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시어터고어(Theatregoer)들이 웨스트엔드의 여름 시즌을 기다리는 이유는 ‘저마다’ 가지각색이다. 아름답기로 소문난 리젠트 파크(Regent Park) 오픈 에어 시어터(Open Air Theatre)의 낭만적인 여름을 즐기려는 관객들의 발걸음도 웨스트엔드 여름 시즌을 기다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매년 16주의 여름 시즌 동안만 작품을 선보이는 오픈 에어 시어터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다양한 존재 가치를 증명하며 웨스트엔드의 얼굴이 된 야외극장이다.

비비안 리, 주디 덴치와 함께 했던 그 곳
1932년 극장의 문을 연 이래로 랄프 파인즈가 이 극장에서 데뷔를 했으며, 비비안 리, 주디 덴치, 마이클 갬본 등등 시대를 풍미했던 대배우들이 거쳐간 ‘역사적인’ 공간이 바로 이곳이다. 1200석이 넘는, 작지 않은 규모의 객석이 숲으로 둘러 쌓여 있고, 각종 식사와 바비큐, 와인과 음료를 즐길 수 있는 편의시설, 여기에 매일 밤 찾아온 손님들에게 흥미진진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는 극장의 작품 선택 안목과 제작 능력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한마디로 이 극장은 런던에서만 맛볼 수 있는 감동적이면서도 색다른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번 시즌의 오픈 에어 극장의 레퍼토리 또한 팬들의 기대에 부응하며 관객들의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개막작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 Lord of the Flies>을 시작으로, 존 게이(John Gay)의 고전 <거지 오페라>가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것.

<거지 오페라>의 배경
1720년대 런던은 이탈리안 오페라가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카스트라토(여성 소프라노 음역을 내는 거세 남자 가수)의 노래에 광적으로 열광했고, 작품의 스토리나 캐릭터의 개연성에 상관없이 그들의 노래 소리를 듣는 것이 최고의 유흥 거리로 생각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편중된 관객들의 취향에 반기를 들려는 시도도 꾸준히 이어졌다. 그 가운데 존 게이의 <거지 오페라>는 발라드 오페라라는 새로운 장르로 선보여지면서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관객들의 귀에 이미 익숙한 발라드 선율들을 차용한 곡들과 함께 런던 뒷골목의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하려 했던 작품의 시도는 관객들의 커다란 호응을 받았던 이유가 되었다.


스토리는 매우 익살스럽다. 런던 뒷골목의 악명 높은 소매치기 두목인 캡틴 맥키스와 사랑에 빠져 몰래 결혼한 폴리는 사실 맥키스를 잡으려는 관리 피첨의 딸이고, 또, 뉴게이트 감옥의 간수장 록킷의 딸인 루시도 사실은 바람둥이 맥키스와 결혼을 약속하고 그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이다. 피첨에게 잡힌 맥키스는 뉴게이트 감옥에 갇히게 되고 사랑에 눈먼 루시는 폴리의 존재를 뒤늦게 알게 되면서도 맥키스를 탈옥시킨다. 폴리와 맥키스의 관계를 시기한 루시는 폴리를 독살하려 하나 마지막 순간 맥키스가 다시 피첨과 록킷에 잡혀 교수형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좌절하게 된다. 루시와 폴리는 그들의 아버지에게 맥키스의 교수형을 하지 말 것을 탄원하고, 그 사이 소식을 접한 또 다른 네 명의 임신한 여인들이 나타나 자신들도 맥키스의 부인이라면서 상황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맥키스의 교수형 집행 직전 관객들의 해피엔딩 요구에 그는 사형을 면하고 결국엔 폴리와 행복해지는 결말을 맺는다.

인간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신랄한 풍자
이번 오픈 에어 시어터의 프로덕션은 18세기 작품이 초연되었던 당시의 런던 하층민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하는데 힘을 쏟았다. 연출가 루시 베일리(Lucy Bailey)가 묘사한 당시 런던에 만연했던 부정 부패와 사회 부조리의 모습은 지금과 많이 다르지 않다. 장면 장면에서 보여지는 인간 사회에 대한 풍자적 반영은 관객들의 커다란 웃음을 유발하고, 당시 서민들의 복잡다단한 생활상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더불어 디자이너 윌리엄 더들리(William Dudley)가 그려낸 당시 런던의 타이번(Tyburn) 교수형장과 뉴게이트 감옥, 뒷골목의 사창가 등등의 모습은 작품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캡틴 맥키스가 피첨의 덫에 걸려 뒷골목의 여자들에게 유혹당하다가 잡히는 장면이나, 루시와 폴리가 맥키스를 놓고 설전이 오고 가다 난투극이 벌어지는 장면, 록킷 부녀의 콤비 연기 장면 등은 관객들의 커다란 웃음을 유발한다. 또,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들의 요구에 의해 맥키스의 교수형이 철회되는 극적 장치 또한 관객들이 더욱 극을 즐길 수 있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있다.

<거지 오페라>는 긴박감 있는 스토리와 탄탄한 캐릭터의 구성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관객들이 보기엔 자칫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 발라드 오페라라는 명칭에 걸맞게, 장면 사이사이에 캐릭터들이 부르는 노래가 극의 스토리와는 다르게 달콤하면서도 느린 템포의 발라드 곡들이 대부분인 것은 분명 현대의 음악극 문법과는 다르다. 하지만 작품이 300년 전에 만들어진 만큼 우리는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기 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긴 생명력을 가지고 지금까지 공연될 수 있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할 것 같다.


이번 프로덕션에서는 이런 작품의 단점이 실력 있고 개성 있는 배우들의 열연으로 충분히 가리워지고 있다. 특히 작년 이 극장의 흥행작 <인투 더 우즈 (Into the Woods)>에 이어 두 번째로 이번 작품에 출연한 비벌리 러드(Beverly Rudd)의 루시 연기는 라이벌 폴리 역의 플로라 스펜서-롱허스트(Flora Spencer-Longhurst)와 함께 극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데 커다란 보탬이 되고 있다. 루시의 아버지 역으로 비벌리 러드와 콤비연기를 보여주는 록킷의 필 다니엘스(Phil Daniels)는 악한의 전형적인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었고, 피첨역의 재스퍼 브리튼(Jasper Britton)역시 당시의 부패한 관료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

완벽하게 들어맞는 작품과 극장의 분위기
올해 오픈 에어 시어터에서의 <거지 오페라>는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다. 마치 숲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한 당시 런던 하층민들이 엮어가는 이야기는, 극장 주위에 어둠이 드리워지면서 둘러 쌓인 나무들이 조명과 함께 더하는 아름다운 깊이로 인해 드라마에 더욱 탄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극장 레퍼토리의 마지막을 장식할 거쉰의 <크레이지 포 유, Crazy For You>또한 매우 기대된다.

사진출처 Alastair Mu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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