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아한 목소리로 관객을 놀래켰다가도 갑자기 무서운 야망을 내뿜는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촐랑거리는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긴장의 끈을 놓게 만든다. 뮤지컬 배우 이정렬, 그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관록’과 ‘진심’이라는 두 단어가 스쳐간다. 노래에도 표정이 담긴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의 넘버를 듣고 있을 때 비로소 이해가 된다. 주연 자리에서 그의 모습을 본지 꽤 됐지만 여전히 그가 나온 작품을 보고 나면 그의 캐릭터가 인상적이다. 뮤지컬 ‘삼총사’의 주인공은 단연 삼총사와 달타냥.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리슐리외’와 ‘루이 왕’이 기억에 남는다. 그는 “무대에서 스스로를 내려놓는 자가 진짜 배우가 될 수 있다”고 후배들에게 가르친다. 그래서 일까. 배우 이정렬이 아닌 ‘리슐리외’가 오늘도 무대에서 빛난다. 초연에 이어 재공연되는 뮤지컬 ‘삼총사’에서도 열연을 펼치고 있는 그를 만나 ‘리슐리외’와 ‘루이 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2년 연속 같은 작품, 같은 배역에 출연하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뮤지컬 ‘삼총사’의 매력 때문이겠죠. 사실 작품은 어떻게 보면 허무맹랑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아요. 바른 생활 책에서나 볼 법한 ‘정의는 살아있다’, ‘옳은 것이 이긴다’ 등을 말하죠. 그것이 어떻게 보면 유치하지만 사실은 21세기에 외쳐지지 않고 있는 진실이잖아요. 이 시대에 정의가 승리한다고 말 할 수 있는 작품에 출연해서 뿌듯해요.

Q. 뮤지컬 ‘삼총사’는 라이선스 공연이지만 원작 그대로 오지 않았다. 그래서 배우와 스텝들이 거의 창작물에 가깝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뮤지컬 ‘아이다’, ‘오페라의 유령’, ‘미스 사이공’ 같은 경우 국내 무대에 올릴 때 오리지널의 퀄리티를 유지하는게 목표에요. 하지만 이 작품은 달랐어요. 현재 우리나라에 맞게 옷을 입히길 원했죠. 그래서 현 세대들이 더 좋아할 수 있는 작품으로 변한 것 같아요.

Q. ‘리슐리외’와 ‘루이 왕’을 맡은 배우로서 재창작된 것이 아쉬움이 많이 남겠다(원작 보다 삼총사의 비중이나 넘버가 늘면서 ‘리슐리외’와 ‘루이 왕’의 비중이 줄어들었다)
아쉽죠. 리슐리외 추기경에 대한 인물 분석과 배경에 대한 설명이 급격히 약화 됐어요. 포르토스의 넘버가 원래는 리슐리외의 성장 배경에 대한 설명이라고 알고 있는데 뺏겼죠(웃음). 이 공연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삼총사’와 ‘아이언마스크’ 두 작품이 교묘히 합쳐지면서 배우가 연결고리를 허술하게 연출하면 작품 자체가 엉망이 될 수 있어요. 그만큼 배우의 역할에 대한 이해도와 소화력이 중요해졌다고 할 수 있죠.

Q. 배우 이정렬이 표현하는 ‘리슐리외’와 ‘루이 왕’은 어떤 모습인가.
‘리슐리외’와 추기경을 따르는 세력들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루이 왕’의 모습이 개차반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근엄한 왕이 아닌 좀 더 허술하고 철부지 같은 모습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죠. 1막 첫 장면 ‘가면무도회’에서 왕은 좀 더 섹시한 것을 찾고, 좀 더 화려한 것을 찾는 왕이에요. 그것이 ‘리슐리외’의 야욕을 정당화 시키는 배경이 돼요. 그런데 장치 때문인지 관객들이 놓치는 건지 1막 첫 장면을 많이 기억 못하시는 것이 아쉬워요. 사실 ‘리슐리외’와 ‘루이 왕’을 온전히 표현해내기에는 출연하는 시간이 짧아요. 하지만 그래서 더욱 재밌고 보람된 것 같아요.

Q. 배우 이정렬의 ‘리슐리외’에서는 악인의 카리스마가 전작들보다 많이 느껴지지 않는다.  악인의 개연성을 높이려는 의도된 연출인가.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 악인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 사람이 나쁘기 때문에 나쁜게 아니라 리슐리외의 장면에서는 리슐리외가 그동안 꿈꿔왔던 혁명이 시작되는 것 뿐이죠. 그래서 리슐리외가 왕의 옷을 입을 때부터 악인의 포스를 내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왕이고 싶은 한 사내의 모습을 표현 했어요.

Q. 작품에서 잠깐이지만 노출도 한다.
변신 장면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 0.5초 정도? 정말 잠깐 하지만 그걸 위해서 무대 뒤에서 정말 열심히 노력해요. 그런데 (김)무열군이 복근을 1막에서 공개하는 바람에 신경을 좀 더쓰고 있어요(웃음). 나이 사십이 넘어 배에 왕(王)자 생기게 생겼어요.

Q. 뮤지컬 ‘삼총사’ 내에서 다른 배역을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은 없었나?
지난 초연 당시 개인적으로 아토스 역에 매력을 느꼈어요. 그런데 매력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했죠. 실제적으로 리슐리외와 루이 왕은 아토스 정도의 매력적인 캐릭터에요. 한 가지 캐릭터에서 여러 가지를 보여줄 수 있잖아요. 

Q. 이번 배역 뿐 아니라 전작 ‘미스 사이공’의 엔지니어 역할에서도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야 했다. 이런 다채로운 캐릭터가 가진 매력은 무엇인가.
사람들은 각자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요. 다들 여러 가지 모습을 갖고 있죠. 주어져 있는 선한 캐릭터, 영웅 캐릭터, 예쁘고 멋있는 캐릭터만 극에서 계속 표현하는 것도 물론 좋아요. 하지만 다양한 캐릭터가 섞여있는 모습을 순차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무대에 살아있는 생명력을 가져 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면에서 다채로운 캐릭터를 소화한다는 것은 굉장히 유의미한 일이죠. 연습과정에서 힘들고 나쁜 새끼라고 욕을 먹어도 배우로서는 영광스러워요.

Q. 뮤지컬 ‘삼총사’는 화려한 캐스팅에 대표작으로 꼽힌다. 유명하고 좋은 배우들이 정말 많이 나온다. 팀웍이나 서로간의 호흡은 괜찮나.
일단 좋은 배우들과 한 무대에 설 수 있는 것 자체가 기쁘고 행복해요. 팀웍은 정말 최고에요. ‘우리는 하나’를 정말 지긋지긋할 정도로 외쳐요. 뮤지컬 ‘삼총사’ 같은 경우는 안무, 연출 등을 배우와 스텝이 함께 만들어 가야하는 부분들이 많았어요. 긍정적으로 발전적인 방법을 함께 모색하고 서로를 많이 챙겨주게 됐죠.

Q. 조순창 배우와의 더블 캐스트다. 선배 배우로서 보는 조순창의 ‘리슐리외’는 어떤가. 
우선 선 후배를 떠나서 같은 배역을 하는 배우로서 코멘트나 평은 삼가하고 존중해줘야 한다고 늘 생각해요. ‘리슐리외’를 떠나서 배우 조순창은 아끼는 동생이죠. 그의 성장이 무척 반갑고 눈에 띄게 배우로서 자리잡아가고 있는 모습이 대견스러워요.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아직 그의 ‘리슐리외’는 기대만큼은 아니에요. 하지만 충분히 자기가 찾아내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죠.

Q. 주로 지금까지 대작들을 많이 했다. 소극장 뮤지컬을 하고 싶지는 않나.
소극장 뮤지컬로 데뷔한 셈이에요. 개인적으로는 3~4인 정도가 출연하는 창작뮤지컬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올 해 예정돼 있는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작품을 꼭 하고 싶어요. 작품을 봤는데 정말 기대가 돼더라구요. 뮤지컬해븐의 박대표님이 이 기사를 봤으면 좋겠네요(웃음). 또한 사실 배우로서 보다 연출로 작품에 참여 하고 싶은 생각도 요즘 들어요.

Q. 지난 해 인터뷰에서 ‘교수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한 것으로 기억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저 같이 가수 활동도 해보고 뮤지컬 배우의 경험을 한 경우가 드물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돌 스타나 인기 스타가 뮤지컬 배우에 도전한 것이 아니라 맨땅에 헤딩하면서 영역을 확보한 노하우가 있다고 생각해요. 누구도 그것에 대해 일러준 바가 없었고 헤매면서 스스로 발견했죠. 소리에 대한 느낌이나 연기로 표현하는 방법들이 몸에 때처럼 묻어있어요. 어렵고 힘든 시절에는 아픈 상처고 흉터였는데 이제는 근육이 된 듯해요. 새롭게 배우는 후배나 친구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해줄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요즘 한, 두 명 코치하고 있는데, 가르치는 것에서 오는 희열감도 있더라구요.

Q. 마지막으로 뮤지컬 ‘삼총사’의 관객들과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일단 삼총사를 많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해요. 뮤지컬은 음악이 어떻고, 의미가 어떻고 이전에 관객들을 재밌게 하는 ‘쇼’에요. 오셔서 작품을 즐기고 지친 마음이 풀어진다면 배우로서정말 감사해요. 뮤지컬을 충분히 즐기다 가셨으면 좋겠어요. 더불어 달타냥과 삼총사 뿐 아니라 저와 조순창 배우의 ‘리슐리외’에도 관심을 많이 가져 주시고 이야기 해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뉴스테이지 김문선 기자 newstage@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