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주말,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의 공식 초청작 세 편이 동시에 무대에 오르고 있었다. 이중 지난 해 초연한 <오! 미스리>를 제외한 두 편인 <선피쉬>와 <아리랑>은 모두 정식으로 한국 관객을 만나는 첫 자리였다.

아쉬운 환상, 심청의 변신 <선피쉬>

페스티벌 개막작이기도 한 <선피쉬>는 한국의 ‘심청전’을 모티브로 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300석에 자신을 팔고 바다에 몸을 던지는 심청, 그녀의 효심에 감동한 신에 의해 다시 부활하여 아버지와 재회한다는 이야기의 중심은 같다. 하지만 심청의 부활과 뺑덕 어멈의 최후 등 각색을 통해 새롭게 변화된 부분이 묘미를 더한다.

뮤지컬 <카페인>의 작곡가 김혜영이 2004년 뉴욕대학교에서 독회를 시작한 이후 횟수로 8년 만에 한국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은, 2011년 보스턴 스톤햄씨어터에서 2월 10일부터 27일까지 정식 공연을 했으며, 2012년 1월 BWW 보스턴어워즈에서 중극장 부문 최우수 뮤지컬로 꼽히기도 했다.

작품을 매끄럽게 관통하는 세련된 음악은 <선피쉬>를 돋보이게 하는 가장 큰 부분이다. 아름다운 선율은 동화적 이미지에 잘 맞고, 등장 인물의 매력에 따라 영리하고 풍성하게 변신했다. 작곡가 김혜영과 마이클 쿠퍼가 공동 창작한 이 작품은 올 5월 ‘브로드웨이 차세대 송라이터 시리즈’에 초청받아 링컨센터 무대에 서기도 했다.

하지만 원래 중극장 작품이었으나, 대극장에 맞게 크기를 키운 이번 무대는 확장된 공간을 잘 구현해 내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몇 가지의 사실적인 대도구들만을 활용한 배경 설정과 변화는 무대 중앙 부분에서만 이뤄져 관객들의 시야를 한정지었고, 여백을 활용하는 정교한 조명이나 소품 등의 활용도 아쉬운 부분이었다. 배경에 비춰지는 그림자, 물고기 등의 등장이 아름답고도 동화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나, 대극장을 아우르는 환상미에 도달하기엔 크기도 규모도, 그 효과도 미흡해 보였다.

각색을 통한 신선한 설정이 있지만, 그 부분이 크진 않기에 한국인에게 이미 너무나 익숙한 심청의 이야기가 국내 관객들에게 얼마나 감동적이고 기억에 남을 스토리로 다가설 지도 의문이다. 한국의 정서를 드라마틱하게 펼쳐낼 그 밖의 장치들이 더욱 웅장하고 정교하게 어우러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매력적 요소 가득 <아리랑-경성 26년>

<아리랑-경성 26년>은 독립 운동가이자 한국 영화계의 큰 획을 그은 나운규가 영화 ‘아리랑’을 찍던 그 때를 배경으로 한다. 영화를 통해 항일 정신을 표하고자 했던 나운규와 그의 동지들의 힘겨운 영화 제작기를 중심으로, 그 시대를 살던 각기 다른 처지의 젊은이들의 꿈과 열정, 그리고 사랑의 모습이 펼쳐진다.


1926년은 일제 식민지이기도 했으나 신 문물이 쏟아져 들어온 때기도 하다. 절망과 꿈을 모두 안고 사는 그 때의 젊은이들의 마음과 분위기는 오늘 날 관객들에게는 더욱 흥미롭고도 매력적이다. 들뜬 마음처럼 발랄한 안무와 자신들의 존재처럼 처철한 모습이 교차하며 <아리랑>의 맛은 배가 된다.

영화 제작을 향한 나운규의 노력을 비롯, 말괄량이 노진요와 작곡가 이산엽의 사랑, 독립 운동에 가담한 동생을 둔 반재령, 그리고 불후한 환경에서 자라 인기 가수가 된 양승인, 거기에 친일파 성향이 짙은 기자까지, 인물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은 일편적 사랑이야기로 치우치거나 애국심에만 호소하지 않고, 작품의 결을 다양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 결이 굵게 뻗어나가지 못한 것은 아쉽다. 충분히 힘을 주어도 될 이야기의 중심이 약하고 인물들의 개성도 더욱 살아 숨쉴 여지가 많다. 서막부터 잔잔하게 채워 오르는 선율을 비롯, 이 작품의 소재 만큼이나 음악의 매력은 크다. <미녀는 괴로워> <대장금> <첫사랑> 등의 창작 뮤지컬의 작사, 작곡을 비롯, 라이선스 작품의 번역가로도 활동해 온 이지혜가 쓰고 작곡한 신작으로, 제법 오랜 시간 작품을 구상하고 다듬어 온 만큼 군더더기 없는 세련된 음악이 <아리랑>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현과 관을 적절히 어울린 다채로운 악기로 사운드를 구성해 낸다면 그 풍성함은 더욱 커질 것이다.

탄탄한 연기력과 매력적인 보이스를 가진 배우들도 이 작품의 보배다. 신예 안은진은 안정적인 연기와 노래로 작품의 중심에서 이야기를 끌어 가며, <젊음의 행진> <완득이> 등의 이하나는 맛깔스럽고도 구슬픈 목소리로 슬픈 사연을 안고 가수가 된 양승인을 표현한다. 무엇보다 유일하게 여타의 극중 배역들과 다른 색을 지닌 지식인 모던 보이로 등장해 날카로운 모습과 동시에 정색하고 웃기기 까지 하는 박은태의 변신은 무척 신선하고 강렬한 모습이었다.

대구뮤지컬페스티벌의 지원을 받아 지난 2월 서울에서 이틀 간 1막과 2막의 결말을 이은 워크숍 공연을 선보였고, 이번 대구에서는 전막을 올렸다. 공식 초청작으로서 ‘트라이 아웃’ 공연의 타이틀을 붙인 것이 다소 의아하다. 소재와 이야기, 그리고 음악과 형식 면에서 흥미로운 장점들이 많아 앞으로 정식 공연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