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엔드, 런던 소극장을 눈 여겨 보는 이유

지난 1월 런던 극장 연합 SOLT(The Society Of London Theatre)에서는 2010년 웨스트엔드 실적을 발표하였다. 영국 중앙 및 지방 정부의 공연 예술 지원금 축소가 대대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악조건 속에서도 웨스트엔드는 지금의 대내외적 위기를 잘 헤쳐나간 것처럼 보인다.

'관객동원력’ 실적이 가장 좋았던 2009년과 비교했을 때 웨스트엔드는 약 1천 4백 15만 명으로 0.79%의 소폭 하락을 경험했고, 박스 오피스 수입은 약 5억 1천 2백만 파운드(약 9500억 원)로 재작년에 비해 1.4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치로만 보았을 때 작년의 웨스트엔드는 아이슬랜드의 화산 폭발로 인한 항공 대란, 남아공 월드컵, 크리스마스 시즌에 내렸던 폭설로 인한 교통 마비 등의 악재를 잘 이겨냈다.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슈렉>, 기대해 2011년!

SOLT의 회장인 나카 번즈(Nica Burns)는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작년의 런던 극장가는 황금기가 계속되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2%의 관객수 상승과 10%의 티켓 수입 증가를 보였던 연극에 비해 다소 관객수 3% 감소라는 아쉬운 결과를 낳았던 뮤지컬은 2011년에 시작되는 두 대형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 The Wizard of Oz>와 <슈렉, Shrek the Musical>의 상승세로 뮤지컬 강세가 기대된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하였다.

웨스트엔드, 숙제는 풀리지 않았다.

2011년 성과에 대한 웨스트엔드의 불만은 없을까? 웨스트엔드를 안다는 전문가들 사이에선 현재의 상황 속에 잠재해 있는 여러 불안 요소들에 주목한다. 위의 수치를 들여다보면 알겠지만, 관객수는 줄었는데 박스 오피스 수입이 늘었다는 것은 결국 극장들이 티켓 가격을 올려 팔았다는 사실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실제로 런던 극장의 티켓 가격은 점점 올라가고 있다. 더 비싼 가격을 받고 파는 ‘프리미엄 좌석’이라는 용어가 웨스트엔드 극장가에 유행처럼 퍼지면서 티켓 가격도 훌쩍 비싸진 느낌이고, 뮤지컬에 비해 가격이 낮았던 연극의 티켓 가격도 급속하게 오르고 있는 추세다. 보통 최고 60파운드 정도였던 뮤지컬 공연들이 최근에는 <러브 네버 다이즈>는 67.50파운드에 티켓을 팔고 있고, <오즈의 마법사>나 <슈렉>도 65파운드에 티켓가격을 책정했다. 키이라 나이틀리(Keira Knightley)의 출연으로 화제작으로 떠오른 연극 <더 칠드런스 아워, The Children’s Hour>도 뮤지컬 티켓 가격에 맞먹는 60파운드를 받을 예정이다. 거기에 티켓마다 붙는 예약 수수료 또한 무시 못하니 웨스트엔드 티켓 가격 상승은 관객들의 피부에 절실히 느껴질 수 밖에 없다.

물가 인상을 고려할 때 이러한 티켓 가격 인상에 어느 정도 수긍할 수 밖에 없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리 건강하지 못한 영국 경제상황, 앞서 언급한 공연 예술 지원금 삭감이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재 상태에서 작품 질의 향상은 요원하고 티켓 가격만 올라간다면 이야기는 심각해진다.

웨스트엔드의 또 다른 문제는 런던 뮤지컬의 정체 현상과 리바이벌 위주의 연극이 웨스트 엔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 약 20개의 뮤지컬 프로덕션이 층층이 쌓여 5년 이상 공연을 연장한 작품들도 수두룩하다. 문제는 이러한 정체현상이 당장은 프로듀서들에게 돈을 벌어다 줄지 몰라도 장기적인 미래를 바라보았을 때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연극쪽 또한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공연의 특성상 대형 뮤지컬만큼 장기간 롱런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연극들이 이미 검증된 리바이벌에 치우치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많이 아쉬운 대목이다. 웨스트엔드가 점점 더 자본의 메커니즘에 따라 움직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아쉽고, 또한 이러한 문제점을 정책적으로 보완하지 못하는 영국 정부의 문화정책이 아쉽다.

눈에 띄네, 영국의 소극장들

앞서 언급한 웨스트엔드가 가지고 있는 불안요소에 비해 오프-웨스트엔드(Off-West End) 혹은 오프-오프-웨스트엔드(Off-Off-West End) 격인 런던의 소극장들은 다양한 레퍼토리와 관객들과의 끊임없는 소통을 무기로 공연장의 건강함을 유지, 발전시키고 있다. 판에 박힌 듯이 똑 같은 공연을 몇 년씩 반복하는 웨스트엔드의 대형 공연장에 질린 관객들에게 오프-웨스트엔드의 아기자기한 소극장 공연들은 새로운 영감과 감동을 전달해줄 수 있는 또 하나의 촉매제일 수 있다.

런던에는 이러한 촉매제의 역할을 담당하는 유명 소극장들이 많다. 대형 극장의 명성 못지않게 그들은 런던 공연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고, 런던의 시어터고어(Theatregoer)들은 이 극장들의 행보에 귀를 기울인다. 이미 널리 알려진 ‘돈마 웨어하우스’나 ‘메니에 쵸콜릿 팩토리’를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이, 런던에는 사랑스러운 소극장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은 비교적 짧은 공연기간과 싼 티켓 가격, 다양한 레퍼토리, 창의적인 공간활용,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미디어를 이용한 관객들과의 직접적 소통 등을 통해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노력을 기울인다.


런던의 대표적인 펍 시어터(Pub Theatre : 음식과 술을 파는 펍에 소극장이 같이 운영되는 형태를 말한다)인 ‘킹스 헤드 극장(King’s Head Theatre)’은 올해부터 ‘런던의 작은 오페라 극장’이라는 브랜드를 내걸고 연극, 뮤지컬 뿐 아니라 소극장 오페라를 추가하였다. 올해의 오페라 프로덕션 라인업이 발표된 지금, 틈새 시장으로서의 소극장 오페라를 올리려는 킹스 헤드의 시도는 공연계에서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덕(Southwark)에 위치한 ‘유니온 극장(Union Theatre)’ 또한 소극장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디어 번뜩이는 연극과 뮤지컬 프로덕션을 번갈아 올리면서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극장의 예술감독 사샤 리건(Sasha Regan)의 지휘아래, 관객들의 기호에 맞는 시기 적절한 작품들을 발 빠르게 선정하는 노력과, 작은 공간의 제약성을 극복한 창의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연달아 호평을 받으며 이제 극장은 예술성을 인정 받은 대표적인 소극장이 되었다.


현재 공연중인 소극장 뮤지컬 <오디너리 데이즈, Ordinary Days> 또한 이러한 소극장 프로덕션의 장점을 잘 보여준 예이다. 뉴욕에서 시작된 이 공연은 지난 해 런던의 유명 소극장 중 하나인 핀보로(Finborough Theatre)에서 초연된 후, 관객들의 호평으로 웨스트엔드 중심에 위치한 소극장 ‘트라팔가 스튜디오 2’로 이전되어 공연 중이다.

이 작품은 완성도를 떠나 소극장 공연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재미를 관객들에게 맘껏 전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실력 있는 젊은 뮤지컬 배우 넷이 만들어내는 콤비 연기를 관객들이 코앞에서 즐길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닌가 싶다. 최근 <에비뉴 큐>에서 주역을 맡았던 다니엘 보이즈(Daniel Boys)와 줄리 애서튼(Julie Atherton), <위키드>에서 앨파바로 활약했던 알렉시아 카딤(Alexia Khadime), <메리 포핀스>등 웨스트엔드 작품에 다수 참가했던 리 윌리엄-데이비스(Lee William-Davis)의 앙상블 연기를 저렴한 가격으로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장점은 관객들에게 꽤 매력적이다. 더불어 핀보로 극장 또한 30년간 신작 연극과 뮤지컬을 끊임없이 배출해 낸 결과로 올해 초 ‘스테이지 100 어워드’의 ‘올해의 프린지 극장’ 부문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기도 하였다.

이밖에도 저민 스트릿 극장이나, 햄스테드(Hampstead), 알메이다(Almeida), 리버사이드 스튜디오(Riversid Studios), 란도(Landor), 소호(Soho), 서덕 플레이 하우스(Southwark Playhouse), 시어터 503(Theatre 503) 등의 극장에는 언제나 다양하고 신선한 작품들이 넘쳐난다.

웨스트엔드 & 런던 소극장,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은?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이러한 활기 넘치는 소극장들과 웨스트엔드의 대형 극장들이 직접적으로 교류하고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들은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러한 단절이 아마도 작은 무대에서 시작한 신작들이 더 큰 무대와 관객들을 찾기 어려운 결과를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 가까운 미래에 서로를 존중하면서 협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웨스트엔드의 새로운 미래를, 기대해본다.

사진 출처: 각 공연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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