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여름은, 뜨겁다. 뉴욕 예술이 화려하게 피어나는 가을을 앞두고 예술가들이 땀을 흘리며 창작욕구를 불태우는 시기이기 때문에. 뉴욕의 여름은, 시원하다. 작렬하는 뉴욕 더위에 지친 관광객과 현지인들을 위해 쿨한 무료 야외 공연들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부지런히 정보만 수집하면 최고의 공연들을 그야말로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절호의 장소와 시기가 바로 뉴욕의 여름이다. 그래서 올 여름 ‘브로드웨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 필자는 무료 야외 콘서트 <브로드웨이 인 브라이언 파크(Broadway In Bryant Park>의 실체가 무엇인지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했다.

2010년 7월 22일 목요일 아침 9시, 노란색 전철 N라인을 타고 ‘42가’에서 내려 (주황색 F라인에서 더 가깝다), 브로드웨이와 뉴욕 퍼블릭 도서관 사이에 위치한 브라이언 파크(Bryant Park)로 부지런히 향했다. 콘서트 안내 기사에서 ‘선착순 입장’이라는 문구를 봤기 때문. 공원에는 기온이 38도에 가까운 불볕 더위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부터 무료 콘서트를 보려고 하나 둘씩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배우들의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으려고 앞에서 세 번째 줄 중앙에 있는 의자에 앉는데, 옆에 있는 친절하게 생긴 미국 아가씨가 말을 건다.“의자를 여기로 더 바짝 끌고 오세요. 지금은 한산하지만 앞으로 한 시간 정도만 있으면 당신 줄이 세 번째가 아니라 열 번째 줄이 될 수도 있거든요.”

당장에 봐도 이미 여러 차례 이 콘서트를 찾은 관객인 것 같아서 지난 주에도 왔었냐고 물으니까 신이 나서 말하길, “지난 주에 진짜 멋졌어요. 뮤지컬 <빌리 엘리엇>, <남태평양 (South Pacific)>, <멤피스(Memphis)> 배우들이 나왔었어요. 이걸 보려고 아침에 롱 아일랜드에서 왔고 엄마랑 친구도 곧 올 거예요.” 

11시, 사운드 체크를 하기 위해 배우들이 하나 둘 리허설을 시작했다. 각 뮤지컬의 이름과 로고가 그려진 티셔츠에 청바지로 통일한 배우들의 의상이 눈길을 끌었다. 드디어 12시 반, 브라이언 파크는 관객들로 꽉 찼고, 이 무료 브로드웨이 콘서트가 드디어 실체를 드러냈다.

브로드웨이 인 브라이언 파크 는 뉴욕의 한 라디오 방송국이 뉴욕시민들을 위해 매년 여름 브라이언 파크에서 해온 일종의 라디오 공개방송 녹음현장이었다. 7월 초부터 8월 중순까지 최신 인기 브로드웨이 뮤지컬팀들이 그들의 히트곡을 대중들에게 무료로 선사해왔으며, 어느 새 뮤지컬팬들에게는 좋아하는 뮤지컬스타도 만나고 뮤지컬 넘버도 공짜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올해는 7월 8일부터 매주 목요일에 콘서트가 열리고 있었는데, 뮤지컬 <프로미시즈, 프로미시즈(Promises, Promises)>, <바나나 쉬필(Banana Shpeel)>, <인 더 하이츠(In the Heights)>, <오페라의 유령> 등이 공연됐다고 한다.

오늘의 MC는 미국 유명한 라디오 진행자인 딜라일라(Delilah Rene). 쾌활해 보이는 그녀가 카메라를 들고 나오더니 공연에 모인 사람들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다들 그러시겠지만, 저도 요즘 페이스북에 완전 재미들렸거든요. 제가 이렇게 여러분들을 찍으면, 어떻게 해야되는지 아시죠? 그렇죠. 제 페이스북에 오셔서 텍을 하셔야 해요. (즉, 내가 거기 있었다는 검증작업을 하라는 말) .” 나중에 그녀의 페이스북을 확인해보니, 진짜 쿨한 이 진행자, 위 처럼 사진들을 찍어놓았다.

이날 공연된 뮤지컬은 <폴링 포 이브(Falling For Eve)> <어 리틀 나잇 뮤직(A Little Night Music)> <시카고(Chicago)> 그리고 <록 오브 에이지즈(Rock of Ages)>였다. 현재 출연중인 배우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객석은 환호로 가득찼다. 정성껏 준비한 그들의 춤과 노래, 무대에 관객들은 더위도 잊은 채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개인적으로 이날 최고의 넘버는 <시카고>의 ‘올 댓 재즈’였다. 최고의 멜로디, 최고의 춤, 최고의 연기, 최고의 가사, 역시 5700회 이상의 공연을 이어올 수 밖에 없는 저력이 있었다. 그리고 이날 최고의 스타는 <록 오브 에이지즈>의 콘스탄틴(Constantine Maroulis)과 <폴링 포 이브>에서 아담과 이브 중 이브로 출연하고 있는 크리스탈(Krystal Joy Brown)이었다. 시원한 콘스탄틴의 록보이스와 2010년 이브의 미모에 다들 넋을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뮤지컬 <시카고>의 무대

<어 리틀 나잇 뮤직>

<브로드웨이 인 브라이언 파크>때문에 한 동안 뉴욕의 어느 여름 날이 시원하게 기억될 것 같다. 뮤지컬 넘버들이 좋았고, 무엇보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 배우를 포함해 관객, 스텝들까지 모두 함께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하며 보낸 시간이 좋았다.

8월 12일까지 계속 될 거라고 하니, 뉴욕 여행을 계획 중인 분들 중에 한가롭게 뉴욕의 빌딩과 브라이언 파크를 즐기며 점심도 먹고 브로드웨이 넘버도 즐기고 싶은 분들은 ‘해보면 좋은 일’ 목록에 넣어보시는 건 어떨지. 단, 선크림은 꼭 챙겨가시길! 뉴욕의 태양 때문에 화상 입은 뜨거운 통닭이 되기 딱 십상이니까.

* 이후 <브로드웨이 인 브라이언 파크> 일정
- 7월 29일: <라이온 킹(The Lion King)> <아담스 패밀리(The Addams Family)> <위키드 (Wicked)> <넥스트 투 노말(Next to Normal)>
- 8월 5일: <에비뉴 큐(Avenue Q)> <펠라(Fela!)> <밀리온 달러 쿼텟 (Million Dollar Quartet)>
- 8월 12일: <맘마미아(Mamma Mia!> <아메리칸 이디엇(American Idiot)> <라 카 지 오 폴스(La Cage Aux Folles)>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 <메리 포핀스(Mary Poppins)>

사진: 브로드웨이월드닷컴(www.broadwayworl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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