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문화의 중심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에 위치한 로열 오페라 하우스(Royal Opera House)는 그 명성에 걸맞게(?) 높은 티켓 가격으로 악명이 높다. 이곳에서 공연되는 유명 오페라나 발레를 좋은 자리에서 보려면 대략 200파운드(약 40만원) 정도는 지불해야 한다. 일생에 단 한번 보는 오페라의 티켓 가격이라면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좋은 공연에 항상 목마른 시어터고어(theatregoer)에겐 이 숫자는 그리 만만한 숫자가 아니다. 웨스트 엔드의 대부분의 인기 공연들도 로열 오페라 하우스 만큼은 아니지만 티켓 가격이 비싼 편이다. 그렇다면 공연장을 자주 찾는 런던의 시어터고어들은 공연 티켓을 구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이 공연을 볼 수만, 아니 들을 수만 있다면

영국의 어느 유명한 공연 평론가가 ‘극장은 강한 습관’이라고 말했던가. 사실 그렇다. 공연에 큰 관심을 가진 시어터고어에게 시즌마다 어떤 참신한 공연들이 나오는지 확인해 보는 것은 습관에서 배어나오는 일이다. 더더군다나 적지 않은 티켓 가격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그래서 제한된 예산에서 좋은 공연들을 놓치지 않고 저렴하게 보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상상 이상이 된다. 사실 앞서 언급한 로열 오페라 하우스도 비싼 좌석들이 있는 반면 저렴하게 책정된 좌석들도 많이 있다. 물론 이런 좌석들이 가장 비싼 좌석보다야 좋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가격 대비 공연을 충분히 즐기기엔 커다란 문제는 없다.

작년 내셔널 시어터의 최대 흥행작 <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을 보려는 관객들의 노력은 눈물겹도록 아름다웠다. 이미 사전에 판매된 티켓들은 일찌감치 매진된 상태에서 관객들이 이 놓치기 싫은 공연을 볼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 바로 매일 아침에 당일 공연을 볼 수 있는 몇 장의 데이티켓과 서서 공연을 볼 수 있는 자리를 위한 스탠딩 티켓을 사는 방법 뿐이었다. 그렇다면 극장 박스 오피스에 몇 시쯤 도착하면 표를 구할 수 있었을까? 공연이 종반에 접어들면서 사람들은 놀랍게도 전날 밤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다! 내셔널의 흥행작들이라 해도 보통 새벽 6시면 줄을 서기 이른 시각인데, 전날 밤부터 티켓을 구하려는 관객들의 욕망은 그 어떤 집착보다 강한 것이었다.

이렇게 마지막 남은 몇 장의 티켓을 거머쥐려는 티켓 사냥꾼들의 기다림의 노하우는 몸으로 체득된다. 우선 런던의 날씨는 겨울은 물론이고 심지어 여름에도 춥기 때문에 따뜻한 옷차림과 함께 여분의 담요나 방한 대책은 필수 요소이다. 그리고 박스오피스가 여는 아침 10시까지 장시간을 줄을 서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의자나 깔고 앉을 거리를 준비하는 것도 현명하다. 몇몇 극장은 이렇게 밤새워 티켓을 구하려는 이들을 위해 새벽에 따뜻한 홍차를 나누어주며 추위 속에 사람들의 안부를 묻기도 한다. 이와 함께 장시간의 기다림과 싸울만한 읽을 거리와 들을 음악이 있다면 더욱 좋다. 때로는 내 앞뒤에 줄을 선 이들과 동질감을 느끼며 잡담을 나누는 것도 커다란 위로가 된다. ‘너 최근에 무슨 공연 재밌게 봤니?’로 질문을 시작하기만 하면 적어도 한시간은 심심치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티켓 구하기 전쟁이 언제나 승리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웬만큼 일찍 일어나서는 먹이를 구하지 못하는 새가 되기 일쑤다. 나보다 2,3초 먼저 도착해 내 앞 자리에 줄선 사람이 그 날의 마지막 티켓을 구하는 경우도 종종 일어난다. 그래서 정말로 보고 싶은 공연이라면 서서 보는 스탠딩 티켓도 감사한 경우가 생긴다. 이 공연을 볼 수만 있다면 서있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개인적으로도 좌석을 구하지 못해 몇 번 서서 본 경우가 있었는데 육체적 고통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만큼 훌륭했던 공연도 더러 있었다. 흔하지 않은 경우였지만 작년 웨스트 엔드 최고의 흥행작이었던 마크 라일런스 출연의 <예루살렘, Jerusalem>은 스탠딩 티켓도 모자라 ‘볼 수는 없지만 들을 수는 있는 자리’의 표도 팔았더랬다! 공연을 보러 갔는데 볼 수는 없고 들을 수만 있다니 다행인가 아니면 불행인가?

셰익스피어가 사용했던 16세기 런던의 글로브 극장을 재현한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Shakespeare’s Globe Theatre)도 매 공연마다 700개의 스탠딩 티켓을 파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극장은 구조적으로 무대와 객석 사이에 마당이 있어 약 700여명의 입석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데, 무대와 배우를 더 가깝게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5파운드의 저렴한 티켓 가격까지 고려한다면 이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셰익스피어 극들이 2시간 반을 훌쩍 넘어가 버리기 때문에, 2시간 반의 서서 보는 셰익스피어 연극은 즐거움과 함께 인내, 고통을 동시에 맛보는 특이한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심지어 그 유명한 로열 코트 극장도 작품에 따라 10펜스(약 200원)짜리 스탠딩 티켓도 판매하니 앉을 자리가 없다면 이런 저렴한 가격의 스탠딩은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 볼 수 없기 때문에

영국의 극장들이 대부분 오래되고 낡아 시설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이렇게 공연을 보려는 의지가 강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공연의 질이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지어진 지 100여년이 훌쩍 넘어버린 극장들은, 유서 깊고 역사적으로는 의미 있지만, 사실 시설이나 서비스에 대해 기대할 만한 부분은 많지 않다. 좌석은 물론이고 통로나 화장실도 좁고 불편하며 대부분이 어둡다. 또, 조금 싸다 싶은 좌석에라도 앉으면 무대가 온전히 보이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은 이런 극장들의 아쉬운 서비스나 높은 티켓 가격에 커다란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극장들이 내놓는 공연의 질이 월등하게 우수하기 때문이다. 지금이 아니면 다른 어느 곳에서도 이 좋은 공연을 다시 볼 수 없을거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게 되면, 공연을 보기위해 기울이는 시간과 노력은 아무리 들여도 아깝지 않게 된다. 그래서 웨스트 엔드 극장가에선 몇 시간이나 기다린 끝에 스탠딩 티켓을 겨우 사고도 기뻐 팔짝팔짝 뛰는 관객들을 목격할 수 있는 것이다.

일부 사진 출처: 각 극장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