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을 전율케 하는 공연을 본 경험이 몇 번이나 될까. 기억을 더듬어 보면, 무한한 순수 에너지를 발산하던 브로드웨이 배우들의 리바이벌 뮤지컬 <헤어>가 가장 최근의 감동이었던 것 같다. 당시 작품은 ‘뮤지컬은 음악과 가사가 드라마 안에서 충실하게 조력해야만 한다’라는 손드하임의 도식에 대한 집착을 가지고 있던 본인에게 신선한 파격의 연속이자 진한 감동 그 자체였다. 이런 짜릿한 전율을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을 최근 다시 만나게 됐다. 닉 디어(Nick Dear)가 새롭게 각색한 대본을 바탕으로 대니 보일(Danny Boyle)이 연출한 내셔널 시어터의 프로덕션 <프랑켄슈타인, Frankenstein>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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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뜨거운 인기몰이

공연의 인기는 상상 그 이상이다. <트레인스포팅, Trainspotting>과 <슬럼독 밀리어네어, Slumdog Millionaire>로 유명한 대니 보일과 내셔널의 조합 뿐 아니라 베네딕트 컴버배치(Benedict Cumberbatch)와 조니 리 밀러(Jonny Lee Miller)가 프랑켄슈타인과 창조물/괴물을 번갈아 연기한다는 사실은 대중들의 기대를 한껏 올려 놓기에 충분했다. 공연이 시작하기도 전에 모든 티켓이 매진되면서 이러한 기대감은 실제 인기로 증명되었다. 더욱이 한나절 이상 줄을 서서 반환된 티켓을 기다리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대중들은 이 공연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고, 전문가들도 작품이 현재 런던에서 가장 뜨거운 공연임을 이구동성으로 동의하면서 공연의 인기에 크게 일조하고 있다.

1818년의 <프랑켄슈타인, 또는,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라는 제목으로 출판된 매리 셸리(Mary Shelley)의 원작 소설과 1931년 보리스 칼로프(Boris Karloff)의 흑백영화 이후 우리에게 비정상적인 괴물의 전형적인 이미지로 각인된 <프랑켄슈타인>은 여러 장르로 재생산 후 소비되어 온 고전 중의 고전이다. 이렇게 여러 번 재활용 된 이야기가 이번 내셔널 시어터 프로덕션에서 참신함과 더불어 강한 전율로 다가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연출을 맡았던 대니 보일의 힘 덕분이다.

작품을 재해석하고 이를 관객들과 소통하는 그의 방식을 통해 이전의 <프랑켄슈타인>에서 경험했던 것들과는 차별화 된 <프랑켄슈타인>이 완성됐다. 더불어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두 주인공 배우들의 열연과, 무대에서 보여주는 세련되면서도 효과적인 디자인의 삼박자가 어우러지면서 공연은 흥행성과 함께 질적인 면에서 뒤지지 않는 예술성을 확보한 작품으로 완성됐다.

불완전한 인간이 창조한 불완전한 인간

첫 장면은 창조물/괴물이 태어나 빠르게 인간의 모습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창조물은 마치 인류의 문명이 그러했듯 맨 몸뚱이와 무지의 상태에서 시작하여 마치 갓난아이처럼 세상에 나온 고통을 경험한 후, 걸음을 걷고, 뛰는 법을 익히고, 언어를 배우고, 사고하고, 감정을 경험하면서 인간의 모습을 점점 갖추어 간다. 이러한 인간적인 진화는 더 나아가서 관심과 애정을 갈구함과 동시에 타인에게 거부당하는 경험을 통해 거짓말, 증오, 복수와 같은 악을 인식하는데 이르기도 한다.

이번 프로덕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작품이 가진 시선의 방향이다. 대니 보일은 인간의 눈으로 본 창조물/괴물이 아니라 창조물이 바라본 인간 세계를 통해, 이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창조물이 사실은 인간과 다르지 않음을 시사하고 있다. 불완전한 창조물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줄 친구와 연인을 찾고 싶어하는 모습은,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 즉 이상주의를 끊임없이 꿈꿨던 프랑켄슈타인의 모습과 닮아있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프랑켄슈타인과 창조물의 역할을 조니 리 밀러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돌아가며 연기를 맡게 한 대니 보일의 아이디어는 충분한 개연성을 가진다.

작년 BBC의 모던 셜록 홈즈 드라마 <셜록, Sherlock>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컴버배치와 <트레인스포팅>에서 식보이(Sick Boy)로 존재감을 알렸던 밀러를 주인공으로 선택한건 탁월한 결정이었다. 두 주인공이 처음 조우하는 장면은 작품의 가장 날선 장면 중의 하나이다. 서로 다르면서 공통점들을 발견해 나가는 긴장감 가득한 과정에서 보여주는 두 주인공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은 정말 볼 만 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원작과는 다르게 두 주인공이 함께 삶의 고통스러운 여정을 계속하는 모습으로 막을 내리는 결말도 이러한 시선의 연장선에 있다. 프로메테우스가 인류에게 불을 전해 주었다는 이유로 매일 자신의 간을 독수리에게 쪼이는 고통을 영원히 겪게 되는 운명을 맞이한 것처럼, 둘이자 하나일 수 밖에 없는 두 주인공의 운명은 원죄를 짊어진 인간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세련되고 효과적이었던 감각적 장치들

이번 공연에서 칭찬받아야 할 부분은 바로 세련되면서도 효과적인 디자인(조명, 세트, 의상, 사운드)의 조합이다. 연출의 상상력이 장면장면 조심스럽지만 대담하게 선보여질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시, 청각적 장치들이 작품의 전개에 큰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반씩 위 아래로 움직일 수 있는 올리비에극장의 회전 무대가 표현하는 깊이와 더불어, 때론 철로 위에 증기 기관차가 등장하고, 때론 호수 위에 다리가 놓여지기도 하며, 때론 과학자의 외딴 실험실로 변하는 마크 틸데슬리(Mark Tildesley)의 무대 디자인은 관객들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준다. 더불어 부르노 포엣(Bruno Poet)의 조명 디자인 중 공연장 천정의 수천개의 전구를 통해, 창조물의 감정 변화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아이디어는 매우 기발하다. 음악을 맡았던 언더월드(UnderWorld)의 일렉트로닉한 음악과 사운드 또한 장면의 의도를 매끄럽게 뒷받침할 뿐 아니라 기저에 깔려있는 감정을 증폭시키는 매개체로서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다음 번 전율은?

공연은 막바지를 치닫고 있다. ‘런던에 내셔널 시어터가 존재하는 이유는 <프랑켄슈타인>같은 작품이 존재하기 때문’ 이라고 말한 어느 미디어의 리뷰처럼, 이번 작품이 가지는 가치는 크다. 이번 작품이 전달해준 전율 만큼의 힘을 조만간 런던의 다른 공연장에서도 만나게 될 것이다. 이런 기대를 쉽게 가질 수 있는 건 꾸준히 발전해 온 웨스트엔드의 역사 속에서 이미 여러 차례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Catherine Ash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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