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버벌이다. 공연을 보는 내내 해외 공연 페스티벌에서 선보여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말이 없었으나 세밀한 감정 하나하나가 객석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말보다 더한 설득력을 가진 ‘마스크’가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어로 ‘가면’이라는 뜻의 연극 <반호프>는 어느 한 기차역을 배경으로 한다. 이른 아침 문을 여는 매표소와 잡화점을 비롯해 이곳이 터전인 사람들과 행인들이 하루 종일 쉼 없이 교차한다.

단순한 해프닝의 연속으로 비춰지는 이들의 일상 속에서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것은 청소부 아주머니를 짝사랑하는 한 할아버지의 ‘프로포즈 시도기’에 있다. 수 많은 우여곡절 속에서 가슴에 품은 장미 한 송이를 그녀에게 전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 되고야 만다.

연극 <반호프>는 이야기에서 시작한 작품이 아니라 ‘마스크’라는 오브제에서 출발한 무대다. 얼굴을 가리고, 본심을 숨기는 음울한 의미는 역전되었다. 섬세하고 재치있게 디자인 된 이들 가면이 가진 제각각의 표정에서 우리는 그 사람의 직업, 성격, 습관, 심지어 말투까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한 가지 모습으로 굳어진 마스크가 실로 여러가지 표정을 자아내는 마법 뿐 아니라, 총 37가지 배역들이 단 4명의 배우가 펼친다는 뒷이야기에도 놀라게 될 것이다. 기존 공연에서 모자나 가발 등 간단한 소품으로 1인 다역을 선보였던 ‘퀵 체인지’와는 달리, 어색함이나 과장됨이 전혀 없다. 이들은 각각 온전한 ‘한 배역’으로 무대에 선다.

이 작품에서는 상식적으로 ‘말할 수 없는 어이 없는 존재’만이 몇 마디 말을 한다. 세태풍자는 ‘너무 오버’인 해석이겠지만 아이러니하고도 재미있다. 더한 가능성이 충분히 예상되는 '창작집단 거기가면'에 깊은 심리 묘사와 유기적인 이야기를 담은 새로운 가면극도 기대해 본다. 애초에 ‘지고 들어가는 게임’일 것 같은 곳에서 거두는 승리가 더욱 달콤하지 아니한가.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바나나문 프로젝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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