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5일..
평소에 같이 공연을 보는 친구들과 같이 연강홀을 찾았다. 주변에서 좋은 작품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고, 결혼을 앞두고 있는 한 친구가 나에게 ‘너같이 연애에 대해서 대책(?)없는 놈은 꼭 봐야 한다.’ 라고 강력 추천을 했기에 많은 기대를 하였다.

예전에는 공연에 대해서 이런 저런정보를 미리 확인하고 공연을 봤지만, 요즈음에는 오히려 아무런 사전 준비 없이 공연을 보는 편이 선입견 없이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주연 배우 4명의 이름만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의자에 앉았다.

작품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를 하자면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생길 수 있는 다양한 얘기들을 일정한 줄거리 없이 계속 연결하여 보여주는 형식의 뮤지컬이다. 처음에는 다른 뮤지컬처럼 주인공이 있고, 일정한 줄거리가 있는 작품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신 없이 바뀌는 무대를 보면서 어느새 나도 모르게 무대에 빠져들고 있었다. 범람한다는 말이 딱 좋을 만큼, 많은 뮤지컬 작품들이 무대에 올라오고 내려가고 있는 요즘. 오랜만에 시원한 작품을 만난 느낌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우선 다른 그 무엇보다도 작품을 이끌고 있는 네 명의 배우들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다. 네 명의 배우들이 모두 주인공이 되어 수 많은 배역들을 모두 개성 있고, 맛깔스럽게 그려내어 각 장면장면마다 같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정신 없이 2시간여를 보내고 나올 수가 있었다.

만나고 헤어지고, 싸우고 화해하고 … 새 생명이 태어나고 또 죽어가고…
우리 주변에서 너무 쉽게 볼 수 있는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그려낸 것이 관객들로 하여금 정신 없이 작품에 빠져들게 하는 것 같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
첫 만남에서 내숭을 떠는 여자들의 모습이나 허풍을 부리는 남자들. 백화점에서 부인을 따라 다니다 지친 남자의 모습. 비단 나만의 일은 아니었으리라.



일정한 줄거리 없기에 네 명의 배우들이 어떻게 캐릭터를 살리는 것도전체적인 완성도를 올리는 데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하는데, 이번에 공연한 네 사람은 전체적으로 조화도 잘 맞고 각각의 배역도 실감나게 소화를 한 것 같다.
‘연기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닐까?’ 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남경주,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부터 나이를 먹은 할머니 역까지 무리 없이 소화하는 이정화.
남자답고 씩씩한 모습에서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모습의 정성화.
우아하고 분위기 있는 역할부터 털털하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오나라.
모두 이 작품에서 자신의 다양한 모습들을 나타내고 있었다.

다음으로는 깔끔한 소품과 세트를 이용한 자연스러운 무대 전환이 작품을 더 재미있게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승마 바지나 군용 잠바를 통한 남성상의 상징이나, 핑크색 드레스와 부케로 강조된 노처녀의 모습 등. 짧은 시간에 다양한 무대 전환과 수많은 캐릭터가 등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산만하거나 어색함 없이 장면 장면이 연결되어 거부감 없는 무대를 접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4개의 의자를 이용하여 박진감 넘치게 자동차 운전을 묘사한 장면과 비디오 촬영을 통한 이혼녀의 자기 고백 장면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다소 엉뚱한 이야기지만 이 작품을 통해 특정 회사의 제품을 광고하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 박수를 보낸다. 괜히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 업체의 이름을 노출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필요한 부분에 제품을 선보이고, 광고료도 받는 것이 제작비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다(광고료는 꼭 받았으리라 굳게 믿고 있다.).
사실 지난 봄에 올렸던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 크레이지 포유와 같은 작품에서 그 환한 네온의 배경에 국내의 전자 회사나 통신 회사 등이 실제 광고를 하면 영상으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도 있고, 광고 수입으로 인하여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기에 간접 광고 노출에 대해서 의미있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기업들도 영화와 드라마 뿐만 아니라 뮤지컬이나 연극에도 자사의 제품을 노출시켜 투자하는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좋은 번안 뮤지컬을 보고 나오면 늘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작품을 우리는 왜 만들지 못할까하는 섭섭함이 우선 밀려오고, 기왕 번안을 할 것이면 보다 우리 삶의 모습들이 조금 더 녹아 들어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제니퍼, 멜리사, 로버트, 조던이 아니라, 경희, 인영, 주원, 민수의 이름으로 나오면 안 되는 것일까? 앵콜공연이 계속 된다고 하는데 회가 거듭될수록 더 멋진 모습을 무대에서 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 회사원이자 주원성, 전수경의 보금자리 ‘주전자’의 운영자인 이상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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