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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을 가능케 한 마스터피스 <한밤중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작성일2014.09.18 조회수8378

지난 9월 10일 저녁, 뉴욕 브로드웨이 47가에 위치한 배리모어 극장 앞에는 기대감에 들뜬 관객들의 긴 행렬이 이어졌다. 영국 웨스트엔드의 화제작, 우리에게는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으로 알려진 <The Curious Incident Of The Dog In The Night-Time>의 뉴욕 브로드웨이 프로덕션 프리뷰 첫날이었기 때문이다. (10월 5일 정식 오픈 예정이다.)

극장 천정이 무너져도 좋은 작품은 계속돼야 한다!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이하 <한밤중 의문의 사건>)>이 뉴욕에 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2012년 8월 런던 내셔널 씨어터 코테슬로 극장 초연 이후, 2013년 3월 런던 웨스트엔드 아폴로 극장으로 옮긴 이 작품은 원래 예정대로라면 2014년 10월 25일까지 공연을 하게 돼 있었다. 그런데 12월 19일 공연 도중 극장 천정이 무너져 80여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일어나며 작품이 영원히 막을 내릴 위기에 놓이게 됐다. 극장이 보수공사로 문을 닫으며 <한밤중 의문의 사건> 나머지 공연일정도 모두 취소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대로 끝낼 수 없다고 결심한 출연진과 제작진은 자선공연을 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올해 7월에 런던 길거드 극장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는 동시에 뉴욕 브로드웨이 진출까지 성공한 것이다. 모두 이 작품을 뜨겁게 사랑한 스텝과 배우들의 힘이었다.

이웃집 개를 죽인 범인을 잡기 위한 수학 공식은 무엇? 그리고 그 해답은?
마크 해던(Mark Haddon)의 동명 베스트셀러 <한밤중 의문의 사건>은 자폐증을 앓고 있는 열다섯 살 소년 크리스토퍼가 이웃집 개를 죽인 범인을 추리해나가는 이야기다. 연극은 크리스토퍼의 담임선생님이 그가 책으로 기록한 이 추리과정을 읽는 콘셉트로 진행된다. 소년은 천문학과 수학 영재지만,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일까지 수학적으로 받아들여 사람들의 오해를 산다. 은유나 농담을 이해하는 것은 그에게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웃집 개를 죽인 범인을 잡는 일 또한 그에게는 수학문제를 푸는 것과 같은 일. 이 과정에서 소년은 엄마의 죽음에 얽힌 엄청난 사실과 직면한다.

말도 안 되는 것을 실현한 파격적인 무대와 연출
이 작품의 백미인 무대는 크리스토퍼 머릿속에서 스파클처럼 튀는 순수한 수의 세계로 관객들을 단번에 흡입해버린다. 연극 <워 호스(War Horse)>의 연출 마리안 엘리엇(Marianne Elliott)과 무대 디자이너 버니 크리스티(Bunny Christie)가 탄생시킨 이 파격적인 스테이지는 바닥, 벽, 천정까지 전체에 커다란 흑백 방안지를 붙인 하나의 블랙박스다. 사건이 생길 때마다 크리스토퍼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이 블랙박스에 LED 조명, 컴퓨터 그래픽, 각종 장치들로 표현해 하나의 놀이상자처럼 변화시킨다.

여기에 크리스토퍼가 시공간의 제약에서까지 벗어나 마음껏 상상의 세계에서 놀 수 있도록 배우들이 크리스토퍼를 공중에 띄우고 춤을 추듯 표현하는 동작들은 무대 위가 무중력 상태의 공간인 듯 한 착각마저 들게 하며 연극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 크리스토퍼가 처음 런던에 도착해서 겪는 정신적 충격을 표현한 장면은 공연 도중 관객들의 박수가 터져 나올 정도다. 연출의 말에 따르면 시적인 이 소설을 연극으로 올리기 위해 제작진은 말도 안 되는 것을 말이 되게 하기 위해 도전했고, 그 누구도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따뜻함과 웃음을 잃지 않은 순수한 크리스토퍼의 수의 세계
여기까지 들으면 자칫 수학, 천문학 이런 말들 때문에 작품이 다소 차갑게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너무나 영리하게도 연출은 이 커다란 블랙박스 속에 네온 컬러의 소품이나 의상을 배치해 소년이 느끼는 감정들을 따뜻하게 전달한다. 연극 <워 호스>로 유명한 작곡가 아드리안 서튼(Adrian Sutton)이 이번 작품에서는 전작들과 달리 실험성 강한 일렉트릭 뮤직을 선보이는데, 이 또한 수의 찬기와 감정의 온기를 오가며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원작을 연극으로 각색한 사이먼 스티븐스(Simon Stephens)의 재치 있는 대사와 씬들은 공연 내내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한다.

특히 크리스토퍼가 런던 언더그라운드 철로에 떨어진 애완 쥐 토비를 구하려고 철로에 내려가 뛰어다니는 장면은 최고였다. 토비를 구하려는 크리스토퍼와 그를 구하려는 승객들이 옥신각신하는 이 씬은 유머러스하면서도 리듬감이 넘쳐서 1996년 토니 어워즈 베스트 뮤지컬 의 한 장면이 연상될 정도였다. 연극에서 뮤지컬이 연상될 정도라면 얼마나 음악적이고 리듬감 넘치는지 상상이 될 것이다. 나중에 각색자 사이먼 스티븐스에 대해 알게 된 한 가지 사실은 그가 원래 원작자의 친구라고 한다. 그래서 각색을 요청받았을 때 두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고 하는데, 하나는 그냥 실험적으로 해보겠다는 것이었고, 하나는 자기가 얼마 받는지 비밀로 해줄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이르면 내년 초로 예정된 한국 공연
개인적으로 추측하기에, 제작진이 굳이 불가능을 가능케 하려고 애쓴 이유는 이 원작의 메시지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 탄생한 이 보기 드문 마스터피스는 런던에서 최우수 신작을 비롯해 ‘2013 올리비에 어워즈’ 7개 부문을 수상했고, 내년 초 국내에서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조금만 여담을 하자면, <한밤중 의문의 사건>을 보던 날, 한 가지 즐거운 일이 있었다. 마침 예약한 좌석 번호가 크리스토퍼가 좋아하는 소수라 깜찍한 기념품을 받았다. 야호! 혹시 모를 깜찍한 기념품 당첨의 행운을 위해 국내 공연 좌석 예약 시 소수를 고려해보시는 것도 좋겠다.

사진: The National Theatre production

글: 강경애
뉴욕에서 뮤지컬극작 전공 후, 뮤지컬 <마이 스케어리 걸> <비 라이크 조> 등을 쓴 작가. 뉴욕에 살며 오늘도 뮤지컬 할인 티켓 구할 방법과 재미있는 작품 쓸 방법을 궁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