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Wit의 ‘윤석화’ - 그녀를 만나다.

작성일2005.02.04 조회수108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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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WIT는 무대입니다.무대는 저의 진실이니까요”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윤석화’ 그녀를 만나다.

언제나 배우이기로 한 윤석화가 5년만에 연극무대에 선다. ㈜PMC프러덕션(대표:송승환) ‘여배우 시리즈’의 첫 작품인 ‘Wit’에서 난소암에 걸려 죽음이 곧 Wit이며 비로소 죽음이 자유로워지는 50세 영문학 교수 비비안 베어링으로 무대에 선다. 극중 배역을 위해 최근 삭발을 해 화제를 모았었다.

2월 11일 청담동 우림청담씨어터에서 올리는 ‘위트’ 연습이 있는 설치극장 정미소에 마련된 객석 서가에서 윤석화 그녀를 만났다. 화장기 없는 그녀의 얼굴은 비비안의 얼굴과 흡사했으나 아름다움은 언제나 가지고 있는 얼굴로 보였다.

윤석화 치열하게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삶이 아름답잖아요. Wit를 통해 자유로움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삶이란 것이 어렵기도 하고 어덯게 보면 간단하기도 하죠. 그 삶의 행간의 의미가 곧 Wit이겠죠.

..죽음이 곧 Wit라는 말은 비비안 베어링이 난소암에 걸려 죽음을 앞에 두고 그 죽음과 힘든 싸움을 할 때 절실하게 느껴지는 삶에 대한 치열함. 죽음. 그 죽음이 Wit라는 진실을 알았을 때 죽음의 행간이 Wit가 되고 죽음이 비로소 자유롭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윤석화 저는 미리 죽지 않겠어요. 오늘 이 순간 최선을 다해서 사는 거죠. 죽음도 저를 죽일 수는 없어요.

..살아 있는 건지 죽어 있는 건지 모를 때에는 답답하지만 일할 때가 있고, 죽으면 잘텐데 열심히 일하고 쉴거라 한다.
난소암에 걸려 죽음에 이르는 행간 Wit를 받아 들이는 무게는 그리 만만치가 않나 보다.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윤석화 자신도 비비안 베어링이 되어 그녀의 삶을 되짚고 끄집어 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 작업의 일환으로 삭발을 했다. 삭발은 처음이 아닌 윤석화는 지난 1995년 창작극 ‘덕헤옹주’ 때에도 삭발을 했었다. 19일 삭발을 하면서 그녀는 울었다.

윤석화 어머니 생각을 하면서 울었어요. 배우가 잔인하죠. 언제나 여기서 해방이 될까 생각하면서도 작품이 우선이 되요. 어머니를 사랑해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요. 난소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지만 어머니는 이겨내셨죠. 노환으로 돌아가셨어요. Wit 대본을 들고 Reading을 시작할 때 백만분의 일초에 ‘우리 엄마가 이랬어’ 그 순간에야 어머니가 생각 났어요. 어머니가 난소암 말기 판정을 받으시고 항암치료하시면서 수술, 방사선 치료를 받으시며 깨어나실 때 ‘너무 아파.. 너무 아파..’ 하시던 어머니 손을 잡고 울었던 기억이 있는데 제가 하는 대사에 그 장면이 있어요.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났어요.

..야위셨던 어머니의 모습, 30년 세월.. 그런 그녀의 어머니 모습이 떠올라 가슴 저려 울게 되는 것 같다. 스스로 잔인하다고 하는 윤석화. 그녀의 어머니는 배우를 반대하셨단다. 평범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어머니의 마음이셨다. 하지만 나중에는 많이 성원해 주시고 그녀가 하는 연극은 빠짐없이 다 보셨다고 한다. Wit. 이 작품만 빼고.
자신의 몸과 영혼을 빌려 태어나는 또 다른 인물들. 그녀는 쉽거나 어울리는 배역은 없다고 한다. 어떤 확신을 가지느냐가 중요하다. 삶에서 어떤 계기나 경험으로 고난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되고. 윤석화는 그렇게 무대에서 모든 걸 배우고 익히고 깨닫고, 희망을 가지고 도전하고 절망을 배우고 새로움을 끝없이 배우고 있다 한다.

윤석화 잊을 수 없는 작품이요? 10년 만에 한 작품이 신의 아그네스였어요. 소극장 장기공연, 스타 등 많은 수식어들이 저에게 붙었죠. 무대에서는 관객과 만나는 것이 즐거움이었지만 무대를 내려왔을 때는 고통이었어요.

..육체적으로 많이 아팠었고, 마음 고생도 많이 했던 작품이라 잊혀지지 않았나 보다. 개인적으로 기도하는 것을 배웠고 하나님을 만났다 한다. 알려진 이름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란 어렵고 두려운 일이라 생각하지만 또 다른 힘이 되어 주었을 것이다.

윤석화 덕혜옹주는 창작극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만든 작품이었죠. 13세부터 60세까지 역사속에서 옹주로 태어나 정신병원에 감금되었다가 고국의 땅을 밟는 인생의 부피를 그려낼 수 있었던 작품이었죠. 이 작품으로 저는 배우로서 발을 내딛었다고 생각했죠. 마스터클래스도 잊지 못할 작품이죠. ‘마리아 칼라스 당신은 최고의 Diva가 되면서 이렇게 외로웠군요. 그래서 용기를 부르짖었던 거군요.’라는 생각으로 고난을 딛고 일어난 작품이었어요.

..관객들에게도 그런 용기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실험적인 것이 아닌 시험적인 작품이었다고 그녀는 말하며 온전히 승리하지 않으면 관객들도 받아 들이기 힘들었던 작품이었다고 말한다.
Wit를 만나면서 그녀는 그녀의 이름 석자에 콤마를 찍고 싶어했다.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하지만 막상 무대에 오르기 전에는 다 버리게 되고 사형대에 사형수가 오르는 심정으로 무대에 오르게 된단다.

윤석화 무대라는 땅은 진실이예요. 연습한 만큼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요. 저는 삶을 무대에서 배우죠. 아마도 저의 Wit는 무대라고 생각합니다.진실이죠.

그랬다. 윤석화는 삶과 생활 그리고 연극을 구분하지 않았다. 모두 하나의 삶인 것이 윤석화식 삶이다. 그러기에 그녀는 지금 난소암으로 죽음을 Wit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삶에 충실한 것일 것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식한다. 하나 하나 실천하면 지성이 쌓이고, 지성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우리 모두가 누리게 되는 과정을 윤석화는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

..지금 그녀는 비비안 베어링이었다. 화장도 신경쓸 수 없고, 삶을 돌볼 수도 없는 비비안 베어링 말이다.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이해하고,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비비안 베어링의 윤석화는 2월 12일부터 3월 27일까지 청담동 우림청담씨어터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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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준한 (공연팀/allan@interpark.com)
사진 : 전대수 (cloudsclear@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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