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노래하는 불편한 진실, 오페라 <개의 심장>
작성일2010.12.08 조회수7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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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러시아 작곡가 알렉산더 라스카토프(Alexander Raskatov)의 음악으로 만들어진 이 오페라는 영국의 잉글리쉬 내셔널 오페라(English National Opera, ENO)와 네덜란드 오페라(De Nederlandse Opera, DNO)의 공동 제작으로 지난 6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초연된 후 이번 겨울 영국 런던으로 건너와 콜리시엄 극장에서 초연됐다.
2010년, 오페라 <개의 심장>이 태어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불가코프의 원작 소설은 1925년에 완성됐지만, 체제 비판에 대한 검열이 심했던 당시 소련 공산 정권에 의해 소설은 바로 출판 금지 당해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잠들어야 했다. 이후, 작가가 죽은 지 반세기가 넘은 1987년이 되어서야 뒤늦게 출간 될 수 있었다.
그로테스크하면서도 풍자적인 스토리
극의 스토리는 러시아 혁명이후 소비에트 연방의 초기, 모스크바를 배경으로 한다. 거리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지친 개 한 마리가 부유하고 명성 있는 의대 교수 프레오브라젠스키에 의해 구조된다. 개는 교수의 저택에서 치료와 보살핌을 받으며 기운을 되찾는다. ‘샤릭’이란 이름을 얻게 된 개는 편안한 미래를 보장받고 아늑한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교수의 목적은 다른데 있었다. 인간의 회춘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던 교수는 개 ‘샤릭’에게 남성의 뇌하수체와 고환을 이식시키는 수술을 실험하게 되고, 샤릭은 수술 후 점차 회복되면서 교수의 의도와는 다르게 인간의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마침내 인간의 모습 뿐 아니라 이기적인 본성까지도 가지게 된 샤리코프(샤릭은 자신을 샤리코프로 명명하기에 이른다)는 이제 공산정권을 위해 일을 하면서 사회에 심각한 파장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교수는 샤리코프를 다시 수술대에 눕혀 인간성을 제거하려 애쓰기에 이른다.
공연은 스토리가 대변하듯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품위 있고 고상한 오페라를 지향하지 않는다. 극의 주인공도 인간이 아닌 (한때 인간이 될 뻔 했던) 개다. 개 ‘샤릭’의 인간에 대한 호감과 적대감은 각각 카운터 테너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메가폰을 통해 울려 퍼지는 소프라노의 찢어지고 변형된 목소리로 표현된다. 그리고 우리는 중립적인 관점에서 ‘샤릭’이라는 개와 인간 사회의 작용-반작용의 모습을 조망하게 된다.
불편한 진실
극을 통해 작가는 당시 구소련이 공산주의 사회 초기의 변혁 과정에서 경험하는 계급간의 불편한 갈등을 풍자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과학자의 일련의 불안한 실험을 통해 야기되는 파장을 통해 우리는 직접적으로는 당시 공산주의 사회의 부조리함을 보지만, 광의에선 인간 사회의 불편한 진실이 적나라하게 발각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한편으로는 원작이 반세기 넘게 출판 금지 당했던 사실이 이러한 극의 의미를 다시 한번 환기시키기도 한다.
더불어 우리는 작품이 고전 <프랑켄슈타인>과 닮아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도덕적 책임감이 결여된 과학자의 실험은 인간의 불완전성을 시사하고 있다. 언젠가부터 인문학과 과학이 분리되면서 겪게 되는 이러한 부작용은 앞 다투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려는 데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지금의 인간 사회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한다.
아쉬운 라스카토프의 음악과 이를 보완한 사이먼 맥버니의 연출
아쉽게도 ‘오페라는 음악이 극을 이끌어가는 중심 역할을 한다’라는 명제 속에서 작곡가 라스카토프는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원저자인 불가코프가 묘사했던 당시 사회에 대한 신랄한 풍자의 맛은 안타깝게도 라스카토프의 음악으로 극대화되지 못했다. 비록 극중 날선 모습들이 음악의 도움을 받아 더욱 예리한 맛을 내는 면이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음악이 극을 끌고 가는 힘은 아쉽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러한 음악적 뒷받침의 부족함이 이번 무대에서는 연출가 사이먼 맥버니에 의해 효과적으로 보완되고 있다. 배우 그리고 작가로서의 명성 뿐 아니라, 그가 공동 설립한 시어터 컴퍼니 컴플리시테(Complicite)의 예술감독이자 연출가로서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보여준 그의 능력은 이미 다른 연출가들과는 차별성을 두어왔다. 올 해만 해도 그가 연출한 세 작품 <사라진 숫자, A Disappearing Number><슌킨, Shun-kin><개의 심장>이 런던에서 공연될 정도로, 지금은 한마디로 맥버니/컴플리시테의 전성 시대이다.
사실 맥버니의 오페라 연출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그가 작품을 맡게 된 후 인터뷰에서도 언급했듯, 영리한 연출가에게 있어서 연극, 뮤지컬, 오페라 연출의 차이는 없다. 단지 오페라는 음악이 연출의 방향을 더욱 쉽게 제시해 줄 수 있을 뿐이다. 그의 작품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여러 무대 기법들 ? 영상, 프로젝션, 퍼펫, 그림자, 사운드 등등 ? 의 유기적 조합은 극을 더욱 풍성하게 할 뿐 아니라 관객들에게 여러 가지 상상과 영감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부정적으로 스타일이 내용을 앞선다는 비평을 듣기도 하지만, 이번 작품에서 만큼은 다양한 이미지의 중첩과, 블라인드 서밋 시어터(Blind Summit Theatre)와의 공동작업으로 탄생한 퍼펫들의 효과적인 움직임으로 커다란 콜리시엄 무대가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샤릭’이 개에서 인간으로 변화하는 모습들을 묘사한 장면들은 매우 인상적이다.
더불어 ENO 오케스트라와 게리 워커(Garry Walker)의 지휘 아래 교수 역의 바리톤 스티븐 페이지(Steven Page)를 비롯해 샤리코프를 노래한 테너 피터 호어(Peter Hoare)와, 개의 기분에 따라 다른 소리를 연기했던 카운터 테너 앤드류 왓츠(Andrew Watts)와 소프라노 엘레나 바실리에바(Elena Vassilieva) 등 연기자 모두는 공연의 성공에 일조하였고, 연출자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한 각 부분 디자이너들의 노력도 충분히 박수 받을 만 하다.
종합 예술로서의 이번 작품의 의미
런던에 이어 내년 러시아 초연을 가질 계획인 이 오페라는 여러 의미에서 현대의 오페라작품들이 종합 예술(Gesamkunstwerk)로서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것인지를 보여준 좋은 예였던 것 같다. 로열 오페라와의 끊임없는 선의의 경쟁을 통해 발전하는 ENO와, 런던 공연계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있는 컴플리시테의 공동 작업은 그래서 더욱 의미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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