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대사 하나하나 표현을 잘 하시는지 세속에 찌든 지친 일상은 잠시나마 잊고 다시 한번 곱씹어 보고 생각나게 하는 연극이었습니다.

김원 작가님의 작품 혼자서 가라 보고왔습니다. 김원 작가님의 만선과 만리향도 넘 좋았어서 이번 작품도 기대가 컸는데, 역시나 넘 좋았습니다! 14년만에 묵은 작품을 꺼내 쓰신 이야기라고 하는데 참 생각할거리들을 많이 던져주는 작품이었습니다. 산 속에서 대장 큰스님의 지도아래 모이게 된 까치, (까)마귀, 무명스님은 죽은 나무로 부처님을 깎는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각자의 사정으로 이곳으로 오게 된 세 스님은 정식 스님은 아니지만 큰스님의 혜안으로 이 일을 하고 있는데요, 그 중 무명스님만이 진심으로 수행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큰스님이 출타한 기간을 틈타 까치와 마귀는 올무로 산짐승을 잡아 먹기도 하고 소주도 마십니다. 세 역할의 배우님들의 연기가 참 맛깔스러워 굉장히 많은 대사들이 귀에 쏙쏙 박히더라구요ㅎ 이 산중에 큰스님이 보내서 왔다는 미월이 등장하면서 이 셋은 소요하기 시작합니다. 집착이란 무엇인지 결국 잃어봐야 깨달을 수 있다는 격정적인 주제가 내 삶을 돌아보게 합니다. 욕심과 괴로움은 집착에서 온다는 불가의 가르침을 느끼게 하기도 합니다. 내가 추구하는것이 결국 나의 결핍으로 인한 욕심이 아닌지, 세상을 살아가는 것, 선과 악은 마음 한 끗 차이라는 점을 생각해보게 하는 연극이었습니다. 배우님들 연기도 정말 넘 매력적이였어요!

극장에 들어섰을 때,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공간을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객석만 아니라면 소극장이 아니라 좁은 골목길 지하는 연극 ''혼자서 가라''의 배경처럼 남자 셋이 기거하는 홀아비 냄새 폴폴 올라오는 목공 작업장이라고 해도 그러려니 할 판이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무대란, 대사로 굳이 풀어내지 않아도 작가가 설정한 삶이 얼추 눈에 들어온다.
추운 겨울, 첩첩산중 오두막에서 나무를 깎아 불상을 조각하는 세 남자는 세상에서 마귀였든 아니든, 몸과 마음의 더께를 같이 깎아내는 중이다. 그러나 애초 귀의할 맘이 있어 온 게 아니고, 세상으로부터 버림, 외면을 받아 큰 스님에 의해 자의 반, 타의 반 머무는 셋은 하루 하루가 지루하다. 스님이 몇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바, 낙이라면 가끔 올무에 잡히는 산짐승으로 속을 달래는 일이다.
방 한 칸 좁은 오두막에 난데없이 미월이 찾아온다. 세 남자 중 무명과 질긴 인연으로 찾아온 것인데, 팔이 하나 없는 무명이 살아온 이력도 딱하지만, 마흔이 다 되가는 미월의 사연 역시 녹녹치 않다. 무명은 그저 죽지 못해 사는 듯, 산 넘어 세상 짐을 여전히 짊어지고 있으니 큰 스님이 보낸 것이다.
연극을 관통하는 줄기는 단순하고 명쾌하다. 제목부터 ''혼자서 가라''고 하나, 우리가 집착과 번뇌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다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기 위해 정진을 할 수 있을 뿐이다. 무명과 미월이 떠난 자리, 까치와 까마귀 두 남자가 남는다. 이름처럼 자유분방한 그들은 십년이 넘도록 불상을 깎고 수련 중인데, 연극 도입부와 마무리, 하루를 불경을 외우면서 시작하자면 이내 터지는 방귀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방귀 소리가 커서 냄새가 적게 나거나 작아서 지독하게 나거나, 내 방귀가 아니면 거름 냄새라는 대사처럼 남들과 사는 자체로 고행이고, 순간순간이 고행이다. 누구도 업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데, 다른 이들의 인생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연극도 그 자체로 수행이라면 참 수행이다. 극장 소품 하나하나부터 미지애씨어터 작품을 보면 무대가 절간처럼 보이는 이유이다.*

제목을 보자마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혼자서 가라' 는 어느 소설 제목이 생각났다. 그 소설도 읽지 않았고 불교 경전에서 나온 글귀인 것은 알았지만 깊은 뜻은 전혀 모른다. 그저 오랜 시간 잊혀지지 않는 글귀가 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보고 싶어진 연극. 때론 제목 하나에도 강렬하게 꽂힐 때가 있다. 극장에서 나누어 준 팸플릿을 보면 작가의 말 중, 인연으로 생긴 업보를 해결하는 이야기라고 한다. 그런 업보는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무조건 지게 되는 기본값이니 그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그 업보를 딛고서 오롯이 한 사람이 되란 말인가. 결코 끊을 수 없으니 그 업보를 이고 지고 서라도 꿋꿋하게 살아가란 말인가. 혹시 연극이 너무 어려우면 어쩌나 살짝 걱정하며 자리 안착. 나만을 위한 연극 같은 소극장의 매력. 연극을 보며 무대가 참 잘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첩첩산중 생활을 보여주는 이 공간에서 생활하는 3명의 남자들, 어느 날 들이닥친 한 여자. 그리고 큰스님. 이들의 이야기를 담기에 딱 좋은 분위기와 구성의 무대. 이야기는, 흘러들어와서 흘러가는 구조라서 내 식대로 줄거리를 재구성하고 싶진 않다. 시작도 끝도 없는 이야기다. 삶의 어느 한 부분을 케이크처럼 잘라서 올린 이야기. 그저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어떤 모습으로든 서로에게 남겨진다는 거라고 이해했다. 그 누구도 결국 혼자일 수 없고 첩첩산중에서도 사람의 온기는 그립다. 라고는 말해도 되려나. 나무토막에서 부처님을 꺼내는 것처럼 별것 아닌 인연들이 때론 사랑의 형상으로 다가오고 때론 잔인한 불꽃으로 사그라들지. 배우분들 모두에게 큰 박수를 드렸지만 특히 큰스님역과 까지역의 배우가 좋았다. 배역 자체도 매력적이고 배우분들이 정말 딱 그들처럼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는 느낌. 더블 캐스팅의 다른 배우분들의 조합으로도 보고 싶어진다. 같은 대사라도 느낌이 꽤 다를 것 같아 n회차 관람도 좋을 것 같다. 아니 꼭 한 번은 보시길 강추!

딱히 복잡한 서사가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줄거리가 내내 이어진다.

불교를 배경으로 했지만 어느 종교를 끌어왔더라도 이야기는 잘 이어졌을 것이다. 특히나 대사의 묘미가 돋보인다. 능청스런 대사로 웃음을 안겨준 마귀, 까치의 대화를 비롯해서 큰스님과 무명의 선문답 역시 작품의 제목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일단 연극이 주는 재미가 상당하다. 후반부 무명의 논리가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또한 납득 가능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상당수일 것이기에... 노출(?) 연기를 불사한 미월 역 이진주 배우의 연기도 상당히 임팩트 있었던 듯... 굉장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