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시간을 도둑질 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럴 만큼 나현희는 카르멘에 대한 열정이 대단해 보였다. 완벽에 완벽을 기하는 여자로 알려진 나현희. 이번에는 카르멘이다. 연기에 구력이 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연습에 매달리며 스스로 ‘카르멘’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국적인 마스크에 어디서나 눈에 띄는 큰 눈으로 불과 같은 카르멘에 대한 열정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떼를 썼어요. 어느 기자 분이 제가 한 말을 그대로 써 놓으셨더라구요. ‘내가 떼썼다.(하하)’라고요. 그런데 정말 떼를 썼어요. 물론 오디션을 보았죠. 그날 카르멘 의상과 비슷한 옷을 입고 오디션장소에 갔어요. 저에게서 가능성을 보시고 붙여 주신 것 같아요.”

내 기억으로 그녀가 한국뮤지컬 대상 시상식에서 그것도 1회 때 <스타가 될 거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사실을 기억한다. < 베이비, 베이비, 베이비 >, < 아가씨와 건달들 >, <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등 그녀의 끊임없는 무대에 대한 사랑은 단순히 하고 싶어서의 차원은 아니었다. 그녀가 처음 뮤지컬이라는 것을 접하게 된 <아가씨와 건달들>을 통해 그녀는 뮤지컬 배우를 꿈꿔왔던 것이다. 무용과, 노래, 연기 수업을 받으면서 <스타가 될거야>가 뮤지컬에 있어 그녀의 첫 번째 작품이 된다. 오로지 열심히 했고 무대에 대한 애착은 대단했었다고 한다.

“무용을 했던 것이 저한테는 큰 도움이었어요. <스타가 될거야>를 비롯해서 많은 도움이 되었거든요. 이번에도 제가 무용을 안 했으면 카르멘이라는 작품에 몰두해서 연기하지 못했을 거예요.”
나현희는 정신없이 카르멘에 몰두하고 집착한다. 뮤지컬 <카르멘>을 접하기 전에 막연하게 <카르멘> 소설을 읽었고, 인터넷에서 <카르멘>에 관련된 비평가의 글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읽었다고 한다.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도 보고 <카르멘> 영화도 2편이나 봤으며 <뮤지컬 카르멘>의 지난 공연 두 편도 모두 보았다고 한다. 그런만큼 그녀는 열심이다. 완벽한 ‘카르멘’이 되려는 마음에서이리라.

“표현방식인 것 같아요. 자유주의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구속은 싫고 내 자신을 어떠한 대가로 내어 주지 않으면서 그것을 남에게도 강요하지 않는 여자. 선천적으로 그렇게 타고난 여자인 ‘카르멘’이 매력적인 것 같아요. 저는 30대인데 지금의 20대들에게 듣는 여자들의 모습이 ‘카르멘’을 닮아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깜짝 놀라게 되던데요. 남자에게는 매력적인 존재이면서 여자에게는 질투가 섞인 매력을 느끼는 사람인 것 같아요. 한 여자의 삶의 방식. 애증, 집착, 증오, 분노로 집요하게 가지려고 하는 욕구 등과 대립되게 데는 심리적인 것들이 저로 하여금 ‘카르멘’의 매력에 빠져들게 해요.”

‘카르멘’의 모습을 보기 위해 객석에서 보았을 때의 카르멘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는 연습을 한다. 카르멘의 빨간 립스틱의 여인이 기본적인 이미지라고 한다면 그 이미지를 뒤엎는 숨어있는 이미지를 찾고 있다고 한다. 대단한 노력이다. 숨어있는 강인한 모습의 무엇인가를 찾는다는 것이 그녀의 자신감을 더욱 더 견고하게 해 줄 것만 같다.

“큰 무대에서 ‘카르멘’을 관객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까가 저한테는 과제예요. 돈호세. 아니 누구라도 끌릴 수 있는 ‘카르멘’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생각이 많아요. 매 순간 몸짓이 카르멘의 모습으로 서있게 되죠.”

나현희는 이제 ‘카르멘’이다라는 말을 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래도 만족하지 못하는 욕심 많은 배우이다. 자신과 틀린 ‘카르멘’의 모습을 보면서 ‘이럴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카르멘’을 연기로 읽었다. 집시여자. 도덕적 관념의 여자이며 스페인의 집시무리에 있는 여자 카르멘. 이 여자의 자유로운 사고와 내면의 갈등을 외적으로 어떻게 보여지느냐를 고민하는 나현희에게 자신의 깊숙이 자리잡고 있던 알 수 없는 섬세한 부분들이 나오기 시작한다고 한다. 남자를 유혹하는데 매력을 느낄까? 매 순간 대사와 동선들이 사실스럽게 찾아지면서 ‘카르멘’이 살아나고 있다.

“연습이라도 느낌은 달라요. 나현희라는 여자를 잊고 살아야 해요. 그래야 무대에서 ‘카르멘’으로 관객들에게 보여드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옷도 집시 풍의 옷들로만 골라 입게 되요. 평소에도 카르멘의 생각으로 모든 생각과 행동들이 결정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시간이 없어요. 아침 10시부터 밤 12시까지 연습실에서 살고 있어요. 결국은 자신이 노력한 만큼 나오거든요. 무대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그것이 무대의 매력이면서도 절대적인 법이죠.”

그녀는 집에 양해까지 해놓았단다. 카르멘으로 살게 도와달라고. 그녀는 꼼꼼하고 세심하다. 완벽에 가까운 생활을 하려고 끊임없는 노력을 하는 배우라고 밖에 생각이 안 든다. 무대 위에서의 앙상블들이 자신의 책임을 다하여 열의를 가지고 무대에 오르는데 주인공들은 책임의식을 가지고 무대에 임해야 한다고 그녀는 굳게 믿고 있다.

“김영민씨요? 영민씨는 여자로 하여금 보호본능을 발동시키는 눈빛을 가지고 있어요. 생각을 많이 하는 배우이고 진솔한 연기를 한다고 생각해요. 문수씨는 비주얼이 돈 호세예요. 순수, 천진난만 그러면서도 우수에 찬 얼굴을 가지고 있어요. 두 분 모두 호흡이 잘 맞아요.”

돈 호세의 집착이라면 카르멘은 도망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카르멘은 돈 호세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돈 호세를 너무도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되는 카르멘은 ‘널 위해 널 놔준다. 날 만나면 넌 죽고 말아. 놔줄 수 있어.’라고 내면에서 끊임없이 괴롭고 지쳐간다. 그러나 겉으로는 냉정하게 돈 호세를 대한다.

카르멘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어김없이 죽는다. 투우사가 투우를 벌이는 경기장으로 향하는 카르멘의 발걸음에 돈 호세는 카르멘을 칼로 찌른다. 죽여서라도 자기의 여자로 만들겠다는 지독한 사랑을 보여주는 돈 호세의 모습에서 치를 떠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얼마나 사랑했으면이라는 생각으로 이 장면을 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대는 과거이지만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을 닮아 있다. 현대적인 사랑관념을 담고 있는 것이다. 카르멘의 대본이 수정되어 진 것이다. 예전에 대하였던 ‘카르멘’과는 사뭇 다르다. 그 ‘카르멘’ 선상에 나현희가 서 있다. 자유롭고 당당하여 아름다워서 멋진 여자 ‘카르멘’을 보여주기 위해 그녀는 오늘도 연습에 몰두한다.

“뮤지컬 ‘카르멘’은 수박 겉핥기식의 뮤지컬이 아닌 깊이 있는 작품이예요. 연출을 맡고 있는 고선웅씨는 자신의 연출 방향과 카르멘에 대한해석이 분명한 연출자예요. 세심하고 민감한 부분까지 챙기면서도 큰 선을 바꾸지 않는 신념이 있는 연출가예요. 그래서 믿고 기댈 수 있는 연출가죠.”

나현희는 칭찬 일색이다. 물론 같이 작업하는 배우들과 스텝들에 대한 자부심은 다른 작품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일이겠지만 나현희는 심할 정도로 그렇게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카르멘’이라는 하나에 커다란 목적을 두고 마음을 같이 하고 있다는 증거는 아닐까 싶다.

“가장 기억에 남고 욕심 많고 사랑했던 작품이요? 음.. <뮤지컬 카르멘>을 끝내고 나면 이 작품일 것 같아요. 저에게는 이 작품이 참 중요해요. 무대에서 카리스마 있는 ‘카르멘’을 보여주고 싶어요.”

완벽에 완벽을 추구하는 카르멘 나현희. 배우로서 한 남자의 아내로 한 아이의 엄마로 미안하지만 ‘카르멘’을 선택한 나현희가 점점 더 카르멘에 빠져들고 있다. 무대에서 자유롭고 정열적인 카르멘을 빨리 보고 싶다. 그녀가 전해 주는 색다른 사랑학을 느끼고 싶다. 20일 가량의 시간을 어이 기다릴까? 초초함이 내 손에 땀으로 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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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준한 (인터파크 공연팀 allan@interpark.com)
사진 : 김소미 (C&Com 홍보팀장 flysom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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