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어둡고 음습한 내면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으로 주목을 받아온 대표적인 중견 연출가 한태숙이 이번에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를 무대에 재창조했다. 그간 [레이디 맥베스] [꼽추, 리차드 3세] 등으로 셰익스피어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카리스마를 보여준 그는 이번에도 독특한 무대와 음악, 깊게 들어가는 인간 내면을 카리스마 있게 묘사하고 있어 주목을 끈다.

차가울 만치 간결한 무대 장치와 역시 간결한 음악이 먼저 눈에 띤다. 하지만 무대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심리와 욕망은 소름끼치게 넘쳐 흐른다. 인간 마음은 약하다 못해, 누군가 지나가는 듯 속삭이는 말에도 흔들리고 무너져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작품에서는 극명하게 보여준다. 오셀로를 무너뜨리고, 그의 아내를 살해하게 만드는 순수한 악(惡) 이아고는 극 처음 이렇게 독백하면서 시작한다. “아무것도 묻지 마라, 난 이제 한 마디도 하지 않겠다”



자신 만만한 흑인 용병 장군 오셀로. 그와 베니스 귀족 출신 데스데모나는 서로 사랑해 데스데모나의 아버지를 속이고 몰래 결혼한다. 하지만 그의 부하, 이아고는 자신이 바라던 부관 지위가 캐시오에게 넘어가고 오셀로와 캐시오가 자신의 아내 에밀리아를 능욕했다고 생각, 이간질을 계획한다.
이아고가 오셀로를 질투에 미치게 하는 데에는 그닥 많은 장치가 필요치 않아 보인다. 오셀로에게 캐시오와 데스데모나가 보통 관계가 아닌 것 같다는 말을 흘리고, 오셀로가 데스데모나에게 선물로 준 손수건을 구해 물증이라며 보여준다.

이것만으로 오셀로는 질투에 미치기 시작한다. 이성적이고 올곧았던 그였지만 순결하다고 믿은 아내가 자신을 속였다고 확신을 하고 데스데모나를 몰아 부친다. 이아고의 꼭두각시가 되어 그가 의도하는 바 대로 선량한 데스데모나를 교살하고 만다. 순수한 악 이아고를 견제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보인다. 검정개로 표현되는 이아고의 내면은 그로테스크하고 음울하다.



무대는 극 중 배경인 싸이프러스 섬이 표현되지만,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 같은 건 없다. 등대와 선착장이 모던하고 차갑게 표현됐고, 무대위의 금속성 장치는 불안한 인물들의 심리를 나타내듯 비스듬히 기울어져 관객의 눈길을 집중시킨다. 배우 이기돈이 분한 검정개는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아고와 오셀로]에서 가장 선량하고 따뜻한 인물인 데스데모나는 어이없게도 가장 사랑하는 남편에게 비참하게 살해당하고 만다. 악이 선을 뭉개버리 결과가 극명하게 표현되는 통에 극이 끝나도 한동안 우울함이 가시지 않을 작품이다.

작품은 선량한 사람들을 파멸시키는 이아고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지 않는다. 그저 그는 개인적인 분노 하나로 이간질 시키고 사랑하는 사람을 죽게 만들 뿐이다. 그는 “아무 것도 묻지 말라”라고 고개를 돌려버린다.

한태숙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 <오셀로>는 인간의 속내를 벌거 벗기듯 내보이며, 악이 선을 파멸해 가는 과정, 오셀로가 질투에 미쳐 아내를 의심하고 고통 받는 과정을 군더더기 없이 표현했다. 셰익스피어 원작의 맛을 가능하면 보존하면서, 음악과 무대장치로 현대감각을 살린 것도 특징. 쌀쌀한 가을날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하나를 음미해 보는 것도 제격일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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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송지혜(인터파크 엔터테인먼트부문 운영마케팅팀 song@innterpar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