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을 한 곳에 매진한 사람과 대화하기란 참 어렵다. 그가 그 동안 겪었을 고뇌와 절망, 환희를 어렴풋이라도 짐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 할매’란 별칭으로 요즘 예능계의 늦둥이로 떠오른 부활의 기타리스트 김태원과도 마찬가지였다. 예능계에서야 늦둥이지, 한국 록의 한 획을 그은, 음악의 파도를 제대로 맞고 쓰러지고 건너온 록그룹의 리더가 아닌가. 부활 25주년 기념 콘서트 연습실에서 그를 만났다.

얼굴 살이 빠지신 것 같아요.
아, 얼굴살이 빠졌어요. 고생을 많이 해서 그래요. 1년 동안 쉬질 못했죠.

올해는 예능 같이 하셔서 그런가요.
예능은 많이 줄였는데 평생 일 같은 건 많이 안 하고 살았던 사람이 1년 동안 다 몰아서 하니까 몸이 힘들지.

최근 부활이 12집 앨범을 냈고, 전국투어 콘서트 중이에요. 둘 다 반응이 좋습니다.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어요. 팀 리더로서 예능에 많이 나가는 게 우리 음악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지않을까 했는데 의외로 예능은 예능이고 음악은 음악이다라고 받아 들여 주시는 분이 많은 것 같아요. 역사를 잘 아시겠지만 부활이 순탄한 항로로 온 그룹은 아니지 않습니까? 어려울 때가 많았던 팀이기 때문에 지금은 네 번째 전성기를 맞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첫 번째 전성기는 ‘희야’ 때인가요.
그렇죠. 1986 ‘희야’, 1993년 ‘사랑할수록’, 2002년 ‘네버엔딩스토리’, 2009년 ‘생각이나’.

말씀하신대로 다시 인기를 얻으면서 콘서트 티켓도 잘 나가는 걸로 알고 있어요. 이번 콘서트 컨셉트는 무엇인가요.
지금 40대 분들이 젊은 시절에 카페에서 들었던 음악을 직접 듣는 다는 거죠. 그럼 그때 사랑했던 소녀가 회상이 될 것이고, 물론 결혼은 다른 분들하고 한 분들도 계시겠지만. 우리는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음악을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음악이 좀 슬프죠. 요즘은 밝은 음악들이 많으니까 저희처럼 슬픈 음악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하지만 콘서트 중간 중간의 멘트는 그렇게 슬픔을 드리지 않습니다. 많이 웃을 수 있어요. 음악에 들어가면 굉장히 센티해 지고, 그런 유일한 콘서트가 아닌가 해요.

관객들은 20대도 오는데요.
그 세대들은 신세대들인데. 버라이어티에서의 제 모습을 보고 오신 분들이 있겠죠. 들어올 때와 나갈 때가 굉장히 다를 거에요.

김태원씨의 기타 치는, 진지한 모습에서 새로움을 느낄까요? 
글쎄요. 전 진지하게 기타를 친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그냥 기타리스트로. 사운드를 듣는 거죠. 솔로가 아니고 악기와 목소리라 협연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초도 놓칠 수가 없어요. 자만을 할 수가 없어요. 제스처를 취하거나 이런 것도 20대 때 일이지, 내 나이가 되면 전체적인 사운드를 사용하기 때문에 거기에 몰두하는 모습인 거죠. 그런 모습은 처음 보실 겁니다.

골수 팬들은 김태원씨의 활약에 대해 불편해 하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물론 그런 분들이 계시죠. 그런 분들까지 생각하기엔 제가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살았어요. 이 말씀을 드리면 이해하시는 분은 충분히 이해하실 거에요. 그만큼 혼자 고독했고, 혼자 싸워온 사람의 현재 모습이라고 보시면 되고. 지금 부활의 결론이라기 보다는 진행 과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혼자 고독했고, 싸웠다는 건 어떤 걸 말씀하는 건가요.
음악 하는 사람은 다 그래요. 항상 메이저에 있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음악을 그만 두는 경우도 많고. 실제로 저하고 같이 시작했던 동료들이 거의 다 그만뒀고. 그렇지 않습니까? 전 음악이 아니면 죽는다는 자세로 지금까지 온 거죠. 순탄한 항로는 아니었어요.

부활은 멤버 교체가 자주 일어났습니다. 특히 보컬은 아홉 명째에요.
흐름이죠. 흘러왔던 거고. 아홉 명의 멤버 중에 저 멤버를 정말 내가 붙잡고 싶다, 그래서 붙잡은 적도 없고, 다 자의에 의해 나가고 싶다고 하면 나가는 것이고. 계약서 같은 건 쓰지 않으니까, 저희는. ‘하자’, 이거니까. 굳이 나가려고 하는 사람을 잡으려 하지 않아요. 구차해지니까. 그렇게 살아온 것이죠.


지금 정동하씨는 팀에서 가장 어리고, 여성의 주목을 끌만한 외모에요.
남자들끼리는 잘 몰라요. 남자 입장에서 저 친구를 처음 봤을 때 잘 생겼다는 건 알지 못하죠. 노래를 잘한다. 이거였지.

그럼 특별한 보이스를 원하신 건가요?
그렇진 않죠. 만나서 목소리를 들어보니까 좋더라지, 제가 일부러 그 특징의 목소리를 찾아 다니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그렇게 거짓말 하고 싶진 않아요.

부활 25주년을 맞았습니다. 1985년 부활 창단한 후로 한번 해체된 적도 있고 여러 어려움과 전성기가 찾아왔어요. 거기에서 가장 변치 않은 건 김태원씨 입니다. 그 힘은 무엇 인가요.
변치 않았다고 보긴 뭐하고, 다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런데 그때 부활이 배라면 배를 버리지 않은 것이죠.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 더 극하게 말하면 음악에 미친 마음이 있었던 것이고요.
(사무실 사람을 보며) Can I have a cigarette?

영어를 하시네요.(웃음)
제 딸하고 아들이 유학에 갔잖아요. 지금은 남아공에 있어요. 그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유학을 갔기 때문에 한국말은 초등학교 1학년 단어밖에 모릅니다. 한국말을 하긴 하는데 그 친구와 대화를 하려면 어느 만큼은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말은 잘 못해도 알아듣긴 해요. 그 아이가 막 뭐라고 하면 몇 가지 단어만 알아듣고 조합하는 식으로.

그럼, 지금 기러기 아버지시군요. 외로우시겠어요.
딸은 월드컵이 열리는 남아공에 갔고, 와이프와 아들은 필리핀에 있어요. 외롭긴 해요. 

얼마 전 남자의 자격에선 영어를 되게 못하시는 걸로 봤는데요(웃음)
그렇게 연출한 건 아니에요. 제가 끈기가 없어요. 대강 대강이지. 외국 사람하고 대화를 할 때 이 이야기에서 무슨 이야기인줄 알아야겠다. 이런 성격이 못 되요. 그런 모습이 영어뿐만 아니라 운동에서도 그렇죠.

예능에서 인기가 많으세요. 생각하지 못한 위트나 리액션이 자연스럽게 나오거든요. 지금까지 왜 예능을 안 했나 이상할 정도였어요.
저는 그걸 못 느꼈었어요. 20년 동안 집에만 있었으니까. 생각하는 직업 아닙니까. 그런데 토크쇼에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눴는데 그걸 사람들이 호응을 해주더라고요. 얄밉지 않고 솔직하다고.

TV 속 모습이 진짜 김태원씨인가요.
그렇다고 봐요. 일상이 모두 그래요. 제가 진짜로 체력이 약해요. 심하게 약해요. 얼마 전 (남자의자격에서) 마라톤을 했잖아요. 전 뛰다가 바로 포기하잖아요. 심장 기능이나 이런 게 국진이처럼 튼튼한 사람은 아니에요. 몸에서 위험하다고 느끼면 전 안 합니다. 그게 방송이 아니라 뭐라도. 저에겐 가족이 있고, 더 소중한 일이 있는데요. 어떻게 보면 질타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왜 안 뛰나…못 뛰겠는데 어떻게 뛰어(웃음).

체력이나 몸을 위해 따로 신경 쓰는 게 있나요?.
그런 거 없어요. 평생 없었어요. 보약이나 그런 것도 안 좋아하고. 감기 걸려도 병원 같은데 안가는 그런 스타일이고. 혼자 앓고 그런 걸 좋아해요.

요즘 국민할매란 별명이 생겼는데. 어떠세요?
정감 있고 좋아요.

예능 출연요청이 많진 않나요?
체력이 되지 않아서 못해요. 콘서트도 있지만 음반도 내야 하고, 작곡도 해야 하니까요. 작곡가는 작곡을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요. 뚝딱 나오는 게 아니에요. 늘 일상에서도 생각을 해야 하니까, 음악에 몰두해야 할 시기다라고 생각한 거죠. ‘남자의 자격’ 같은 경우는 같이 출연하는 친구들이 1년 동안 힘을 준 방송이에요. 그래서 ‘백 한 가지’까지 가고 싶어요. 백 한번 째는 김국진 장가 보내기가 최종일걸?(웃음)

지금 멤버들도 오랜 시간 함께 해 오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정동하는 5년, 채제민, 서재혁은 10년이 넘었다). 하지만 다른 멤버들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어요.
김태원이라는 사람도 알려진 지 이제 1년 밖에 안 됐어요. 그만큼 악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알려지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경지에 오르지 않고서는 알려질 수가 없어요. 보컬만, 노래하는 사람만 알려지지. 그 때를 저 친구들은 기다릴 거에요. 알려지리라고 봅니다.

경지란 뭘 말하는 건가요.
사람이 드러나게끔 돼 있단 것이죠. 멤버들 중에 노래하는 사람만 늘 알려지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풍토는. 그 뒤에 악기 하는 사람들도 같이 고생하는데 다 사라졌어요. 외면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고. 이런 비극적인 현실에서 김태원이란 사람이 기타 치는 멤버로서 드러난다는 것은 희망이 보이는 거죠. 그걸 이야기 하는 거에요.

‘네버엔딩스토리’가 히트를 했을 때 부활이 아니라 이승철씨가 인기를 얻었어요. 그걸 비극이라고 생각 하셨나요.
그런 걸 처음 겪었겠습니까? 평생을 겪고 살았는데. 거기에 에너지를 쏟을 만큼 한가하지가 않습니다. 신경 쓰면 뭐합니까, 나만 속타는 것이니까 다른 생각하는 게 나아요.

지금은 그런 일은 없겠어요.
지금은 그럴 수도 있지만, 모르죠. 내 후년엔 또 그럴지도. 다가오는 일은 모르는 거에요.

걸 그룹, 보이 그룹이 인기가 높습니다. 그들과 같은 선상에서 경쟁할 때가 많으신데, 전략이 있다면요.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는 사람은 사라질 수가 없습니다. 유명해 지지 않았다고 해서 포기하는 사람은 음악을 끝까지 할 수가 없어요. 굴곡이 있더라도 열정이 있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음악을 하는 것이고. 그 차이죠. 지금 젊은 친구들도 굉장히 많지 않습니까. 지금 탑을 달리고 있고, 메이저에 있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에요. 그렇다고 메이저 때를 그리워하지 말고, 음악을 계속 한다면 또 그런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해요.

과정이 힘들 때 어떻게 견디셨나요.
음악이 있으니까. 음악이 항상 제 곁에 있었어요. 왼쪽엔 통기타가 있고, 오른쪽에 전자 기타가 있고. 작곡, 작사를 하고. 솔직히 술이 있었고. 담배도 있고(웃음).

이번 12집 앨범이 EP형식 나왔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전체를 내 봐야 사람들이 흥미를 안 가지니까. 옛날에는 정규앨범으로 12곡씩 내고 그랬지 않습니까. 그런데 옛날도 한 곡 씩 밖에 안 들었어요. 테이프 때는 A면 처음, B면 처음 이렇게. 레드 채플린도 마찬가지에요. ‘Stairway To Heaven’ ‘Rock'n Roll’ 외에 아는 곡이 뭐가 있어요. 무수한 앨범이 있고, 다 명곡인데. 그래서 반으로 나눈 겁니다.

대중이 한쪽으로 편향됐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나쁜 건 아니에요. 다들 엑기스만 듣고 싶어하는 건 인간의 본성 같아요. 다만 음악을 만드는 사람은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정성을 들인다는 거죠.

파트2는 언제 나오고, 구성은 어떻게 하실 예정인가요.
12월 말이나 1월에 나올 겁니다. 뭔가 좀 희망적인 노래를 쓰고 싶어요. 그래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러브 스토리지만 약간 희망이 섞인. 들어 보셔야 알 거에요.

부활의 노래들이 상당히 서정적이거든요. 직접 작사, 작곡을 많이 하시는데, 그 노래들의 원천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회상을 합니다. 미래보단 과거를 사랑해요. 미래는 보지 못했고, 과거는 봐왔기 때문에. 저희 어머니 아버지가 젊었을 때부터 제가 지금까지 이렇게 늙을 때까지를 회상하죠.

이승철씨가 불러 히트 했던 ‘마지막 콘서트’가 부활의 ‘회상3’을 리메이크 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노래는 김태원씨와 아내분의 실화고요.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유명하신데요.
매번 이야기를 했는데, 모 상갓집에서 제가 홀로 술을 마시고 있는 김제동씨를 만났어요. 김제동씨하고 두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늘 하는 식으로 말을 했어요. “난 아내에게 죄진 게 많기 때문에 난 지금 갚은 중이다”라고. 그랬더니 김제동씨가 저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했어요. 자기가 보기엔 김태원씨는 지금도 빚을 지고 있는 것 같다고. 그 다음부턴 그 이야기를 안 합니다(웃음).


지금도 지극하게 빚을 갚고 계시죠?
글쎄요. 그렇진 않아요. 건강도 신경 안 쓰고, 음악 한다고 만날 사람들한테 당하고 살고, 이리 채이고 저리 채면서 지금까지 왔거든요. 그걸 지금까지 다 봤으니까 빚을 지고 있는 것이지. 스트레스를 주고 있잖아요. 음악 하는 사람이 죽을 때, 나 이제 다 음악을 다 알았다, 하고 죽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것과 같은 겁니다.

제4의 전성기라고 하셨어요. 부활이 정말 부활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직 부활은 아니에요. 더 가야죠. 부활 노래가 우리나라의 정서가 많이 들어간 음악이지 않습니까. 슬프고 아름답고…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사실 체험하기 힘든 음악이고. 우리나라 댄스 음악도 아름답지만 이런 음악이 있다는 걸 알리는 통로가 되고 싶어요..

이제 마흔 중반이 넘어가고 있으세요. 나이듦이 음악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요.
여물어 가는 거죠. 착오가 덜하고. 무모함이 없어지고. 정교함보단 느낌에 치중하고. 그런 식으로 바뀌는 거죠. 에릭 클랩톤 같은 분이 뛰어다니지 않잖아요. 자기 음악을 전달하고자 최선을 다하지. 그런 모습으로 변해가는 거 같아요.

언제까지 무대에 설 것 같으세요.
죽을 때까지. 설 수 있을 때까지.

팬들에게 한마디 전해주세요.
부활은 기다려 왔고, 잊을 만 할 때 다시 다가갔습니다. 또 잊혀진다 해도 저희는 다시 다가가리라 믿습니다.


**김태원씨와 부활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댓글로 남기시는 분들 중
두 분께 멤버들의 사인이 담긴 부활 12집 앨범을 드립니다.(18일까지)**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club.cyworld.com/docuh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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