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歷史)’
이 두 글자를 떠올리는 당신의 얼굴은 아마도 고루하고 낡은 옛 이야기쯤으로 치부해버렸던 학창시절 국사 교과서를 떠올리며 미운 표정을 짓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역사는 그렇게 수험생만을 위한 교과 과목으로써 우리에게 한 때의 소나기와도 같이 쉽게 지나쳐 버리고 마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써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고, 살아갈 우리는 그렇게 우리들의 이야기에서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순간순간 속에는 일본, 중국 등 우리나라 인접 국가들의 역사 왜곡 만행과 그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분노가 함께 녹아 있다.

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만행과 더불어 다시금 우리나라 역사를 바로보기 위한 노력들이 확산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천 오백년 전 고구려 안악 3호분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 [안악지애사]가 주목을 받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싶다. 오랜 시간의 제작 기간과 두 달여 간의 실제 연습 시간을 가졌던 우리 창작 뮤지컬 [안악지애사]는 그렇게 2004년 8월 23일 드디어 제작 발표회를 통해서 처음으로 그 모습을 선보였다.

드라마 대장금의 주제곡인‘오나라’를 통해서 대중에게 알려진 가수 이안의 축가 ‘아리요’ 열창으로 제작 발표회는 시작되었다. 전통적인 우리 가락인‘아리랑’과 ‘쾌지나 칭칭 나네’의 절묘한 어울림과 현대적인 시대상을 반영한 가사의 조화는 묘한 매력과 흥겨움을 동시에 안겨주며 한껏 제작 발표회의 분위기를 돋우었다. 제작 발표회는 위원장의 축사, 뮤지컬 예고편 및 축하 동영상, 배우들의 시연, 질의응답 순으로 이어졌으며 전체 진행은 축가를 불렀던 뮤지컬 홍보대사 가수 이안이 맡았다.

한양대학교 전통종교예술대학원의 김경자 위원장은 정치적 색채를 배제한 순수 뮤지컬로써 [안악지애사]를 바라봐 주길 바라며, 관객들이 고구려의 날개를 달아줄 수 있기를 바란다는 인상적인 멘트로 짧은 인사말을 마감했다. 그 뒤로 이어진 뮤지컬 예고편은 자칫 제목에서 풍기는 역사적인 색채로 인해 딱딱하게 보이지 않을까하는 염려를 과감히 날려버리 듯 화려한 몸짓과 매혹적인 음악으로 펼쳐져 ‘예고편’이 익숙한 영화와는 사뭇 다른 신선한 뮤지컬만의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또한 최근 성황리에 공연되고 있는 뮤지컬 [지킬박사와 하이드] 주연 배우들의 릴레이 축한 메시지를 비롯하여 아테네에서 힘차게 올림픽 축구 8강의 신화를 일으킨 우리 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한 모습은 뭔가 특별한 제작발표회의 깜짝 묘미가 아닌가 싶다.

제작 발표회 시작부터 고대했던 전체적인 컨셉을 블랙으로 통일시켜 깔끔하면서도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한 배우들의 시연이 연이어 진행되었다. 처음으로 등장한 주인공 국강과 가희의 애절한 사랑을 노래한 ‘가슴 속 사랑’과 뒤를 이은 또 다른 주역인 태랑과 묘충의 드러내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한 ‘그대와 함께’를 통해서 각기 다른 배우들의 음색 속에서도 한결같은 [안악지애사]만의 ‘사랑’ 테마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고구려 수호신인 비천녀의 ‘넋이라도 영원하리’라는 곡을 통해서 깊이 사뭇 친 한과 애절한 슬픔의 면모를 잠시나마 바라볼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듯한 느낌이 체 가시기도 전에, 뮤지컬 전체 배우들의 합창 ‘나 이제 찾으리라’가 이어지면서 장엄함, 웅장함으로 대표되는 고구려의 기상을 생생하게 온 몸으로 전해받은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전율을 느꼈다. 4곡 모두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알려진 정민선교수의 탁월한 감각과 감성적 깊이를 여실히 반영한 고전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매력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 새로운 음악이었다.

모든 시연을 마친 후, 제작자, 음악 감독, 연출자, 주연 배우들의 자리가 마련되었고 곧바로 질의응답이 시작되었다. 제작발표회가 초지일관 전체적으로 차분한 분위기에서 진행되어 활발하고 격렬한 질의응답보다는 편안한 일상적인 대화를 유도하는 분위기로 이어진 것이 특징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최근 이슈화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뮤지컬간의 시기적인 상업적 연관성에 대한 세간의 관심에 대해서 연출자, 제작자, 배우들 모두 입을 모아 한결같이 역사적 고증보다는 픽션으로써의 우리 뮤지컬 [안악지애사]를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기 바란다는 강경한 의지를 표출함으로써 상업성이 아닌 순수 우리 창작 뮤지컬에 대한 예술적인 열망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다.

한 여름 열정적인 태양이 지고, 투명하고 맑은 가늘 하늘이 찾아올 즈음 고구려인의 붉은 기상을 장렬히 무대에 수놓을 우리 창작 뮤지컬 [안악지애사]는 관객들을 찾아올 것이다. 오늘 제작 발표회를 통해서 선보인 [안악지애사]는 9월10일- 10월 2일 간 펼쳐질 전체 공연의 1% 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오늘 이 순간 1%의 가능성을 살짝 엿보면서 우리역사, 고구려사의 한 부분을 생생한 소리와 몸짓을 통해서 새롭게 표현 낼 [안악지애사]의 나머지 99%에 대한 새로운 기대를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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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티키프렌즈1기 이현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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