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 줄, 줄
공연 시작 1시간 전
물론, 공연 1, 2분 전 헐레벌떡 뛰어와 공연 초반 내내 헉헉대는 사람도 있고, 공연 후 첫 암전이나 떠들썩한 음악이 흐르는 것을 틈타 ‘쏘리’를 연발하며 자리를 찾아 앉는 관객도 있었다.

하지만 브로드웨이 극장가에서만 볼 수 있는 관객들이 만드는 진풍경은 공연 시작 3, 40분 전부터 극장 입구를 시작으로 길게 늘어선 줄이다.

한국에서는 몇몇 공연들이 전시용으로 계획(?) 하에 관객들을 길가에 세워 두는 경우가 있지만, 브로드웨이는 다르다. 대부분 지어진 지 수 십 년에서 100여 년 가까이 되는 뉴욕 뮤지컬 공연장들은 로비 등 충분한 관객 대기 공간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관람객들은 극장 밖에서 공연 입장을 기다리는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 시간 공연과 함께 해온 이곳의 사람들은 익숙하고도 즐겁게 예매 티켓을 쥐고 입장을 기다리는 듯 하다. 극장 벽을 따라 차례로 줄을 서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살짝 흥분된 공연 체험이 시작되는 것이다.

까닭에 공연 시작 10분 전 극장에 도착하면 샌드위치 하나를 뚝딱 먹고, 5분 전에 도착하면 여유롭게 화장실에 들르던 한국에서의 습관을 뒤로 하고 일찌감치 <원스> 공연장으로 향하던 그 날, 더욱 놀라운 광경을 마주했다.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들의 줄이 공연장인 버나드 비 제이콥스 씨어터의 건물 두 면을 이미 둘러싸고도 넘치고 있었다. 이 때가 공연 시작 50분 전.

저예산 인디 영화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원스’는, 뮤지컬로 변신해서도 큰 이슈를 낳으며 승승장구를 거듭하고 있다. 올해 토니어워즈에서 최우수뮤지컬상을 비롯 극본, 연출, 남우주연상 등 8개의 트로피의 주인공이 된 이 작품은,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시작해 브로드웨이 공연으로 자리를 옮겨 ‘현재 가장 티켓을 구하기 어려운 공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새벽부터 시작되는 기다림
브로드웨이 극장가에서는 온/오프라인 예매 외에 티켓을 구할 수 있는 방법으로 ‘로터리 티켓’과 ‘러쉬 티켓’이 있다. 로터리 티켓은 공연 시작 2, 3시간 전 자신의 이름을 적은 종이를 함에 넣어 두면 극장 관계자가 소수의 인원을 뽑아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티켓을 제공하는 것.

러쉬 티켓은 10~20장 남짓 준비한 그날의 좌석을 선착순으로 관객들에게 정가보다 3분의 1 내지 반 값으로 파는 것인데, <원스> 공연장에 이른 아침부터 길게 늘어선 줄은 이 러쉬 티켓의 주인공이 되고자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줄의 시작이 너무나도 이른 아침이라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티켓 박스 운영이 시작되는 10시 이전에 이미 줄은 시작되는 데, 새벽 4, 5시부터 나와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티켓을 손에 쥐게 되며, 7, 8시 경에 나온 사람들은 때에 따라 빈 손으로 돌아가야 하는 불운을 안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2. 술
공연장에 들어가면 무대와 객석의 경계 없이 이곳 저곳을 오고 가는 관객들을 볼 수 있다. 무대 위에서는 배우인 듯한 사람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고 춤추며 박수치고 있고, 관객들 역시 함께 자리에 올라 음악에 가볍게 몸을 흔들며 즐기고 있다.

더블린의 한 펍으로 설정된 무대는 공연 전부터 긴장을 풀고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그곳의 분위기를 연출해 내고 있다. 특히 실제로 무대에서는 맥주를 팔고 있는데, 관객들이 손에 들고 있는 병맥주는 음료와 스낵을 팔고 있는 브로드웨이의 여느 극장에서도 만날 수 없는 메뉴. 연출자가 특별히 이 작품을 위해 허가를 받은 것이라고 한다.


3. 매력 넘치는 어쿠스틱 음악
공연 전의 분위기를 신나게 즐긴 후 극장 불이 서서히 어두워지면 본 공연이 시작된다. 아일랜드 더블린 한 거리에서 기타 연주를 하며 노래하던 남자는 마지막 노래를 끝으로 기타를 두고 떠나고 그를 유심히 지켜보던 한 체코 출신 여자는 그를 따라 나선다. 영화의 줄거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뮤지컬 <원스>는 우연히 만나는 ‘남자(Guy)’와 ‘여자(Girl)’가 음악을 통해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치유 받으며 새로운 사랑을 깨닫는 고요하고도 감동적인 과정을 따라가고 있다.

무대 전환이 없는 소규모의 원 세트는 한 번의 퇴장도 없이 무대 위를 오고 가는 배우들로 장면을 연출해 낸다. 현란한 조명도,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스타배우도 없이 수 많은 사람들을 <원스>에 홀릭하게 만드는 것은 어쿠스틱한 음악이다.

배우들이 직접 음악을 연주하는 액터-뮤지션 뮤지컬인 <원스>는 주인공 남녀가 기타와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 이외 다른 배우들도 바이올린, 첼로, 만돌린, 아코디언 등을 연주하며 이야기와 장면, 그리고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흥겨운 아이리쉬 음악이 한창일 땐 우리도 더블린의 한 펍에 앉아 있으며, 침묵 속 기타 선율에 주인공 남자의 울부짖듯 노래 소리가 퍼져나가면 객석 이곳 저곳은 훌쩍이며 눈물을 훔치기에 바쁘다.

영화를 이미 본 사람들이라면 ‘Falling Slowly’, ‘If you want me’, ‘Say it to me now’ 등 감성을 뒤흔든 명곡을 라이브로 접하는 감동도 더할 것이다. 간결하고 함축적인 안무는 현란한 조명과 크고 빠른 동작의 브로드웨이 쇼 뮤지컬 속에서 돋보일 수 밖에 없는 <원스>의 힐링 스테이지 매력을 십분 선사하고 있다. 발 빠른 한국 뮤지컬 시장의 <원스>를 향한 구애가 이미 시작됐다는 소문이 들리는 가운데 그 실현이 어느 때 보다 기다려진다.

글/사진=뉴욕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