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어주는 울타리가 없다는 것이 삶을 이리도 처절하고 서글프게 만든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불판 위의 곱창은 고소한 냄새보다 오래 전부터 내 몸 곳곳에 배어버린 진득한 누린내를 더한다. 그저 열심히 곱창을 뒤집고 또 뒤집어 입에 넣는 것. 한국인으로 일본말을 하는 이들이 오늘을 살아내기 위해 멈춰서는 안 되는 일이다.

곱창집 주인인 김용길은 태평양 전쟁과 한국전쟁에서 한쪽 팔과 아내를 잃고 일본에 터를 잡았다.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은 1969년 일본 간사이 지방, 바람 잘 날 없이 떠들썩한 ‘용길이네 곱창집’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들의 세 딸과 한 명의 아들은 아비 씨와 어미 배를 각자 타고 나기도, 또 그 사이에서 태어나기도 했다. 비참한 현대사에 첫 짝을 잃은 김용길과 그의 처는 소용돌이 속에 서로 의지하며 생을 이어갈 또 다른 버팀목을 찾은 것이며 이들의 조합은 실로 아름답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조합들이 부딪히는 삶의 순간들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사고로 다리를 저는 큰딸, 다혈질 둘째 딸, 철 없는 셋째 딸, 그리고 일본 사회에 섞이기 힘든 막내 아들까지 더하니 하루도 고운 숨이 나오지 않는다. 값을 주고 산 가게 터는 국유지에 불법으로 들어앉은 꼴이 되었으니 살아가는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고통은 가족사로 마침표 찍는 게 아니다. 이 집에 모여 떠들썩하게 마시며 이야기 하고 노래하고 또 울고 웃는 사람들, 재일교포로 사는 이들 중 사연 없는 이 없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그저 철저히 소외 받는 계층으로 '우리'가 아닌 '너희'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생을 의미하는 지 절절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야끼니꾸 드래곤>은 처절한 이들의 모습을 조망하는 데 그 의의가 있지 않다. 용길이네 곱창집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진 후, 잃은 것이 많아 실을 것이 별로 없는 리어카에 ‘내일도 살아보련다’는 희망을 가득 채우고 힘차게 발을 굴러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힘차게 손을 흔들어 기쁜 안녕을 고하는 것이 이 작품의 메시지며 이들이 힘겹게 세대를 거듭해 올 수 있었던 이유임을 알게 해 준다.

함석 지붕 위로 나리는 벚꽃 잎은 아름답고, 장구 장단과 아코디언 멜로디가 맞추는 쿵짝은 객석도 들썩이게 만든다. 일본 배우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려 폭발하고 또 인내하는 고수희, 신철진, 주인영 등 한국 배우들의 연기도 놀랍다. 웃다가 뭉클해지고, 눈물이 설움이 되기 전에 다시 배꼽을 잡게 만드는 것이 <야끼니꾸 드래곤>의 매력이며 마력이자 놀라운 조화이다. 감동은 시들지 않는다. 2008년 초연의 기립박수가 2011년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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