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공연계에서 ‘한류 뮤지컬’이란 용어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한국에서 공연되는 뮤지컬에 일본과 중국 관객이 몰려드는가 하면 일본에서 한국 뮤지컬들이 잇따라 공연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급한 한국 언론들은 뮤지컬이 드라마와 K팝에 이어 한류의 새로운 얼굴로 각광받고 있다며 연일 보도하고 있다. 과연 한국 언론의 보도대로 ‘뮤지컬 한류의 시대’가 도래한 것일까. 한국 뮤지컬이 잇따라 진출하고 있는 일본에서 한류 뮤지컬의 실제 모습을 2회에 걸쳐 진단해 본다. 다만 일본에서는 ‘한류’라는 용어에 부정적인 의미가 담긴 경우가 많고, ‘한국 뮤지컬’이란 표현이 일반적으로 쓰이기 때문에 문맥에 따라 한류 뮤지컬 또는 한국 뮤지컬로 혼용해 쓰겠다. 

<지하철 1호선>으로 얼굴을 알린 한국 뮤지컬

일본에서 한국 뮤지컬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2001년 <지하철 1호선>으로 거슬러 올러간다. 이보다 앞서 1991년 서울시립가문단(현 서울시뮤지컬단)이 <양반전>으로 일본 순회공연을 가진 적이 있지만 ‘한-일선린관계 증진과 재일동포 위문’을 내건 정부 행사에 가까웠기 때문에 지금의 한류 뮤지컬과는 거리가 있다.
<지하철 1호선>은 일본국제교류기금의 해외 우수공연 초청 프로그램 일환으로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에서 공연돼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연극평론가 니시도 고진(西堂行人) 등 일본 평단은 한국 연극 특유의 저항정신과 풍자성을 <지하철 1호선>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는 리뷰를 남기기도 했다. 

한일 월드컵이 있었던 2002년엔 신시뮤지컬컴퍼니의 <갬블러>가 (재)민주음악협회의 초청으로 일본 13개 도시 투어 공연을 가졌다. 민음(民音)이란 약칭으로 더 알려진 민주음악협회는 일본 종교인 창가학회가 만든 공연기획사다. 신자가 830여만명으로 추산되는 창가학회는 일본에서 세 번째로 신자수가 많은 종교로 자민당의 연정파트너인 공명당의 지지기반이기도 하다. 
민음은 세계 각국과의 문화 교류를 중시하는 만큼 한국의 가요, 오페라, 국악, 클래식, 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초대한 바 있다. 종교 단체와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다소 수상해 보이지만 그동안 정명훈이 이끄는 아시아필하모닉 오케스트라나 존 노이마이어의 프랑크푸르트발레단 등도 민음의 초청으로 일본에서 공연했을 정도로 대형 기획사다. <갬블러>는 한일 월드컵을 기념하기 위해 민음이 일본의 공연 관계자에게 한국 작품의 추천을 의뢰했고, 이 관계자와 친분이 있던 연출가 임영웅이 <갬블러>를 추천하면서 성사됐다. 
<갬블러>는 2003년에 이어 2005년에도 8개 도시 투어를 가진 바 있는데, 신시는 각각 6억원과 12억원의 개런티를 받았다. <지하철 1호선>이나 <갬블러>는 초청한 쪽이 티켓 판매를 전부 책임지기 때문에 마케팅에 대한 부담이 없었던 것이 특징이다. <갬블러>의 경우 민음이 창가학회의 네트워크를 통해 티켓을 판매했다.   

한류 드라마에서 비롯된 뮤지컬 <겨울연가>과 오디의 도전

2006년 초 한국의 창작뮤지컬이 처음으로 일본에 소개됐다. 바로 드라마 <겨울연가>를 토대로 한 동명 뮤지컬이다. 드라마를 연출한 윤석호PD의 제작사 윤스칼라는 처음부터 한국이 아닌 일본 관객을 대상으로 만들었다. 
2003년 NHK에서 드라마가 방영된 이후, 한류가 일본에서 힘을 얻어가는 중에 나온 뮤지컬 <겨울연가>는 완성도와 별개로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 삿포로와 도쿄, 오사카에서 공연된 이 작품은 한류 드라마를 뮤지컬로서 제작함으로써 한류 콘텐츠를 보다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겨울연가>는 국내 드라마 제작사가 주도한 것으로 뮤지컬계는 아직 뮤지컬의 한류까지 생각하진 못했다. 

이즈음 한국 뮤지컬에서 주목할만한 도전이 나왔다. 바로 같은 해 3월 도쿄와 오사카에서 공연된 오디뮤지컬컴퍼니의 <지킬 앤 하이드>다. 앞서 라이선스 뮤지컬인 <지하철 1호선>이나 <갬블러>가 개런티를 받고 공연했던 것과 달리 <지킬 앤 하이드>는 오디가 한일합작엔터테인먼트회사인 JK스파클과 공동으로 13억원을 투자해 일본에 직접 진출했다. 새로운 일본 진출 모델을 제시하긴 했으나 시장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없이 간 탓에 홍보마케팅이 제대로 안돼서 수익은 마이너스였다. 주역인 조승우가 한국에선 최고의 티켓 파워를 가졌지만 일본에선 ‘한류 스타’가 아닌 것도 하나의 이유로 꼽을 수 있다. 조승우는 드라마에 출연한 적이 없기 때문에 드라마에서 출발한 일본 한류팬에게는 친숙하지 않다.  
당시 <지킬 앤 하이드>는 재일교포가 운영하는 ‘한국광장그룹’을 통해 선착순 350명에 한해 뮤지컬 OST를 사면 1만2600엔짜리 티켓 2장씩 선물로 주는 이벤트를 벌였다. 또한 일본의 티켓 예매 사이트인 이플러스에서는 반값에 팔기도 했다. 국내에선 <지킬 앤 하이드>가 일본에서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으나 안타깝게도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셈이다. 다만 공연을 본 일본 관객들 사이에선 조승우를 비롯해 한국 뮤지컬 배우들의 기량을 칭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듬해 9월 오디뮤지컬컴퍼니는 도쿄에서 <맨 오브 라만차>를 공연했다. 이 작품은 오디가 일본 공연기획사를 고용해 홍보마케팅을 했는데, <지킬 앤 하이드>와 마찬가지로 준비부족 때문에 수익은 내지 못했다. 일본에서 대형 뮤지컬은 적어도 1년 전부터 홍보마케팅이 들어가는게 일반적인데, 이 작품은 당시 아오야마 극장에서 예정됐던 다른 작품이 취소되면서 급하게 계약이 이뤄지다 보니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춘수 대표도 “돈보다는 국위 선양과 시장을 뚫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하지만 <지킬 앤 하이드>와 <맨 오브 라만차>의 공연은 일본 관객들에게 한국 뮤지컬에 대한 이질감을 없앴을 뿐만 아니라 한국 뮤지컬 배우들의 매력에 눈뜨드록 만드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일본에서는 <맨 오브 라만차>의 돈키호테를 30년째 연기하는 마츠모토 코시로(松本幸四郞)를 비롯해 중년 배우들이 주연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본 여성 관객들이 젊고 매력적인 남자 배우들 중심의 한국 뮤지컬에 끌렸다는 해석도 있다. 이와 함께 극단 시키가 <라이온킹>의 한국 진출을 앞두고 한국 출신 배우들을 뽑기 시작하면서 일본 배우들을 압도하는 한국 배우들의 가창력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라이선스 계약한 한국의 창작뮤지컬 등장

PMC의 창작뮤지컬 <달고나>가 2007년 일본 엔터테인먼트회사 아뮤즈(AMUSE)에 순매출의 5%를 받는 조건으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일본에서 <라무네(레모네이드의 일본식 표기)>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오른 이 작품은 70~80년대 한국 상황을 일본의 60~70년대로 바꾸고 노래 역시 일본 가요로 대체했다. 

2008년엔 좀더 의미있는 진전이 이뤄진다. 바로 한국 소극장 창작뮤지컬을 대표하는 <사랑은 비를 타고>가 일본의 대형 제작사인 토호에 라이선스로 팔린 것이다. <라무네>가 원작을 많이 각색한 것과 달리 <사비타>는 원작 그대로 공연됐다. 김선미 M뮤지컬컴퍼니 대표는 “2005년부터 일본의 여러 제작사에 <사비타> 관련 자료를 보냈는데, 2006년 토호 관계자들이 서울 공연을 본 뒤 관심을 표명했다”면서 “1년여의 준비 끝에 2007년 티켓 매출의 7%를 받는 조건으로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사비타>는 2008년 씨어터 트램에서 초연된 이후 2010년 혼다극장에서 앙코르 공연됐으며 올해 10월 아오야마 원형극장에서 다시 공연될 예정이다. 극장의 규모나 위상이 점점 좋아지고 있는 것이나 단발성 공연에 그치지 않고 계속 재공연되는 점에서 주목된다. 

2009년 징용 한국인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침묵의 소리>는 서울시뮤지컬단과 일본 극단인 도쿄긴가토가 함께 만든 작품으로 도쿄, 후쿠오카 등 6개 도시에서 잇따라 공연됐다. 도쿄긴가토가 2005년 서울시극단과 공동제작한 연극 <침묵의 해협>을 뮤지컬로 만들자고  제안해 성사됐다. 뮤지컬에서 처음으로 한일 양국이 합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배우의 역량 등 완성도 면에서 다소 미진했으며 제작 과정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서울시뮤지컬단의 파트너인 도쿄긴가토가 일본에서 “과거엔 괜찮은 극단이었지만 지금은 해외와 합작 공연을 기획해 정부 지원을 받지만 공연의 작품성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에 일본 공연계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이 작품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당시 유희성 서울시뮤지컬단장도 “한국 뮤지컬의 일본 진출에 있어서 좋은 파트너의 선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본의 한류뮤지컬 특집 2] 뮤지컬 한류의 변화 에서 이어집니다.

글/ 장지영(국민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