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웨스트엔드를 결산하는 34회 로렌스 올리비에 상(Laurence Olivier Awards) 시상식이 지난 일요일(3월 21일) 그로브너 하우스 호텔에서 열렸다.

올해의 수상자들 면면을 보면 연극 부문은 그 어느 해보다 경쟁이 치열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반면, 뮤지컬 부문은 그에 비해 조금은 긴장감이 떨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제작비나 기타 여건에 있어서 연극이 뮤지컬에 비해 쉽게 무대에 올려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고서라도, 작년 웨스트엔드에서 작품성 있는 신작 뮤지컬을 찾기가 쉽지 않았던 사실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2010 올리비에 어워즈’의 키워드로는 연극강세, 흑인 제작자들의 약진, 작품성과 실험성, 테네시 윌리엄스 등을 나열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나 이러한 요소들은 연극부문의 경쟁작들을 통해 잘 나타난다.

연극 부문


매년 올리비에 어워즈에서는 예상 밖의 깜짝 수상자들이 선정되어 웨스트엔드의 공연팬들을 즐겁게 하는데, 이번 ‘2010년 올리비에 어워즈’의 최대 이변은 연극 부문에서 나왔다. 신작 연극상에서 28세의 신예 작가 카토리 홀(Katori Hall)의 <더 마운틴톱, The Mountaintop>이 쟁쟁한 경쟁자였던 로열 코트 프로덕션의 <예루살렘, Jerusalem>과 <엔론, Enron>을 꺾고 수상했기 때문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되기 전 날의 모습을 픽션으로 묘사한 이 연극이 이번 어워즈에서 이변으로 여겨졌던 이유는, 작품이 젊은 미국 흑인 여 작가가 쓴 생애 두 번째 작품이었고, 런던 남쪽의 소극장에서 출발한 연극이 웨스트엔드까지 진출하여 얻어낸 쾌거이기 때문이었다. 항상 다양성의 측면에서 단점으로 지적되는 백인 남성 중심의 영국 공연계에 흑인 여성 극작가가 올리비에 어워즈 역사상 처음으로 수상한 것은 많은 의미를 가진다.

우선 이번 결과를 통해 웨스트엔드로 대변되는 영국 공연계의 흑인 극작가들 작품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더불어 작은 프린지 극장에서 웨스트엔드까지 진출한 이 작품의 이력을 통해 제작자들이 대형 상업 공연에 치중하기 보단 작품성과 실험성을 추구하는 경향을 더욱 높이는 계기를 가질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 이는 또한 런던내의 오프 웨스트엔드와 웨스트엔드의 상생관계를 다시 한번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일 뿐더러, 문화의 다양성의 측면에서 충분히 의미 있는 발전이기도 하다.

신작 연극상 수상의 기회를 얻지는 못했지만, 로열 코트 극장의 연극 <예루살렘>과 <엔론>의 선전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작년 한 해 두 작품이 런던 연극계에 몰고 온 광풍은 실로 대단했다. 이미 웨스트엔드의 대형 극장으로 이전하여 연장공연을 계속하고 있는 두 연극은 일찌감치 여러 다른 시상식에서 두각을 나타냈었고, 따라서 당연히 ‘2010 올리비에 어워즈’의 신작 연극상도 두 작품의 경쟁으로 귀결되는 듯 했다.


반면 연극 부문의 남녀 주연상은 예상한 바와 같았다. 주드 로, 제임스 얼 존스, 사무엘 웨스트 등의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예루살렘>으로 두 번째 올리비에 상을 거머쥔 베테랑 마크 라이런스(Mark Rylance)와, 돈마 프로덕션의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A Streetcar Named Desire>에서 블랑쉬 역의 신들린듯한 연기로 찬사를 받은 레이첼 바이스(Rachel Weisz)의 수상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보인다. 두 연기자 모두 작품을 통해 평단 및 관객들로부터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던 터라 수상은 어느 정도 점쳐져 왔던 결과였다.

한편 루펏 굴드(Rupert Goold)는 <엔론>의 연출로 그의 두 번째 올리비에 연출가상을 가져가는 힘을 보여줬다. 미국의 대형 에너지 회사 엔론의 추악한 스캔들을 무대화한 이 연극은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소재를 적절한 디자인과,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 참신한 아이디어로 조합한 루펏 굴드의 연출로 작년 한해 동안 가장 주목을 받았던 작품이 될 수 있었다.

이 밖에 돈마 웨어하우스는 여우 주연상과 더불어 남녀 조연상을 수상하며 이름값을 한 반면, 내셔널 시어터와 바비칸, 올드 빅 등의 대형 극장들은 충분히 칭찬받을 좋은 프로그램들을 선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수상자를 거의 내지 못해, 간접적으로 작년의 웨스트엔드 연극들간의 경쟁이 얼마나 불꽃 튀었는지 유추해 볼 수 있다.

연극 리바이벌 상은 흑인 배우들로만 캐스팅된 테네시 윌리엄스의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Cat on a Hot Tin Roof>로 돌아가며 또 다른 의미를 남겼다.

뮤지컬 부문

‘2010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즈’ 뮤지컬 부문은 연극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쟁이 치열해 보이지 않았다.


가장 두드러진 활약은 야외극장의 매력을 한껏 뽐낸 리젠트 파크에 위치한 오픈 에어 시어터(Open Air Theatre)의 선전이었다. 오픈 에어 시어터는 작년 흥행작 <헬로!돌리, Hello! Dolly>를 통해 뮤지컬 리바이벌 작품상과 더불어, 사만타 스피로의 여우 주연상과 안무가상(Stephen Mear)을 동시에 손에 쥐면서, 명실공히 작년 웨스트엔드 뮤지컬 리바이벌 작품 중 가장 잘 만들어진 작품임을 입증했다.


한편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 Spring Awakening>은 웨스트엔드에서는 상업적으로 실패의 쓴맛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신작 뮤지컬 작품상, 남우 주연상(Aneurin Barnard), 조연상(Iwan Rheon) 그리고 사운드 디자인상(Brian Ronan)의 4개 부문을 가져감으로써 어느 정도 런던 관객들에게 입은 상처(?)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하지만 다른 경쟁 작들이었던 <시스터 액트>, <프리실라, 사막의 여왕>, <드림보트와 패티코트>가 워낙 작품성에 있어서 취약한 점을 가지고 있어서 ‘2010 올리비에 어워즈’가 신작 뮤지컬상 부문 수상 결과에 대한 긴장감이 덜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겠다.

이밖에 코스튬 디자인상은 <프리실라, 사막의 여왕, Priscilla, Queen Of The Desert>이 가져갔고, 관객들이 주는 가장 인기있는 공연상(audience award for most popular show)은 지난해 좋은 박스오피스 실적으로 대변되는 뮤지컬 <위키드>의 차지였다.

한편 로열 오페라 하우스는 <트리스탄과 이졸데, Tristan Und Isolde>등의 작품으로 오페라와 댄스 부문을 휩쓸었다.

올 해의 웨스트엔드를 기대하며

‘2010 올리비에 어워즈’ 심사 패널들이 작품성에 있어서 결코 뒤지지 않는 <예루살렘>이나 <엔론>보다 <더 마운틴톱>에, <시스터 액트>, <프리실라>보다 <스프링 어웨이크닝>에 더 관심을 가졌다는 의미는 웨스트엔드 관객들이 공연 제작자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준 증거였다. 이는 비슷한 패턴의, 볼거리 위주의 무리 없는 공연들 보다는, 끊임없는 변화와 실험을 통해 새로운 극장 경험을 원하는 관객들의 요구를 대변한 것과 같다.

다른 공연관련 상들과는 다르게 올리비에 어워즈에서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수상작을 결정하는 심사패널에 단지 공연전문가 뿐 아니라 일반 관객들도 참여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 예상치 못한 결과에도 모두가 의아해 하지 않고 기분 좋게 나름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진 출처 : www.officiallondontheatre.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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