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엠나비’의 원작을 처음 보셨을 때 느낌은 어떠셨어요?

저는 대본을 받으면 바로 읽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대본을 자주 보지 않고 한 번 볼 때 ‘완독’합니다. 저는 첫 번째 완독에서 작품을 대부분 분석해 내는데 그것이 제 식으로 말하는 ‘완독’인거지요. 처음 연극 ‘엠나비’ 대본을 완독할 때 걸렸던 시간이 5~6시간 정도입니다.

연극 ‘엠나비’는 전날 밤 11시에 읽기 시작해서 새벽 다섯 시 쯤 끝냈습니다. 전율했어요. 좀 흥분했었습니다. 다음 날 연극열전 대표에게 ‘나에게 이 작품을 맡겨줘서 고맙다. 보통 작품이 아니다’고 했습니다. 이 작품이 1980년대 초연된 작품입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보면 너무 이분법적이라 낡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고요.

- 그런 부분을 해결하실 때 어려웠을 것 같아요.

어려웠죠. 이 작품을 번역가가 상당히 현대적인 감각으로 풀어냈어요. 초벌 번역이 80페이지 정도였는데 정리를 하면서 43페이지 분량으로 줄였습니다.

이건 제 분석인지 작품이 원래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에 ‘아, 이 대본을 쓴 데이비드 헨리 황이 아시아계, 중국계 미국인이 맞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 있어요. 마지막 장면에 이르면 르네가 ‘나에게 왜 이러는 거야’라고 말하고 송이 ‘날 꿰뚫어 보게 도와주려는 거예요’하는 대사가 있습니다.

이 대사는 단순하게 옛날의 관계로 돌아가서 서로 사랑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날 꿰뚫어 보면 껍데기는 남자지만 그 본질 속의 더 높은 차원의 이상이 있다’는 것이죠. 그러한 세계로 같이 나아가자고 하는 이야기를 송이 이 대사로 하고 있는 거예요. 그것을 르네가 거부합니다. 르네는 이분법적인 환상을 갖고 있습니다. 송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면서도 자신의 환상을 지키려고 목숨을 끊는 거지요. 그것을 다시 한 번 뒤집어 놓으면 마지막 장면이 됩니다. 관계가 역전되는 거죠.

- 저는 마지막 장면이 굉장히 통쾌했어요.

연극 ‘엠나비’의 타이틀에 ‘나를 속인 건 나의 욕망’이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이것은 한 블로거가 쓴 문구인데요. 동의를 얻어 저희 타이틀로 사용했습니다. 이 문구를 딱 보고 ‘어떻게 이 작품을 이렇게 절묘하게 말할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어요. 작품의 주제를 그대로 말하고 있어요. 인간이라는 존재는 환상에 묶이면 자신을 속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그것을 연극 ‘엠나비’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거예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작품의 개념이 이분법적이에요. 다루기 어려운 소재도 많고요.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어려웠습니다. 저는 동성애를 인정합니다. 하지만 객관적 차원에서 인정한다는 것이지 주관적 관점에서는 선호하지 않습니다.(웃음) 솔직히 불편했습니다. 작품에서는 의미를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것이 맞으니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을 반복하다 보니 어색하지 않은 단계까지 온 거죠.(웃음) 한국 관객은 아직 보수적인 면이 있어서 그런지 이성 간의 키스 장면이 나와도 객석이 싸 해집니다. '왜 이렇게 필요 이상으로 조용하지' 하면서 보고 있는 저도 민망하고요.(웃음)

- 한국 관객이 보수적이라고 하셨는데, 관객 반응을 보면 어떠세요?

원작에 르네와 송이 아이의 이름을 지으며 말장난하는 장면이 있어요. 원작을 읽지 않은 분들은 원래 있는 내용인지 모르고 그것을 ‘개그코드’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초반 공연을 본 관객이 며칠 뒤 공연을 보고 공연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SNS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공연에서 빠진 것은 단 두 마디입니다. ‘이건 당신네들의 알마니’와 ‘치, 나빠요’입니다. ‘알마니’는 브랜드가 의미하는 제국주의의 산물로서의 속성을 말합니다. 원작에 있는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인데 웃는 관객이 많더라고요. 개인적으로 그 점은 굉장히 속상했습니다. ‘치, 나빠요’의 의도도 웃음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네 번째 공연까지 지켜보고 새벽 네 시에 문자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다 쓰니까 새벽 6시였습니다. 문자의 내용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관객이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오해가 생기지 않게 작품을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MMS가 됐는데(그는 실제로 쓴 문자를 보여줬다) 그 문자를 받고 배우들이 다 깼다고 해요.(웃음) 배우들이 문자를 15분 동안 읽었다고 하더라고요. 그 두 가지를 정리한 이후로 완전히 다른 공연이 된 거지요.

- 배우들이 고생이 많으셨네요.(웃음)

연극 ‘엠나비’는 100% 대중적이지 않은 작품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공연의 격이 확 떨어질 수 있고요. 연극도 사람이 하다 보니 배우들이 자기도 모르게 매너리즘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 연출이 체크해 주는 겁니다. 자극을 계속 줘야 해요. 그래서 연극이 어렵습니다.

- 르네 역의 김영민 배우는 원캐스팅이다 보니 더욱 그럴 것 같아요.

(김)영민이가 얼마 전 공연에서 자극을 한 번 줬는데, 이후 공연을 봤더니 정말 잘하더라고요.(웃음)

- 르네 역 캐스팅을 하시면서 바로 김영민 배우가 생각나셨어요?

영민이는 제가 2004년도, 2005년도에 연극 ‘에쿠우스’를 같이 했습니다. 영민이는 연극계에서 주로 멋있는 주연을 맡아 왔습니다. 그런데 연극 ‘에쿠우스’를 하면서 일상적으로 하는 행동을 보니까 이 친구가 굉장히 ‘찌질’한 거예요.(일동 웃음) 제가 가만히 보고 있다가 영민이의 저런 면을 언젠가 한번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2010년 연극 ‘내 심장을 쏴라’를 하게 됐습니다. 소설을 읽으면서 ‘어, 영민이네’ 그랬어요.(웃음)

연극 ‘엠나비’ 희곡을 읽으면서도 제 머릿속에는 이미 르네 역에 영민이 밖에 없었어요. 주변에서는 송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왜 르네를 맡기느냐고 걱정이 많았습니다. 저는 ‘영민이의 르네는 내가 보증한다. 영민이 아니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생김새가 찌질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김영민이라는 배우에게서 순간적으로 나오는 ‘찌질함’이 있는 거지요. 르네의 삶이 얼마나 찌질합니까? 저는 고등학교 시절 섹스하고 난 다음에 ‘신이시여, 겨우 이겁니까!’ 하는 르네를 보며 그랬어요. ‘야, 쟤 진짜 찌질하다’고요. (웃음)

- 두 명의 송(김다현, 정동화)은 어떤가요?

둘 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김)다현이는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의 차이가 큽니다. 그게 큰 장점이죠. (정)동화는 제가 생각하는 작품의 본질인 ‘중성성’과 정말 잘 맞습니다. 어떤 배우가 좋다 나쁘다 할 수 없죠. 다현이는 뮤지컬 ‘헤드윅’을 했기 때문에 여성적인 역할에 대한 경험이 있습니다. 동화는 처음이기 때문에 자칫하면 이상해 질 수 있습니다. 동화에게는 ‘절대 여자처럼 굴지 마라’는 디렉션을 줬습니다. 남자가 아무리 여자처럼 굴어도 절대 여자일 수는 없는 거거든요. 연극은 약속입니다. 처음에 등장했을 때 송이 치파오를 입고 나오면 아무리 남자처럼 생겼어도 관객은 여자라고 인식합니다. 그다음에 동화에게는 ‘네가 보여줘야 하는 건 중성적인 매력’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걸 동화가 알아들었어요.

두 배우가 뮤지컬 배우이지 않습니까? 이 작업을 재미있어하더라고요. 두 사람에게는 저 같은 정극 연출가가 처음이었던 거예요. 저는 연극을 분석적으로 접근합니다. 동작 하나에도 다 논리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나를 만나니까 너무 재밌었던 거죠.

- 이번 작품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나요?

성공했다고 하기에는 그렇고요.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무대 위에 형상화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형상화된 것만 해도 내 할 몫은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로.(웃음) 그만큼 어려웠다는 이야기죠.

- 마지막으로 다음에 이 작품이 무대에 오른다면 더 시도해 보고 싶다는 부분이 있으시다면?

연극 ‘엠나비’의 출연배우가 7명입니다. 여건이 더 된다면 조금 더 많은 배우를 출연시켜서 역동적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예를 들면,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는 장면 같은 것이요. 그렇게 된다면 연극이 더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정지혜 기자 newstag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