서는 한정된 시간 안에 스토리를 풀어야 하다 보니 거기에서 오는 제한사항이 있다. 노래와 함께 이야기를 전달하다 보니 마츠코의 삶이 함축적으로 표현되었고, 그 때문에 관객들은 조금 불친절하게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프리뷰 기간 동안 보완 단계를 거쳐 이제는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도 충분히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극이 수정됐다. 창작된 작품들은 어떤 작품이나 그런 우여곡절이 있는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마츠코에 빙의가 될 정도로 감정이입이 됐다고 했는데, 어떤 부분이 그렇게 와닿았나. 사실 마츠코가 겪는 일은 평범한 사람들이 겪긴 쉽지 않은 일이지 않나. 말도 안 되는 얘기 같지만, 사실 뉴스를 보면 세상에선 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 일들을 지켜보면 대부분 결핍에서 오는 일들이 많은 것 같더라. 마츠코 역시 애정 결핍 때문에 비롯된 일이라 생각했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그녀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내어주면서 겪게 된 비극이니깐. 연습하면서 배우들과도 각자가 가진 결핍에 대해 개인적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결핍이란 감정, 그 부분에 가장 많은 이입이 됐다.

아이비에겐 결핍이 없어 보이는데. 아니다. 나도 사랑받고 싶은 욕망? 그런 결핍이 있는 것 같다. (웃음) 어린 시절에 아버지가 다른 지역에 회사 발령을 받아서 떨어져 살았던 경험이 있다. 물론 마츠코처럼 아버지에게 사랑을 못 받았다는 건 아니지만, 그 당시에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살면서 깊숙한 유대관계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연예인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야만 존재할 수 있다 보니 항상 결핍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한편으론 마츠코를 향한 주변 사람들의 편견에 대해서도 많은 공감을 했다. 여자 연예인으로서 나 역시도 대중들의 많은 편견을 겪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여러 감정을 말하는 작품이다 보니 감정이입이 쉽게 된다.

맞다. 주변 사람들의 편견에 시달리면서도 꿋꿋하게 삶을 살아가는 마츠코의 모습이 실제 아이비의 모습과도 상당 부분 겹쳐 보였다. 이 영화를 좋아했던 이유 중에 또 다른 하나가 바로 그거였다. 비극적인 내용을 따뜻하게 포장한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최악의 순간에서 담담하게 떨쳐버리고 밝음으로 승화시킨 점이 신파처럼 흐르지 않았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내 가치관 역시 마찬가지다. 힘들 때 너무 깊숙이 빠져들기보단 조금 물러서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연예인하기에 오히려 그런 성격이 훨씬 좋을 것 같다. 천성인 것 같다. 부모님들이 밝으신 분들이라서. 실수와 넘어짐을 통해서 한 단계 발전하고 배우려고 하지, 자책하고 괴로워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지혜롭고 똑똑한 사람은 아니지만, 실수를 통해 한 걸음 성장하는 캔디 같은 스타일이랄까? (웃음)
 



그렇다면 마츠코는 왜 그렇게 상처를 받으면서 사랑을 계속 꿈꿨던 것 같나. 예전에 심리상담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사람의 인격 형성에 가장 중요한 시기가 바로 유년시절이라고 하더라. 마츠코는 그때 사랑에 심각한 결핍을 느꼈고, 처음으로 사랑받는다는 감정을 느꼈던 상대가 바로 남자친구였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사랑을 계속 꿈꾸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사랑이란 건 억지로 얻어지는 게 아니지 않나. 받으려고만 하다 보니 더 멀어지고. 또 사랑이 부족한 남자들만 만나다 보니, 사랑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쏟아붓기만 한 것 같다.

아이비의 사랑은 어떤 스타일인가. 화끈하게 질주하는 스타일이다. 마츠코처럼 앞뒤 보지 않고 올인하는 스타일이기도 하고. 모든 감정을 다 소모하다 보니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때도 있는 것 같다. 이 작품을 하면서 나를 많이 돌아보게 됐다. 나는 항상 사랑받길 원하면서 상대에게 상처를 많이 줬구나 싶더라.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생각에 가끔 연기하면서 무서울 때도 있다. 그래서 ‘자제해야지’라며 스스로 다짐한다. (웃음)

지난해 플레이디비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이 안정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를 선택하는 편이라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창작 뮤지컬에 연달아 출연하는 최근의 행보는 의외다. 특히 <벤허>는 기존의 아이비가 맡았던 캐릭터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작품을 고를 때 내가 잘할 수 있는 역할, 무리 없을 것 같은 역할을 고르는 편이긴 하다. 평소에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하기도하고. 물론 끼 부리고 춤추는 역할을 주로 하던 아이비가 벤허 집안의 노예로 나오는 모습이 일부 관객들에겐 낯설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벤허>의 에스더는 충분히 소화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있었다. 강인함과 여성스러움을 동시에 가진 내 이미지가 에스더와도 어울린다 생각했다. 라이선스 뮤지컬만 하다가 최근 창작 뮤지컬 작품에 연달아 출연했는데,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는 점이 새로웠다. 직접 캐릭터를 만들어가야 하다 보니 인물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할 수 있어 배우로선 성장할 기회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연기에 대한 욕심이 커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욕심이라기보단 연기가 재미있긴 한 것 같다. 물론 뮤지컬배우로서 노래에 대한 소양 역시 갖춰야 하지만, 작품을 하면서 느끼는 건 ‘연기로서 관객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부분이 참 많구나’라는 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연기를 더 잘하고 싶고, 공부하고 싶어지는 것 같다.

그렇다면 혹시 장점인 노래를 버리고, 연기에만 올인해야 하는 연극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 연극 꼭 해보고 싶다. 정말 재미있을 것 같고. 근데 섭외가 잘 안 들어오더라. (웃음) 기회가 된다면 좋은 작품, 잘할 수 있는 작품으로 도전해보고 싶다.
 



8년째 뮤지컬 배우로서 활동하면서 지난날들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뮤지컬을 안 했으면 정말 큰일 날뻔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좋은 실력을 갖춘 건 아니지만 8년 동안 성실하게 꾸준히 하다 보니 관객들도 뮤지컬 배우로서 인정해 주기 시작한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품을 하면서 얻어지는 사람들이 너무 소중하다. 뮤지컬 배우들과 몇 달간 함께 생활하며 얻게 된 우정은 내 인생의 소중한 에너지원이다.

특히 올해는 작품활동으로 바쁘게 지낸 것 같은데, 혹시 아쉬운 점은 없었나. 정말 열심히 일했다. 특히 하반기엔 뮤지컬 두 편과 드라마까지 연달아 스케줄을 소화하며 석 달 동안 단 하루도 쉬지 못할 정도였다. 이정도 스케줄은 10년 만에 처음인 것 같다. 다행히 한 번도 안 아팠던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무대에서 잘 해내야한다는 부담감을 갖다 보니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는 점? 아직도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압박이 스스로를 옭아맨 듯하다.

완벽주의자 같은 성격인가 보다. 적어도 무대에서만큼은 그렇다. 참 재미있는 게 아무리 많은 관객들이 칭찬을 해줘도 좋은 얘기보단 부정적인 얘기들이 먼저 마음에 꽂히는 것 같다. 그래서 자신감을 잃을 때도 있고. 무대를 완전히 즐기고 싶은데 그게 쉬운 건 아니다.

내년에는 무대공포증을 떨쳐 버릴 아이비의 모습을 기대해도 될까. 쉽지는 않지만 노력해보겠다. 어떤 작품을 하든 관객들이 믿고 볼 수 있는 배우로 거듭나는 게 목표다. 다음 행보를 궁금하게 만드는 배우라면 금상첨화다.


글 : 이우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wowo0@interpark.com)
사진 : 배경훈(Mr.Hodol@Mr-Hod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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