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파이브 이어즈> 작곡가의 신작
<라스트 파이브 이어즈(Last 5 Years)>의 작곡가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의 신작이 지난 2월 20일 브로드웨이 제럴드 숀펠드 극장에서 첫 선을 보였다. 1995년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 주연의 영화로 제작돼 더욱 유명해진 로버트 제임스 월러의 베스트셀러 동명 원작을 뮤지컬화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The Bridges of Madison County)>가 바로 그 화제작. 제작진이 화려하다. <퍼레이드(Parade)>로 토니상을 받은 작곡가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을 비롯해, 퓰리처상과 토니상을 받은 마샤 노먼이 대본을, 그리고 역시 토니상을 수상한 바틀렛 셔가 연출했다. 토니팀이라고도 불리는 이 실력파들이 만든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과연 어떨까?

러브 스토리의 클래식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로즈만 다리에 화장해달라는 어머니의 유서를 받는 아들과 딸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영화와 달리, 뮤지컬에서는 여주인공 프란체스카의 솔로곡으로 막이 열린다. 다른 삶을 동경하지만 따분한 아이오와의 생활에 적응하며 살아야하는 평범한 가정주부인 그녀에게 어느 날 예의바른 이방인이 찾아온다. 사진작가 로버트 킨케이드는 한눈에 그녀의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린다. 가족이 나흘간 집을 비운 사이, 두 사람은 인생에 단 한 번 찾아오는 확실한 느낌, 운명적인 사랑임을 깨닫지만 프란체스카는 선뜻 그를 따라나설 수가 없다.

히로인 켈리 오하라를 위해 작곡된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의 음악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이 진부한 러브스토리가 뮤지컬로 만들어졌다고 했을 때, 흔쾌히 비싼 뮤지컬 티켓 값을 지불해보자 결심하게 만든 건 두 가지,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의 음악과 켈리 오하라의 탄탄한 연기와 가창력 때문이었다. 켈리 오하라는 9년 전 뮤지컬 <라이트 인 더 피아자(Light in the Piazza)>에서 나이에 비해 미성숙한 소녀 클라라 역으로 토니상 후보에 오른 후 <남태평양> <파자마 게임> 등의 작품에 출연하며 가장 표현력이 풍부하고 가창력이 뛰어난 배우 중 하나로 사랑받아 온 브로드웨이의 히로인이다. 뉴욕 타임스의 뮤지컬 비평가 벤 브렌틀리의 평대로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막이 열리고 켈리 오하라가 등장해 ‘아이오와’라는 지역 명을 노래하는 순간 아이오와의 매디슨 카운티가 갑자기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장소로 바뀐다.


켈리 오하라의 품위 있고 우아한 프란체스카는 이 진부한 스토리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원작에서처럼 두 사람의 사랑을 불륜이 아닌 운명적인 사랑으로 승화시킨다. 그녀의 상대역 스티븐 파스칼레의 목소리와 켈리 오하라의 목소리가 하나가 돼 듀엣송을 부를 때는 두 배우의 열창에 극장이 터질 것만 같고, 불같은 사랑에 극장이 열기로 꽉 찬다. 물론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로버트보다 스티븐 파스칼레가 더 매력적인 탓도 있겠다. 특히 두 사람이 함께 떠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을 노래하는 '원 세컨드 앤드 어 밀리언 마일즈'(One Second And A Million Miles)를 부를 때는 무척 안타깝다. 이는 분명 두 사람을 위해 쓴 듯한 제이슨 로버트 브라운의 음악이 두 사람의 사랑을 완성시켜 관객의 마음을 울리기 때문이리라. 그의 음악은 뮤지컬에서 좋은 드라마와 좋은 음악이 만났을 때 얼마나 파워풀해 질 수 있는지를 이 작품에서 다시 한 번 입증하고 있다. 영화에서 수많은 명대사가 감동을 줬듯이, 뮤지컬 버전에서는 명곡이 명대사의 역할을 한다. 영화에서 ‘인생에 단 한 번 찾아오는 확실한 느낌’이 뮤지컬에서는 '원 세컨드 앤드 어 밀리언 마일즈‘(One Second And A Million Miles)라는 노래가 돼 감동을 전한다.

2인 뮤지컬이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만으로도 충분한 작품을 브로드웨이의 큰 극장에서 공연하려다보니 무리수를 둔 흔적도 보인다. 영화에는 없는 인물들, 예를 들면 로버트의 이혼한 전처, 프란체스카와 로버트의 행적을 주시하는 이웃집 할머니, 그리고 영화에는 없는 두 사람의 과거 회상 장면들은 듀엣송을 더 듣고 싶은 관객에게는 군더더기처럼 느껴져 방해가 될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로버트와의 불륜을 꿈꾸는 이웃집 할머니와 그 남편의 이야기는 막간 개그 콘서트 같아서 재미있게 보기도 했지만 말이다. 큰 무대를 채우려다 보니 소품 이동이나 무대 변경이 너무 잦고 배우들에 의해 이뤄지는 점도 번잡해 보인다. 차라리 과감하게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상연한다는 부담감을 떨치고 2인 뮤지컬로 갔으면 더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영화는 열정적으로, 뮤지컬은 감성적으로
국내에서 영화가 상연됐을 때, 프란체스카가 로버트에게 달려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남편의 트럭 문을 끝끝내 열지 않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멀어지는 그의 차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확실한 느낌은 인생에 단 한 번 오는 거요”라는 로버트의 말을 속으로 되뇌는 두 사람의 눈물겨운 이별이 뮤지컬에서는 또 다르게 표현된다. 영화 속 프란체스카가 열정적인 여성이었다면 뮤지컬에서는 음악극답게 좀 더 감성적이고 음악적으로 표현된다.

1막 후 인터미션 때 앞에 앉아있던 관객들의 평이 들렸다. 책도, 영화도 별로였지만 뮤지컬은 정말 좋단다. 뉴욕 비평가들 의견도 영화보다 낫다는 평이다. 봄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3월,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켈리 오하라와 감동적인 음악이 올해도 혹시나 하며 순수한 사랑을 기다려보는 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 때문이리라. 로버트가 프란체스카를 찾아온 그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