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무대는 나를 숨쉬게 한 곳…황정민 선배 보며 용기 얻어” ‘리차드3세’ 장영남

작성일2021.12.29 조회수13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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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8년, 타이틀롤을 맡은 황정민의 열연으로 뜨거운 갈채를 자아냈던 연극 ‘리차드3세’가 4년 만에 돌아온다. 올해 황정민과 함께 캐스팅보드에서 눈길을 끈 이름은 엘리자베스 역 장영남이다. 무대에서 연기 공력을 쌓은 지 26여년, 최근작 ‘검은태양’, ‘악마판사’를 비롯해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사랑받은 배우 장영남이 ‘엘렉트라’(2018) 이후 오랜만에 연극에 출연한다. 

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한 배우들의 연극 사랑은 늘 각별하다. 28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장영남은 연극 무대를 가리켜 “나를 살아 숨쉬게 한 곳”이라 말했다. 그녀에게 무대는 ‘집념’이라고도 표현할 만큼 강하고 질긴 열망과 삶의 원동력을 갖게 해준 공간이라고. 그런 공간에서 그녀가 빚어낼 또 다른 인물, 잔인하고 악랄한 왕 리차드3세(황정민 분)에 대항하는 여인 엘리자베스는 어떤 인물일까. 

Q ‘리차드3세’ 출연 계기는. 초연을 봤는지.   
초연을 봤다. 황정민 선배를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봤고 예전에 다른 연극에서도 봤는데, 이렇게 큰 무대에서 연극을 하시는 모습이 되게 새롭고 멋있었다. 무대로 오셔서 이렇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주시는 것이 고마웠고, 공연도 웅장하고 멋있더라. 

‘리차드3세’ 출연 제안을 받은 것이 오래 전은 아니다. 마침 연극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제작사) 대표님 연락을 받았다. 예전에도 연극 제안을 받고 못했던 적이 여러 번이라 이번에는 어떻게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차드3세’는 셰익스피어의 고전 명작을 알차고 속도감 있게 보여드리는 선물 보따리 같은 작품이다. 황정민 배우의 색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Q 황정민 배우와의 호흡은 어떤가. 
너무 멋진 선배다. 에너지가 너무 좋으시더라. 나는 이 작품에서 이제 막 시작한 신인 같은 느낌이 든다. 재공연에 새로운 멤버로 투입된 상황이라 작품에 누가 되지 않게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황정민 선배님을 보면서 용기와 힘을 얻는다. 

Q 서재형 연출과의 인연은. 
전에 한태숙 연출님의 연극을 할 때 서재형 연출님이 조연출로 계셨고, 배우로도 잠깐 무대에 서신 적이 있다. 당시 오현경 배우가 건강 문제로 응급실에 가셔서 서재형 연출님이 대신 무대에 섰는데, 연기를 되게 잘하셨다. 이번에 다시 함께 하면서 느끼는 것은, 모든 연출의 호흡이 굉장히 디테일하고 섬세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디테일한 부분을 많이 생각하고 잘 잡아주신다.
 



▲ 연극 '리차드3세' 엘리자베스 역 장영남 
 
Q 이번에 연기하는 엘리자베스 왕비는 어떤 인물인가. 
생존력이 굉장히 강하고 권력에 대한 탐욕도 있는 인물이다. 결혼도 여러 번 하고, 그 와중에 자식을 잃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게 된다. 

엘리자베스의 대사 중 “파괴여, 죽음이여, 학살이여! 내게서 소중한 것을 빼앗아갈 것이라면 차라리 어서 다가와라. 나 어머니라는 신성한 이름으로 버텨낼 테니”라는 대사가 있는데, 이게 엘리자베스를 가장 잘 표현하는 대사인 것 같다. 리차드3세가 엘리자베스의 아이를 데려가려고 하는 장면에서 어떻게든 아이를 지켜내겠다고, 어머니로서 내가 버텨내겠다고 다짐하는 장면인데, 그만큼 매우 단호하고 끝까지 살아남으려 하는 여자다. 

Q ‘리차드3세’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무대화한 작품인데, 고전만의 매력이 있다면.
고전은 어렵다. 처음엔 잘 안 읽히는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원작을 다 보고 나면 시대를 뛰어넘는 힘을 느끼게 된다. 결국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아직까지 절절한 감동을 주고, 때로는 악몽을 선사하는 힘이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본능은 변하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Q 극단 목화에서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장영남 배우에게 연극 무대는 어떤 공간인지.  
나를 살아 숨쉬게 한 공간이고 내게 생명력을 준 공간이다. 처음 목화에 들어갔다가 잠시 (활동을) 쉬었고, 다시 들어갔을 때 했던 공연이 ‘새들은 횡단보도로 건너지 않는다’ 였다. 그 작품에서 1인 2역을 했는데 정말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대사를 할 때마다 설레고 벅찼다. 무대에 선 것만으로도 너무 좋고 신나서 죽겠더라. 정말 맹목적으로 열심히 했는데 그때 생각만 해도 너무 행복하다. 무대는 장영남이라는 사람한테 생명력을 준 은혜로운 공간이다. 

Q 요즘은 연극을 하던 배우들이 무대와 매체 활동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다. 
연극을 하셨던 분들은 무대가 자기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만큼 무대 특유의 따뜻함이 있다. 사람은 어렸을 때 자기가 자란 곳을 잊지 못하지 않나. 많은 추억과 안정감을 준 곳이니까. 그리고 방송을 하다가 연극을 하면 분명히 거기서 충전되는 힘이 있다. 연극은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한 호흡으로 함께 한 무대 위에서 공연을 만들어가는 작업이라면, 방송은 씬마다 나눠서 촬영하기 때문에 느낌이 다르다. 
 



Q 배우로서 끊임없이 다양한 작품에 도전하는 원동력은. 
나도 사실 인간이라 욕심이 많다. 배우라는 직업은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많이 노출되는 직업이지 않나. 동시에 내가 매번 변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내게 금방 싫증을 느낄 수도 있는 위태로운 직업이다. 끊임없이 연기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달라지고 싶다’는 열망인 것 같다. 고여 있고 싶지 않다는 마음, 굳어져 있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나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한다. 

Q 달라지고 싶다는 열망을 이야기했는데, 이번 ‘리차드3세’에서는 어떤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될까. 
사실 잘 모르겠다. 공연을 하고 나면 알게 될 것 같다. 지금은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어떻게 캐릭터를 잘 녹여내서 이야기를 잘 전달할 것인지에 집중하고 있다. 공연이 끝난 다음에야 이 작품이 내게 어떤 변화를 주었는지 스스로와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될 것 같다(웃음).
 



Q 배우로서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을 꼽는다면. 
연극 ‘분장실’. 스스로 새로운 약속을 하게 한 작품이다. 매일매일 ‘이건 정말 잘 해내야 한다’는 다짐을 하면서 모든 생활패턴을 다 차단하고 연기에만 몰입하게 한 작품이다. 당시 맡은 캐릭터가 정신이 온전치 않아 정신병원에서 매일 베개를 들고 다니는 키코라는 여성이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집념과 열망이 매우 큰 인물이었는데, 그런 집착과 열망을 배우고 싶었다. 
드라마 중에서는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 하나를 꼽기가 어렵다. 모든 작품이 터닝포인트인 것 같다. 

Q 배우 장영남이 집착하는 것은? 
단순하고 유치하지만 연기 좀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집착한다(웃음). 그리고 요즘은 아이가 잘 컸으면 좋겠다는 것. 

Q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 
행복한 배우가 되고 싶다. 결국 배우로서 ‘나’를 보여드려야 하는데, 행복을 드리려면 내가 행복한 배우가 되어야할 것 같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좀 막연하게 느껴지는 단어이기도 한데, 내가 그 단어를 좋아한다.
 



Q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우선 연극은 당연히 계속 하고 싶다. 한동안 많이 못 해서 아쉬웠다. 특히 박근형 선생님과 작업해보고 싶다. 박근형 선생님과 ‘누가 내 동생의 머리를 깎았나’, ‘경숙이 경숙아버지’ 등 여러 작품을 같이 했는데, 선생님 작품이 너무 좋다. 제가 너무 존경하는 선생님들 중 한 분이다. 선생님의 ‘너무 놀라지 마라’도 기억에 남는다.

Q 2021년을 돌아본 소감과 내년의 바람을 이야기한다면. 
올해는 연초부터 정말 열심히 활동해왔다. 보여진 것들도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활동을 쉼없이 이어와서 체력적인 소모도 컸다. 그래도 너무나 즐거웠던 시간들이었다. 캐릭터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고, ‘악마판사’, ‘검은태양’, ‘뫼비우스’ 등 작품도 다 재미있었다. 스스로 ‘너 정말 수고 많았어’라고 할 수 있는 해였다. 내년도 내게 주어진 역할을 열심히 고민하며 자분자분 잘 나아가고 싶다. 

글: 박인아 기자(iapark@interpark.com)
사진: 앤드마크, 샘컴퍼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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