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받아들이며 성장하는 소년들, <유도소년> & <점프 아쉰>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으로 2주간의 연장공연까지 이끌어낸 연극 <유도소년>(~7/13, 아트원씨어터 3관)은 극단 간다의 이재준 연출, 박경찬 작가가 합심해 만든 작품으로, 고교시절 유도선수였던 작가의 자서전적 내용을 담았다. 주인공 경찬은 유망한 유도선수였지만, 지금은 슬럼프에 빠져 번번히 어른들의 타박을 듣는 신세다. 그러던 그는 유도부 후배들이 친 사고를 책임지기 위해 전국선수권대회에 출전하고,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끝났다고 하기 전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라는 스포츠정신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게 된다.


무엇보다 <유도소년>이 주는 감동은 경찬이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더 잘 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괴로움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온다. 수없이 땀을 흘려야만 비로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신을 찾고 또 어른이 되는 길임을 깨닫는 경찬의 모습은 나이와 상관없이 지금도 늘 성장하기 위해 애쓰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늘 곁에 있던 선배 민욱의 소중함을 깨닫는 화영, 화영을 위해 소심한 성격을 깨고 조금씩 변화해가는 민욱의 모습 등이 제각기 각별한 청춘을 지나온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이처럼 스포츠를 통해 자신을 찾고 세상과 대면하는 소년들의 성장기는 영화에서도 곧잘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대만영화 <점프 아쉰>(2011)은 주인공이 오랜 슬럼프 끝에 자신과 대면하고 성장한다는 점에서 <유도소년>을 떠올리게 한다. 어렸을 때부터 체조만을 생각하며 살았던 주인공 아쉰은 소아마비로 두 다리가 성치 않아 체조를 포기하고 만다. 절망한 그는 고향을 떠나 대도시의 뒷골목에서 방황하지만, 결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직접 그 문제와 부딪혀 싸워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한층 성장하는 그의 모습이 <유도 소년>의 경찬과 닮아 있다.

부서질 듯 투명한 청춘의 순간, <비행소년 KW4839> & <아메리칸틴>

무대디자이너로 활동해온 여신동이 연출한 <비행소년KW4839>(~6/21,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는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부딪히고 깨지고 절규하며 자신을 찾아가는 청소년들의 모습을 실험적인 무대로 구현했다. 관객들은 공항에서처럼 출국심사와 탑승수속을 걸쳐 무대를 마주한다. 이어 ‘여기에서 거기까지’ 가는 비행기 KW4839호를 타고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 불시착해 청소년들의 생생한 고민과 불안을 보고 느끼게 된다.


무대 위 배우들은 자기만의 잣대로 청소년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대신 전하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토로하며 “존나 빡쳐!”하고 소리지르다가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옆 자리의 친구에게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묻는다. 매 순간 혼란스럽고, 늘 경계에 서 있고, 터무니없는 명랑과 낙망을 오가는 그들의 모습은 일정한 서사 없이도 끊임없이 웃음과 눈물을 자아낸다. 여기에 정재일 음악감독이 만든 음악이 그들의 목소리에 두터운 울림을 더한다.

<비행소년KW4839>이 오늘의 한국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담아냈다면, 2008년 선댄스영화제 다큐멘터리부문 연출상을 수상한 <아메리칸틴(American Teen)>은 인디애나주의 한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졸업을 앞둔 십대들의 모습을 그린다. 무리에서 소외된 괴짜, 문자로 이별통보를 하는 아이, 이별을 받아들이는 아이 등 저마다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성장해가는 십대들의 모습은 한국의 평범한 고등학생들의 모습과도 맞닿아 있다.

규정할 수 없는 존재의 복잡성, <수탉들의 싸움> & <엄마와 나 그리고 나의 커밍아웃>

“이제는 그 사람이 누구인가가 중요하다는 걸 알겠어. 남자냐 여자냐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어떤 일을 하는가.”
내달 11일 개막하는 연극 <수탉들의 싸움>(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은 <러브, 러브, 러브>의 작가 마이클 바틀렛이 쓴 작품이다. 이 연극은 성정체성의 혼란으로 남성과 여성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하는 주인공 존을 통해 ‘주체성과 선택’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다룬다.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규정하고 선택하기를 강요하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도망치는 존의 모습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복잡하고 심원한 존재이며, 그래서 그를 단정짓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를 곱씹어보게 한다.


분위기는 사뭇 다르지만, 제66회 칸 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서 최고영화상을 수상한 <엄마와 나 그리고 나의 커밍아웃>은 주위로부터 규정지어진 자신의 모습을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진짜 자신을 찾아가는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영화의 주인공 기욤은 평소 여성스러운 말투와 취향으로 모든 이들에게 게이로 받아들여지지만, 결정적인 순간 ‘반전’의 커밍아웃을 한다. 그의 모습은 늘 틀을 벗어나고 예상을 깨뜨리는 인간 존재의 복잡성을 유쾌 발랄하게 상기시킨다.

글 :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제공 : 플레이디비DB, 국립극단, 노네임씨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