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이무영 공동 시나리오
첫 연극인 배두나, 일상에 머문 연기

벌겋게 녹슨 셔터들. 연극 ‘선데이 서울’(연출 박근형)의 무대를 그득 채운 이놈들은 서민들의 입이고 집이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싸움판을 벌이고 기도를 하고 사랑을 나눈다. 셔터들은 여닫힐 때마다 소음을 토해낸다. 이게 사람처럼 살고 싶어하는 이들의 울음으로 들린다면 이 연극은 성공이다.

12일 서울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 15일 개막을 앞두고 최종 리허설이 한창이다. 연극에 처음 출연하는 배두나의 모습도 보인다. ‘선데이 서울’은 영화감독 박찬욱·이무영이 함께 쓴 시나리오를 무대로 옮긴 작품. 엉뚱하거나 믿기 힘들지만 슬픈 이야기가 많이 실렸던 동명 잡지에서 제목을 따온 이 연극은 냄비 세일즈를 하다 빈털터리가 되는 병호(김영민), 중병에 걸린 아내를 살리려고 보험사기를 계획하는 종학(신덕호), 옌볜 출신 창녀로 종학을 위해 범죄에 가담하는 정자(배두나)의 비극을 따라간다.

극은 처음부터 속도를 낸다. 조명은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병호와 ‘휴거’를 믿으며 종말을 준비하는 아내 사이를 숨차게 오가며 부활(?)을 역설한다. 짤막하게 조각난 장면들로 비극적이기보다는 유머러스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종학이 자살 계획을 폭로하며 급회전을 한다. “(사랑으로 생기는) 40도 이상 고열에서는 모든 세균이 죽어요”라고 말하는 배두나는 사랑의 화신이다. 하지만 그의 연기는 발성이 약하고 몸을 쓰는 데 서툴어 연극적이라기보단 일상에 머문다.

박근형의 손을 거친 드라마는 삶의 속살을 보여준다. 자극적인 장면도 그의 연출 안에서는 은밀한 고백처럼 다가온다. 구멍 뚫린 인생들을 위한 진혼곡처럼 극의 매력은 잘 살아났다. 다양하게 쓴 공간 연출력도 돋보인다. 하지만 줄이고 줄여도 20번이나 되는 암전을 어떻게 극복하며 이야기의 집중력을 이어갈지가 이 공연의 과제다. 또 순정을 강조하려면 더 거칠어도 좋을 종학의 힘이 약해 병호와의 대비가 잘 이뤄지지 않는 점이 아쉽다.

영화를 등지고 잠시 연극으로 온 배두나는 연기력을 팽창시키는 데 성공했을까. 이에 대한 답은 공연이 시작된 후에 해야 한다. 다만 배두나의 이 말로 짐작해볼 수는 있다.

“정신 없어요. 숨어서 세트에서만 촬영하다 무대에서 다 노출되니까. 힘들고 걱정되지만 그래도 재미가 있어요. 영화에서 한계를 느꼈다면 연극은 자극을 줘요. 배우라는 직업을 새로 발견하는 것 같아요.”

조선일보/박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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