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독일, 어느 저택에서 의문의 화재사건이 일어났다. 불이 꺼진 자리에서 집주인 부부가 시체로 발견됐고, 유모 메리는 입양된 네 명의 아이들을 구출한 후 사라져버렸다. 12년 후,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모인 네 아이들. 뮤지컬 <블랙메리포핀스>는 '누가?'가 아닌 '왜?'에 초점을 두고 네 주인공들과 함께 이 사건의 충격적인 진실을 밝혀나간다. '심리추리스릴러'라고 명명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강하늘, 김대현, 전성우가 만났다. 고민을 거듭하며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즐거움에 푹 빠진 세 사람과 함께 <블랙메리포핀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일찍부터 맺어진 <블랙메리포핀스>와의 인연

<블랙메리포핀스>는 서윤미 작가가 연출/작곡까지 맡은 작품. 극 중 둘째 동생 '헤르만'을 맡은 강하늘·전성우와 이 작품의 인연은 일찍부터 시작됐다. "서윤미 작가님이 제가 출연한 <왕세자 실종사건>을 보러 온 후로 연락이 닿았어요. 그 때 <블랙메리포핀스>라는 작품을 쓰고 있다면서 초고를 주셨는데, 너무 좋았어요. 극의 흐름이나 대사가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았어요. 좀 더 깊이 있는 연기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바로 '하겠습니다' 했죠."(강하늘)

전성우는 현재 서윤미 작가의 연출 데뷔작 <밀당의 탄생> 시즌 2에서 주인공 '서동왕자'를 맡고 있다. "<밀당의 탄생>을 시작하기도 전에 서윤미 작가님이 <블랙메리포핀스> 이야기를 했어요.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았고, 무엇보다 시놉시스가 너무 재미있어서 하겠다고 했죠."(전성우) 처음에는 막내 '요나스'를 맡을 예정이었던 전성우·강하늘은 이후 둘째 헤르만으로 배역이 바뀌었다.

<모범생들>에 출연 중이던 김대현과 <블랙메리포핀스>와의 인연은 양주인 음악감독이 맺어줬다. "<모범생들>을 하면서 잠깐 지방에 내려간 적이 있는데, 올라오는 길에 양주인 감독님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이유는 말씀 안 하시고 그냥 빨리 오라고 하시더라고요. 갔더니 '편하게 노래부터 해봐' 하시면서 대뜸 오디션을 보셨어요(웃음) 나중에 연락이 와서 대본을 봤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에요. 요나스가 <모범생들>에서 제가 맡은 역할과 너무 달라서 새로운 연기에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김대현)

마침 뮤지컬을 하고 싶던 차에 강하늘과 함께 참여하게 되어 무척 기뻤다는 김대현은 전작 <왕세자 실종사건>을 통해 강하늘과 친분을 맺었다. "<왕세자 실종사건>을 했을 때 저랑 대현이 형이 서로 너무 잘 맞는 거에요. 그래서 '나중에 같은 작품에서 다른 역할을 해보자'고 약속했는데, 바로 다음 작품에서 만나게 된 거죠. 너무 신기했어요."(강하늘)

섬세한 심리연기를 고민하다

<블랙메리포핀스>는 주인공 네 사람이 만들어내는 심리적 긴장과 갈등이 섬세히 표현되는 작품이다. 까맣게 잊어버린 화재사건의 기억 때문일까, 극 중 주인공들은 모두 심리적 장애를 갖고 있다. 경계성 인격장애를 지닌 인물 헤르만도, 공황장애와 회피성 인격장애를 가진 막내 요나스도 모두 연기하기 쉽지 않은 캐릭터 같았다. 배우 김대현이 고민하고 있는 부분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는 장면이었다.

"시점이 현재에서 과거로 전환되는 장면이 있는데, 이 부분에서 어두운 톤의 연기를 하다가 갑자기 밝아져야 하거든요. 그게 너무 어렵더라고요. '메리 아줌마!' 하고 외치는 요나스의 대사로 극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바뀌어야 돼요. 이게 어려워서 (윤)나무랑도 계속 얘기하면서 고민 중이에요. 요나스는 많이 웃고 장난도 많이 치는 천방지축 캐릭터인데, 그런 면이 과거 장면에서 많이 보여져야 하거든요."(김대현)

화제사건의 진위를 두고 첫째 형 '한스'와 대립하는 헤르만의 직업은 조각가. 같은 인물에 접근하는 강하늘·전성우의 방식은 조금 달랐다.

"헤르만이라는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성적인 면과 감성적인 면의 충돌을 보여주는 거에요. 어떤 부분에서 감성적인 모습을 보일지, 어떤 부분에서는 그 반대로 가야 할지를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유명한 화가나 조각가들 중에서 우울증에 시달린 사람들이 많은데, 그 이유 중 하나가 감성과 이성이 충돌하기 때문이거든요. 조각가 헤르만이 가진 예술적인 면을 어떻게 표현할지, 감성과 이성의 충돌을 어떻게 보여줄지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강하늘)

"제가 이제까지 했던 역할은 대부분 정적이었어요. 근데 헤르만은 동적인 부분이 많이 표현돼야 하는 캐릭터에요. 관객이나 주위 분들이 저에 대해 어리고 유약한 이미지를 많이들 갖고 계셔서, 우선 그걸 깨는 것이 제가 가진 가장 큰 숙제에요. 이제까지의 제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드려야 해서 이미지의 변화를 많이 주려고 해요."(전성우)

그렇다면 전성우·강하늘이 각각 표현하는 헤르만은 어떻게 다를까. 김대현의 말에 따르면, 두 명의 헤르만은 확실히 다르면서도 매력적이라고.

"성우 형이 연기하는 헤르만이 섬세하다면, 제가 보여주는 헤르만은 감정적인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들도 많이 나누고, 형의 헤르만이 가진 매력도 배우려고 해요. 개인적으로 영화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에서 하비에르 바르뎀이 맡은 화가를 헤르만의 모델로 삼고 있어요. 감정적인 면이 많은 예술가 역할이라 많은 부분을 참고하고 있죠."(강하늘)

의문의 화제사건 이후 각기 다른 집에 입양되어 살아온 네 명의 주인공. 극중 헤르만에게 요나스는 12년 동안 보살펴주지 못한 안쓰러운 동생이다. "헤르만에게 요나스는 형으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은 다 해주고 싶은, 아끼고 사랑하는 동생이에요. 떨어져 있는 동안 보살펴주지 못해서 후회되는 애틋한 존재이기도 하고요. 변해버린 요나스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는 헤르만을 잘 표현하고 싶어요."(전성우)

"음악·안무·반전 모두 마음에 쏙 들어요"

세 배우가 각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안무와 노래를 빼놓을 수 없다. 세 사람은 제작진과 함께 안무·노래 등 작품의 구성요소를 적극적으로 협의하고 만들어가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다.

"우리 연습실의 분위기가 뭐든 토론하고 소통할 수 있는 분위기라서 너무 좋아요. 안무 선생님이 기본적인 틀을 주시면 우리가 그 안에서 '이렇게 돌아서 해볼까' 하면서 조금씩 바꿔보기도 해요. 처음에 안무를 접했을 때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우리끼리는 '심리적 제스쳐'라고 부르는데, 섬세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동작이 무척 신선했고, 작품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죠."(강하늘)

서윤미 연출이 만든 음악도 배우들의 마음에 쏙 드는 듯 했다. "저희 노래는 보통 뮤지컬에서 말하는 '넘버'와 조금 개념이 달라요. 그냥 대사에 음이 실린 느낌이랄까요. 사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귀에 딱 꽂히는 곡이 없었는데, 연습하다 보니 이게 훨씬 더 작품과 어울리겠구나 싶어요. 음악과 안무가 섞여서 우리가 하는 연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함께 흘러가거든요."(강하늘)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묻자 강하늘은 '너를 지켜줄게'를, 김대현은 '사일런트 웬즈데이(Silent Wednesday)를 꼽았다. "'사일런트 웬즈데이'를 들으면 뭔가 알쏭달쏭하면서도 어두운 느낌이 들어요. 다른 배우들의 노래도 중독이 돼서 계속 떠올라요.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고요. 노래가 가진 그런 힘이 너무 좋아요."(김대현)

세 사람이 자랑스러워 하는 작품의 또 다른 요소는 마지막 장면의 반전. 가장 먼저 결말을 알아차린 강하늘은 무엇보다 반전이 마음에 들어서 <블랙메리포핀스>를 선택했다고 한다. 다른 배우들도 반전을 알게 된 후 탄성을 내뱉었다고. 하지만 세 사람은 마지막 장면이 '반전을 위한 반전'이 아님을 강조했다. 억지스러운 설정이 아니라 관객들에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줄 수 있는 열린 결말이라는 것. "<블랙메리포핀스>는 결론이 나지 않는 작품이에요. 결말이 또 다른 시작인 거죠. 돌아가시면서 '왜 그랬을까' 하고 더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고요."(전성우)

"관객들이 이 작품을 보고 나서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공연장을 나가셨으면 좋겠어요. 숫자가 1이나 3으로 똑 떨어지지 않고 1.2, 1.6이 되면 좀 불편하잖아요. 그처럼 관객들도 이 작품의 결말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게 반전인가? 왜지?'하고 의문을 품고 나가셨으면 해요."(강하늘)

그렇다면 이들이 <블랙메리포핀스>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제가 생각하는 이 작품의 주제는 '아팠던 시간도, 행복했던 시간도, 내가 앞으로 지나가야 할 시간도 모두 내 것'이라는 거에요. '예전엔 힘들었으니 이제부턴 행복해져야 해'가 아니라 아픈 기억도, 슬픈 기억도 모두 내 것으로 받아들이는 거죠."(강하늘)

"제 생각도 하늘이와 비슷해요. 저는 마지막 대사를 할 때 일부러라도 웃으려고 해요. 과거의 기억을 지운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차라리 좀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앞으로의 삶을 대하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마지막 장면을 슬프면서도 기쁘게 끝내고 싶어요."(김대현)

개성은 달라도, 연기에 대한 열정만은 똑같은 세 사람

인터뷰가 진행된 날, 세 사람은 공연을 약 3주 앞두고 있었다. 이들은 사진촬영을 하면서도 틈틈이 무대에 대해 이야기했고, 캐릭터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눴다. 서로의 장점을 말해달라고 하자, 마치 미리 정리해 둔 것처럼 대답이 술술 나왔다.

"하늘이는 야성적인 면이 있어요. 분석력도 좋고요. <왕세자 실종사건>을 할 때도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많이 배웠죠. 성우는 되게 섬세해요. <밀당의 탄생>을 보면서 너무 놀랐던 게, 연습실에서와는 너무 다른 거에요. 편안하게 연기하면서도 관객들을 자신에게 몰입하게 만들더라고요."(김대현)

"대현이 형은 극에 대한 몰입도가 대단해요. 저는 조금이라도 불편한 것이 있으면 새로운 장면에 빠져드는 것이 힘든데, 형은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뭉클해질 정도로 극 속에 빠져있어요. 하늘이는 제가 생각지도 못한 디테일한 부분을 많이 포착해요. 감각적이고요. 저는 생각은 많은데, 그 생각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행동으로 잘 안 나올 때가 많아요. 그럴 때 하늘이를 보면서 영감을 얻기도 하죠. 그리고 형도 하늘이도 되게 착해요. 착한 사람들이 연기를 잘하나 봐요.(웃음)"(전성우)

"제가 대형이형에게서 가장 배우고 싶은 건 순수함이에요. 저는 '순진'은 나쁘고 '순수'는 좋다고 생각해요. 순진하다는 것은 자기 안의 중심이 없이 이쪽저쪽으로 휘청휘청하는 것이거든요. 반면 순수하다는 건 자기의 중심을 지킬 줄 아는 것이고요. 이쪽 물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가지 않고, 저쪽 물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가지 않는 형의 순수함이 너무 좋아요. 형은 어떤 것을 받아들일 때도 전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걸러서 받아들이거든요.
성우형은 제가 가장 무서워하는 스타일의 연기자에요. 진지하게 천천히 걸어가는 연기자. 형 같은 사람은 빠르게 걷는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들, 길가에 피어있는 민들레나 해바라기 같은 것들을 하나하나 진지하게 보고 가거든요. 그러면 그 길은 빠르게 간 사람들의 길보다 더 두텁게 쌓여있죠. 그게 한 번 드러날 때는 엄청난 것들이 표현되는 거에요. 저도 나름대로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이지만, 형을 보면서 '조금 더 깊이 생각하면 뭐가 나올까' 하고 계속 자극을 받아요."(강하늘)

연기에 대한 진지한 태도가 꼭 닮은 세 사람은 여가시간에도 작품활동에 도움이 될만한 취미생활을 즐긴다고. 강하늘은 그림과 영화, 책 등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있고, 김대현은 음악에서 정서적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밀당의 탄생>에 출연중인 전성우는 두 사람보다 조금 더 분주해 보였다.

"최근에 그림을 배우기 시작해서 크로키를 계속 그려보는 중이에요. 어떤 대상을 그냥 보기만 하면 금방 잊어버리는데, 그림으로 그리면 기억에 남더라고요. 연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시작했어요. 저는 어떤 캐릭터를 만날 때마다 그림을 통해서 영감을 받거든요. 그래서 그림을 찾아보는 것도 제 취미 중 하나에요. 책도 늘 읽고 있고요. 요즘 보는 책은 <남극의 셰프>에요."(강하늘)

"저는 캐릭터에 어울리는 정서를 찾을 때 음악을 많이 들어요. <왕세자 실종사건>을 할 때 듣던 음악이 있고, <모범생들>을 할 때 듣는 음악이 있죠. 영화는 항상 많이 봐요. <모범생들> 할 때는 '범죄의 재구성'에서 검사역할을 맡은 배우를 보면서 많이 배웠어요. 절제된 연기가 때로는 더 무섭더라고요. 제가 농구를 진짜 좋아하는데, 아직 다리가 안 좋아서 못하고 있어요."(김대현)

"요즘은 취미생활이 따로 없어요. 낮에 연습하고, 밤에 공연하고 나면 힘이 없더라고요. 시간이 있을 때는 피아노를 쳐요. 서윤미 연출님이 작곡을 하시는 걸 보고 저도 해보고 싶어졌거든요. 화성학 책도 찾아봤는데, 너무 어려워서 일단 놔뒀어요. 작품과 관련된 영화도 많이 찾아보려고 해요. 얼마 전에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봤어요. 하울이 헤르만처럼 경계성 인격장애를 가진 캐릭터거든요. 알듯 하면서도 잘 모르겠더라고요."(웃음)(전성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