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서커스’. 세상의 많은 입들이 아트 서커스라고 부를 때, 정작 <네비아> 자신은 스스로의 이름 앞에 꿈의 서커스라는 이름표를 붙였다. 맞다, 이는 예술이 아닌 꿈이다.

태양의 서커스와 캐나다 서커스 양대 산맥으로 평가 받는 서크 엘루아즈의 <네비아>가 한국에서 공연 중이다. 2002년 선보인 <노마드>, 한국에도 소개된 2004년 제작된 <레인>에 이어 하늘 3부작 중 마지막 편인 <네비아>는 ‘안개’라는 뜻처럼 몽환적인 안개, 그것이 드리우는 꿈결의 기억으로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아련하게 만든다.

이 작품의 주는 매혹의 맛은 개인적인 기억과 우리들의 향수가 절묘하게 만나고 있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각각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장면들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이 무대에서, ‘첫사랑 루시아’ 편은 연출을 맡은 다니엘 핀지 파스카의 유년 시절 정육점 앞에서 놀고 있던 소녀의 기억이다.

첫사랑이라는 싱그러움에 걸맞지 않게 도축되어 날로 걸려진 고깃덩어리들을 배경으로 큰 칼을 들고 춤추는 여인. 이 장면이 우리의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것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배경 속에 춤추고 있는 첫사랑 루시아의 모습이 너무나 부드럽고 아름답기 때문이다. 첫사랑의 아련함과 쉽게 사라지지 않은 여운이 노을 끝자락처럼 가슴에 맴돈다.

뿐만 아니라 수 십 개의 코르크 마개가 별똥별처럼 꼬리를 달고 허공을 오가는 모습, 그 속에 ‘하늘을 나는 꿈’을 꾸며 트램블린 위로 높이 멀리 떠 다니는 사람들 역시 어린 시절의 놀이와 소원의 한 장면을 꿈결처럼 풀어내고 있다.

하지만 공중에 내려진 한 가닥 천에 의지해 떨어지고 오르기를 반복하는 공중천 묘기와 뼈 마디가 규칙 없이 휘어져 아찔함과 경악 섞인 비명이 터져나오는 움직임, 둘과 셋이 어울려 또 다른 정형을 빚어내는 아크로바틱 등의 모습에서 한 치도 실수가 허용되지 않는 서커스의 기본이 충실하게 보여진다.

장면과 장면 사이 무대 전환을 위해 커튼이 드리워질 때도 이 공연을 끌어가는 곤잘로와 그의 친구들이 나와 올리오(olio, 무대 전환 사이 광대들이 막 앞에 잠시 나와서 무대를 꾸미는 것, 또는 여러가지 형태의 무대 모습 등을 일컬음) 무대를 선보이는데, 그것은 만담이 되었다가, 콩트가 되기도 하며, 마술이 곁들여진 연주회 이기도 하여 관객들이 언어가 배제된 서커스의 무대를 더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다음 무대에 대한 호기심을 자아내는데 소소한 힘이 되어 준다.

사진사 부모의 영향으로 연출가는 정적인 프레임 안에 정지된 장면들을 구상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아름다운 악기이고, 소품이며, 무대 장치이자, 경이롭게 움직이는 동적인 인체를 통해 유효기간이 없는 살아 움직이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거대한 스펙타클을 기대했다면 지루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네비아>는 그대로 아기자기한 꿈의 무대다. 어색하고 딱딱한 머리가 아니라 나도 모르게 엄습해 오는 안개를 피부가 먼저 맞이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대로의 감성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글 : 황선아 기자(인터파크INT suna1@interpar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