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무대의 미학을 아는 배우 추상미

작성일2005.02.16 조회수10401
트위터 공유 페이스북 공유 RSS 구독
글자크기 본문 글자 크기 확대 본문 글자 크기 축소 스크랩 이전글 다음글 목록



“난 아무에게도 이 노트를 안 보여줬어요. 당신이 처음 보길 원했다구요.
어젯밤에 내 맘을 알았어요. 내 마음. 이건 바로 나예요. 나는 당신을 믿었어요.”
믿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확한 그녀의 마음은 몰랐다. 아니 그녀의 수학자적인 존재를 몰랐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지도 모른다.
핼의 입장에서는 그 자체만으로도 지성과 감성간의 싸움이었을 테니까. 캐서린은 불안하고 복잡하고 신뢰가 깨지고 분노하였다. 과연 실타래처럼 얽혀버린 인간관계를 그녀는 어떻게 풀게 될까. 아니 연극 프루프는 어떻게 풀었을까. 궁금해 졌다.

2월 4일부터 동숭홀에 올려진 연극 ‘프루프(Proof)는 지성과 감성간의 미묘한 관계를 수학적인 사고로 풀어나가는 미묘하지만 ‘사랑’이라는 단어가 떠날 수 없는 그런 무대를 만나고 왔다.

설 전 날 동숭홀 1층 어느 커피숍에서 따스한 햇볕이 내려 쬐는 오후에 빨간코트를 입고 해맑은 모습으로 맞아 준 추상미(32)씨를 만났다. 4명의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2시간 여 공연 시간중 7-8분만 무대를 비우는 추상미씨는 극 중애서 천재지만 정신병적 기질을 가진 수학자 로버트의 딸인 캐서린으로 분한다.
"캐서린은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아버지를 뛰어넘는 천재성을 가졌으면서도 아버지 병간호로 인해 재능을 발전시킬 기회도 없었고, 5년이라는 기간 동안 희생했다는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있어요. 동시에 아버지의 광기 어린 정신병을 물려받았을 수도 있다고 두려워 하죠. 불안과 공포에서부터 이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프루프>는 천재지만 정신적으로 문제를 가진 수학자 아버지 ‘로버트’를 돌보아 온 둘째 딸 캐서린에 관한 이야기이다. 로버트의 장혜식 전날밤으로부터 시작되고, 이 날은 마침 캐서린이 25번째 생일을 맞는 날이다. 아버지의 생전 제자인 핼이 그가 남긴 백 여권의 노트 속에서 가치 있는 연구물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뉴욕에서 금융분석가로 성공한 그녀의 언니 클레어는 수학적 재능을 보이고 있는 동생 캐서린이 아버지와 같이 정신적으로 불안정 해질 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캐서린과 핼 사이에 사랑이 싹트게 되었고 캐서린은 핼에게 뛰어난 수학적 증명이 담긴 노트가 있는 곳을 알려주고 그것이 자신의 연구 결과임을 밝히지만, 핼과 클레어는 캐서린의 주장을 의심하게 된다.

캐서린은 "그 엄청난 증명은 내가 쓴 거야. 내 글씨고, 내 노트야. 못 믿겠어? "라고 항변하지만 그럴수록 정신이상을 의심받을 뿐이다.
“말이 돼? 40페이지나 되는 걸 보지말구 얘기하라구? 이게 스파케티 조리법인 줄 알아? 말도 안돼. 내 노트고, 내 글씨, 내 열쇠, 내 서랍, 내 증명이야!”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했었다. 증명이 필요했었던 것이다.

이런 갈등과 관계에서 캐서린은 배우게 된다. 믿음을 보여 주게 되는 세련된 방법과 고통을 이겨내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과 그것으로 성장하고 독립해 나가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2003년 <프루프>때 고민하게 했고, 경험과 갈등이 맞닿아 있었던 그 때 화학작용처럼 진실되게 겪었던 때가 바로 이 때라 한다. 연기로 무대에 쏟아 내고 진실되게 무대에서 풀어 놓으면 관객들과 한 호흡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배우 추상미’
1994년 극단 무천의 <로리타>로 데뷔하면서 그녀의 배우라는 타이틀이 붙여졌다. 1998년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분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드라마, 영화, 뮤지컬, MC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활동 영역은 무한대로 뻗어 나갔다.
<생활의 발견>
“배우로는 모험을 요하는 부분이었어요. 현장에서 시나리오가 나왔고 대략적인 상황 설정만 주어진 상태에서 연기를 해야만 했죠. 그때까지 가지고 있었던 연기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엎었던 작품이었어요.” 배우로서의 거듭났던 작품 <생활의 발견>. 그녀는 그렇게 연기의 변신을 거듭하였고, 무대에서 배우고 익혀 나간다.
선천적으로 배우의 기질을 타고 난 그녀. 고 추성웅씨의 풍부한 감수성을 물려 받은 그녀는 작품의 캐릭터를 대할 때 마다 깊이 빠지지 않고 객관적인 수위를 지키며 조화를 생각하는 철저하게 분석하고 다른 배우들과의 조화를 생각하는 배우인 것이다. 그녀는 깊이 있고, 예술가의 가슴을 가지고 있으면서 겸손하고 남을 존중하는 고두심씨를 존경한다 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추상미는 고두심을 닮아 가고 있는 듯 하다.

‘연어’
그녀는 드라마, 영화, MC의 영역을 넓혀 가면서도 전에도 그러하듯이 언제나 무대에 선다. <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뮤지컬 빠담빠담빠담 >도 그러했고, < 연극 프루프 >도 그러하다. ‘무대’는 그녀에게 고향과 같은 곳일지도 모른다. 무의식적으로 돌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는 아버지로 인하여 무대를 접했고, 무대에서의 아버지를 보고 자랐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잊지 않아야 하는 곳이 ‘무대’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연어가 바다에서 다시 돌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작품은 캐서린과 핼, 아버지 로버트와 캐서린의 언니 클레어가 펼치는 팽팽한 심리극으로 관객들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고밀도의 수학 공식 증명보다 인간관계의 함수가 더 복잡하고 미묘하다는 사실을 앎과 동시에 이해와 용서, 로버트와 캐서린의 근끈한 사랑을 다시 한 번 알게 하는 연극 <프루프>.

그 곳에 추상미가 있었다. ‘배우’와 ‘추상미’는 분리된다. 그것은 곧 ‘성숙’을 의미한다. 예술가로 고뇌하면서도 가정을 이루고 그 관계와 상처를 주지 않고 생활인으로 평범한 삶을 사는 배우이고 싶어하는 추상미. 무게 중심을 자기 자신의 연기에 몰입하지 않고 전체적인 조화와 조율을 할 줄 아는 배우 추상미를 대학로 동숭홀에서 만나보자.

------------
글 : 이준한 (공연팀/allan@interpark.com)

[ⓒ 플레이DB www.playdb.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트위터 공유 페이스북 공유 RSS 구독
글자크기 본문 글자 크기 확대 본문 글자 크기 축소 스크랩 이전글 다음글 목록

댓글쓰기

입력
플레이DB의 모든 공연DB는 다음, 네이트 등 포털사이트 공연정보로 연동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