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형제의 유명동화 <백설공주>가 파격과 도발의 안무로 펼쳐진다.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안무상을 비롯해 수많은 예술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현대무용 안무가 앙쥴렝 프렐조카쥬가 자신의 대표작 <스노우 화이트> 한국공연을 앞두고 지난 13일 국내 언론에 작품을 소개했다.

<스노우 화이트>는 동화 <백설공주>를 소녀가 아닌 어른의 이야기로 재해석해 잔혹하고 에로틱한 분위기를 가미하고 체코 출신의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과 함께 엮은 발레공연이다. 2008년 리옹 비엔날레에서 초연된 이 공연은 이듬해 프랑스 언론 연합에서 수여하는 글로브 크리스탈을 수상하며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백설공주와 구스타프 말러가 만나다

특히 <스노우 화이트>는 현대무용과 구스타프 말러의 특별한 만남으로 주목을 받았다. 1984년 프렐조카쥬 무용단을 창단해 이후 <스노우 화이트><로미오와 줄리엣><헬리콥터> 등을 무대에 올려온 안무가 앙쥴렝 프렐조카쥬는 이에 대해 “말러의 교향곡은 로맨틱하면서 모던하다. 그림형제의 원작이 갖고 있는 가라앉은 어두운 정서와 일맥상통할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말러의 교향곡은 공연 곳곳에서 등장한다. 난쟁이들이 군무를 출 때는 교향곡 1번 3악장이, 백설공주의 성인식에서는 교향곡 2번 2악장이, 잠들었던 백설공주가 깨어나는 장면에서는 교향곡 5번의 4악장 아다지에토가 흘러나온다. “말러의 음악을 사용하는 것이 굉장히 조심스러웠지만,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었다.”는 앙쥴렝 프렐조카쥬는 “그의 교황곡은 무척 파워풀해서 마치 큰 숨을 토해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주 큰 호흡을 뱉으며 날개를 펼치고 비상하는 새와 같다. 그 새가 한국 관객들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배우들은 발레와 말러의 만남을 표현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백설공주 역의 에밀리 랄랑드는 “말러의 음악 안에 로맨티시즘이 가득해 춤추는 것이 재미있었다.”고 말했고, 왕비 역의 레아 드 나탈 역시 “말러의 교향곡 자체에 신비한 느낌이 있어서 그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고 전했다.

죽음과 에로티시즘의 만남…사과·키스 장면 기대돼

백설공주가 사과를 먹고 죽는 장면, 그녀가 왕자의 키스를 받고 다시 깨어나는 장면 등이 어떤 안무로 표현될지도 큰 기대요인이다. 앙쥴렝 프렐조카쥬는 백설공주가 사과를 먹고 쓰러지는 장면에 대해 “죽음을 가장 에로틱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장면이다. 두 무용수의 몸이 부딪혀서 이뤄내는 신비로운 합을 보실 수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여기서 사과는 백설공주가 그전까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하는 지혜의 상징이자 죽음의 상징이다.

백설공주에게 사과를 건네는 왕비의 몸짓도 여러 의미를 담고 있다. 레아 드 나탈의 설명에 따르면, 왕비는 어린 딸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자신이 가진 여자로서의 매력을 포기하고 싶어하지 않는 인물이다. 이는 나이가 들어서도 여성성을 포기하지 않고 부지런히 가꾸는 오늘날 40~60대 여성들의 모습으로, 안무가는 “왕비를 통해 사라져가는 여성성에 항거하는 여성들을 그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사과 장면이 ‘죽음’에 관한 메시지를 담았다면, 백설공주와 왕자의 키스장면은 ‘환생’을 표현한다. 이 장면에 대해 왕자 역을 맡은 쟝 샤를르 주니스는 “죽은 사람을 앞에 두고 서서히 커지는 말러의 음악을 들으며 연기하기 때문에 감정이 굉장히 자연스럽게 표현된다. 음악과 안무, 미장센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왕자의 품에 안긴 백설공주가 몸을 축 늘어뜨리고 가장 무겁지 않은 상태를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안무가는 이 장면의 안무를 고안하는 것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이번 공연은 세계적인 패션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가 디자인한 의상으로도 눈길을 끈다. 예전부터 장 폴 고티에가 표현하는 의상을 인상 깊게 봤다는 안무가는 이번 공연의 의상에 대해서도 “너무 좋다. 의상 하나하나를 볼 때마다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신선하고 파격적인 연출로 현지에서 화제를 모은 이번 공연이 국내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기대를 모은다. 앙쥴렝 프렐조카쥬는 한국 관객들에게 “공연을 보면서 떠오르는 감정들을 물 흐르듯 자연스레 느끼고 흘려 보내면 된다. 꿈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충분히 즐기라.”고 당부했다. 공연은 14일부터 16일까지 3일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볼 수 있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기준서(www.studiocho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