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광석 노래를 활용한 뮤지컬 ‘그날들’(사진=이다엔터테인먼트).

[이데일리 양승준 기자] 콘푸오코(Con fuoco). 불같이 열정적으로란 뜻의 악상기호다. ‘2013 공연계’는 뜨거웠다. 블록버스터급 대형작들이 쏟아져 공연계를 달궜다. 국내 최대 공연티켓 예매사이트 인터파크에 따르면 올해 뮤지컬·연극·클래식·무용 공연 수는 지난해에 비해 100편 이상 늘었다. 그만큼 경쟁도 치열했다. 이로 인한 ‘불똥’도 적잖게 튀었다. 뮤지컬시장은 공급 과잉으로 수익성이 급격히 떨어졌다. 특정 공연·소재에 집중된 ‘편식현상’도 나타났다. 올해 공연계를 네 가지 키워드로 짚어봤다.

△뮤지컬에 분 김광석 열풍

뮤지컬계에서는 김광석(1964~1996) 바람이 거셌다. 3월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시작해 4월 ‘그날들’을 거쳐 12월 ‘디셈버: 끝나지 않은 노래’(이하 ‘디셈버’)까지. 김광석 노래를 활용한 뮤지컬이 올해 세 작품이나 무대에 올랐다. 추억의 힘이다. 영화 ‘건축학개론’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등 대중문화 전반에 분 복고 열풍이 무대에까지 이어졌다. 30~40대가 ‘공연계 큰 손’으로 떠오른 것도 주효했다. 1990년대 ‘X세대’ 불렸던 이들을 사로잡기 위해 제작사들은 당시 아이콘인 김광석을 무대로 호출했다.

내년이 김광석 탄생 50주년이라는 시기적인 호재도 있었다. 하지만 콘텐츠의 힘을 빼놓을 수 없다. 뮤지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음악이다. ‘서른 즈음에’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먼지가 되어’ 등 주옥같은 히트곡이 여럿인 김광석은 주크박스 소재로 활용하기에 더없이 좋은 대상이다. 시대적인 요구도 있었다. ‘피로사회’를 사는 현대인들은 힐링을 위해 가객을 찾았다. 삶을 관조하는 여유와 용기를 김광석의 노랫말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콘서트형으로 제작된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서울과 대구 공연 160회 동안 22만여 관객을 불러 모았다. ‘그날들’은 초연에서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장기 공연에 청신호를 켰다. 대극장에서 공연된 창작뮤지컬로서는 보기 드문 흥행기록을 세운 셈이다. 그렇다고 김광석이 흥행 보증 수표는 아니다. 1990년대 대학가를 배경으로 한 사랑 얘기를 그린 ‘디셈버’는 이야기 구조가 엉성해 아쉽다는 지적이 나와 흥행 성적을 낙관하기만은 어려운 상황이다.

극립극장이 제작한 연극 ‘단테의 신곡’(사진 위)와 국립무용단이 새롭게 선보인 무용극 ‘단’(국립극장 제공).

△ 국립의 봄

안주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국립단체와 극장들의 약진이 돋보였다. 파격의 시작은 국립무용단. 지난 4월 선보인 작품 ‘단’으로 변화의 중심에 섰다. 여성무용수가 상반신을 탈의한 채 춤을 추는 형식을 시도해서다. 보수성이 강한 한국무용의 틀을 깨는 도전적인 춤 언어였다. 국립무용단이 안무가 안성수, 디자이너 정구호와 손잡고 만들어낸 창조의 결과다. 이달 초 정구호가 한번 더 나선 ‘묵향’도 전통춤의 현대화 작업이 돋보였다는 평을 받았다.

국립극장은 고전으로 연극의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냈다. 11월 공연된 ‘단테의 신곡’의 평균 객석점유율은 117%. 1000석이 넘는 대극장 해오름극장의 7회 공연의 모든 자리가 동나는 ‘대박’이 터졌다. 김석훈 주연의 ‘햄릿’ 이후 12년 만의 매진 기록이다. 인문학 열풍과 한태숙 연출, 정동환·박정자·지현준 등 출연 배우들에 대한 관객들의 신뢰가 흥행을 이끌었다.

국립오페라단은 클래식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지난 10월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의 오페라 ‘파르지팔’을 국내 처음으로 무대에 올렸다. 세계적인 베이스 연광철이 ‘바그너 가수’로 국내 처음 나섰다는 점에서도 한국 오페라사에 기록될 공연으로 꼽혔다. 국립발레단도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을 예술감독으로 맞아 내년 ‘한국발레의 봄’을 꿈꾸고 있다. 다만 국립극단은 지난 9월 선보인 연극 ‘개구리’가 박정희 전 대통령은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긍정적으로 그렸다는 정치적 편향성과 작품성 논란에 휩싸여 홍역을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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