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스크린 안에서 나의 음악은 자유롭다.” - 마이클 니만 인터뷰

작성일2004.07.29 조회수7861
트위터 공유 페이스북 공유 RSS 구독
글자크기 본문 글자 크기 확대 본문 글자 크기 축소 스크랩 이전글 다음글 목록



-한국은 첫 번째 방문인가?
“그렇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나라다. ‘피아노’ OST가 유독 한국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 바 있었다. 나의 음악에 그토록 애정을 가져주는 청중이 그렇지 않아도 궁금하던 차였다. 한국 영화에 대해서도 관심이 매우 높다. 특히 이번 칸느 영화제에 출품되었던 몇몇 작품들에 흥미를 느꼈다.”

-필립 글래스와 마찬가지로 당신 또한 탁월한 영화음악 작곡가로 유명하다. 이번에도 당신이 작곡한 영화음악들을 가지고 내한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 1부에서는 ‘피아노’와 ‘영국식 정원 살인사건’ ‘프로스페로의 책들’ 영화음악을 연주한다. 2부는 작곡 동기도, 스테이지 방식도 색다르다. 베르토프가 1929년 만든 무성영화 ‘카메라를 든 사나이’를 영상과 더불어 연주할 것이다.”

-‘카메라를 든 사나이’의 작곡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알다시피 나는 영화에 학구적인 관심이 많다. 영화사를 공부하다가 그의 이 작품을 발견했다. 베르토프는 미학적인 감각이 유달리 뛰어났던 영화인으로 유명했다. 소비에트 시민들의 일상을 몽타쥬로 엮은 다큐멘터리 필름이었다. 영화 오프닝 타이틀에도 명시되어 있지만, 이 필름에는 세트도, 배우도, 시나리오도,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때문에 연극적이라든가 문학적인 언어가 전혀 삽입되어 있지 않은 작품이다. 테크닉이 사용된 부분은 오로지 촬영과 편집뿐이다. 1929년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실험적인 냄새가 대단히 강하다. 나 또한 실험적인 시도를 좋아하기에, 이미지에서 받은 영감을 가지고 음악을 작곡하는 것을 시도했다.”

-다른 영화음악들도 영상에서 받은 영감을 가지고 작곡을 하는가?
“때에 따라 다르다. 대부분의 경우는 시놉시스를 보고 작곡한다. 감독이 영상이 만드는 것은 그 다음이다. 피터 그리너웨이와의 모든 작품이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제인 캠피온의 ‘피아노’도 음악을 먼저 작곡한 케이스다. 특히 ‘피아노’는 그 완성된 이미지가 내가 작곡하며 떠올렸던 이미지와 전혀 달라서 놀랐던 영화이다. 영감을 이중으로 받은 셈이었는데, 유달리 내게 깊은 감동을 주었던 터라, 아직까지도 의미깊은 작업으로 손꼽는다.”

-하지만 ‘피아노’는―비록 대중적으로는 성공했지만―예전 당신의 작품들과 비교할 때 성격이 매우 달랐다고 생각한다. 미니멀리즘의 특징인 반복도 거의 없을 뿐더러 선율은 낭만적이고, 다소 뉴에이지적인 냄새까지 풍긴다.
“그것은 내가 영상 안에서 누리는 자유이다. 혹자는 영화음악은 영상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음악이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오페라라든가, 현악 4중주와 같은 콘서트용 음악을 만들 때면 나는 늘 나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어버린 실험적인 스타일을 잃지 않으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그러나 영화음악은 다르다. 영상이며 시놉시스며 혹은 감독에게서 받은 영감을 스타일에 구애받지 않고 내가 생각하고 느낀 바대로 표현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실상 내 영화음악은 ‘프로스페로의 서재’를 전후하여 스타일이 보다 서정적으로 바뀌었다. ‘피아노’가 그랬고 또 앤드류 니콜의 ‘가타카’가 그랬다. 제인 캠피온 감독은 ‘피아노’ OST를 의뢰하면서, ‘피터 그리너웨이의 작품을 통해 나의 음악을 발견하긴 했지만 그와 동종은 사양한다’고 사전에 분명히 의사를 밝혔다. 이런 서정적인 변화는 물론 텍스트상의 주제와 소재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누가 뭐라 해도 당신과 가장 친밀한 파트너는 피터 그리너웨이라고 할 수 있다. 그와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가?
“그를 처음 만난 건 열 여섯 살 때 우리집에서였다. 당시 그는 내 여동생 친구였기 때문에 가끔씩 우리집에 찾아오곤 했다. 그 후로는 한동안 연락이 끊겼고, 동생으로부터 화가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1976년 당시 나는 버트휘슬의 의뢰로 카를로 골도니의 연극 ‘일 캄피엘로’의 무대음악을 맡았는데, 그 다음 해 영화감독이 된 그가 나를 찾아 와서는 자신이 만들 단편영화에 삽입할 음악을 의뢰해왔다. 그렇게 함께 만든 첫 작품이 ‘수도에서 온 다섯장의 엽서’였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20편 가까이 되는 작품을 함께 만들었다. 알다시피, 당시 ‘일 캄피엘로’ 밴드는 나중에 악기들을 모두 모던 악기로 바꾸면서 ‘마이클 니만 밴드’로 재결성되었다.”

-그와 작업을 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또 그리너웨이와의 협력작중 가장 애착이 가는 영화가 있다면?
“그리너웨이와의 협력은 나의 재능을 무한히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너웨이는 시놉시스를 들고와서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스타일이나 시놉시스 줄거리에 구애받지 말아라. 단지 당신 머리에 떠오르는 그대로를 악보로 적어주면 좋겠다.’ 무엇보다 ‘요리사와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를 가장 아낀다. 영상과 줄거리 모두 실험적이었지만, 내 음악이 영상에 가장 강력하게 영향력을 끼친 영화였다.”

-필립 글래스는 자신의 영화음악이 영상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동등하고 독립적인 이미지 스트럭처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의 음악은 그 수준을 넘어서는 것인가?
“영화음악에 대한 나의 생각은 필립 글래스와 거의 일치한다. 그러나 그와 나는 일을 하는 순서와 방식이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굳이 나만의 개성을 찾는다면, 그것은 나의 음악이 영상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극의 진행을 적극적으로 이끌어간다는 점이다. 단지 이미지 스트럭처와 동등하거나 그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것을 넘어서서, 나의 음악은 텍스트상으로 침투하여 중요한 역할을 발휘한다. ‘피아노’에서 나의 음악은 벙어리인 주인공의 대사를 대신 나타내는 보이스오버였다. ‘프로스페로의 서재’에서는 주인공의 목소리가 모든 등장인물의 목소리를 대신하는 가운데, 오로지 나의 음악만이 그 목소리를 대칭적으로 상대해주고 있다. ‘요리사…’에서는 부엌에서 노래를 부르는 소년이 등장한다. 그것은 권위주의에 억압된 예술가들의 창작의욕을 상징하는 대목이다.”

-끝으로 한국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의 ‘피아노’ 음반을 아껴준 모든 한국의 음악애호가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표하고 싶다. 나의 밴드와 더불어 그들 모두에게 음반과는 또다른 라이브의 감동을 선사하고 싶다.”

[ⓒ 플레이DB www.playdb.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공유 페이스북 공유 RSS 구독
글자크기 본문 글자 크기 확대 본문 글자 크기 축소 스크랩 이전글 다음글 목록

댓글쓰기

입력
플레이DB의 모든 공연DB는 다음, 네이트 등 포털사이트 공연정보로 연동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