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석만큼 ‘장르를 넘나드는’이란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배우가 있을까. 지난 2년 동안의 그의 출연작만 보더라도, 뮤지컬과 드라마, 영화가 비중을 재기 힘들 정도로 고르게 활동해 왔다.  여기에 공연계에서의 명성이 바래지지 않을 정도로 타 장르에서도 주목 받는 몇 안 되는 배우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내 마음의 풍금> 연출로 도전했다. 지난 2008년 창작뮤지컬 <즐거운 인생> 이후 두 번째 연출작이다. 최근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일일극 스케줄을 쪼개고 쪼개, <내 마음의 풍금> 연습실로 달려가는 그에게선 배우로 무대에 오르는 것보다 더 무거워 보이는 책임감이 엿보인다. 연습실에서의 그는 배우들의 표정 하나 하나에 동기부여를 해주는 섬세한 연출인 동시에, 연습에 방해되는 요소엔 생각보다 엄격한 연출자였다. 16일 개막을 앞둔 이 작품의 연습실에는 그래서 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곤 했다.
저녁 연습을 앞두고 잠시 연출자 오만석을 만날 수 있었다. 연출자로서 그리고 배우로서 자유자재로 자신을 표현하는 그와 만나는 건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작품이 성장해 나가는데 기여하고 싶어"

 <내 마음의 풍금> 연출을 맡으셨습니다. 초연  배우로 출연했던 작품의 연출을 맡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내 마음의 풍금>은 저에게 작지 않은 의미가 있는 작품이에요. 창작 뮤지컬 만드는 걸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워낙 좋아하거든요. 배우가 됐든 스탭이 됐든 이 작품이 성장해 나가는데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시즌2 당시 관객으로서 이 작품을 봤을 때, 뭔가 조금, 내가 생각했던 <내 마음의 풍금> 방향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 와중에 제작자께서 연출을 맡아 달라는 제안도 하셨고요.

 연출자로서 <즐거운 인생>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첫 연출작으로써 평가가 갈리기도 했고요. 이번 <내 마음의 풍금>에선 연출가로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작품 성격을 따라 가는 것이죠. <즐거운 인생>과 <내 마음의 풍금>이 갖고 있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연출 라인도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아마 보시는 분들이 ‘상당히 다르네’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배우로서 연기를 할 때도 그렇고, 연출도 작품이 가지고 있는 색깔에 맞춰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즐거운 인생>은 대본 단계에서부터 보시는 분들로 하여금 호불호가 갈릴 수 밖에 없는 구성을 갖고 있었고, 저 역시 예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나온 반응이었어요. 어떤 분들은 마니아 층이 생길 정도로 정말 좋아하셨고 어떤 분들은 저건 뮤지컬답지 않다, 연출이 너무 많은 걸 산만하게 하는 거 아니냐란 이야기를 했죠. 그 점을 마음에 안 들어 하시는 분들은 <내 마음의 풍금>을 좋아하실 수도 있고, <즐거운 인생>을 좋아하셨던 분들은 오히려 노멀하게 가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하실 것 같아요.

 시즌2을 거치는 동안 작품의 방향이 달라졌다고 말씀하셨는데. 시즌3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달라지나요.
시즌 1은 동수가 송정국민학교에서 1년을 보내고 이 시간을 추억하는 액자 형식이었다면, 시즌2 에서는 홍연이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 성장드라마였어요. 이번에는 동수와 홍연이가 함께 성장하는 성장드라마로 갑니다. 그 와중에 인물들 사이의 끈이 좀 더 팽팽하고 긴장감 있게, 좀 더 디테일하게 가려고 해요. 시즌2 때는 발랄하고 재미있는 쪽으로 치우쳤다는 느낌을 받아서, 이번에는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아픔과 성장통을 관객들 앞에서 디테일하게 살아나오도록 했어요. 아마도 조금 더 풍성해 질 것 같아요. 불필요한 부분은 삭제하기도 하고, 장면을 추가하기도 해서 분명히 색다른 시즌3가 될겁니다.

 연출로서 어려움은 배우일 때와는 다를 것 같은데요.
연출을 하기로 마음 먹은 순간부터 이 작품이 조금은 다른 색깔로 갖는 것에 대해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여러 가지 여건 상 준비한 만큼 다 표현해내지 못한 건 있어요. 연출이란 건 어쩔 수 없이 이상과 현실을 타협하는 작업이니까. 창작 뮤지컬이 재정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넉넉한 편은 못 돼서 어떤 것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접고, 있는 것 안에서 해결하고 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라져 있는 걸 보실 수 있을 거에요.

 배우들의 장단점도 더욱 부각돼서 보일 것 같은데, 이번에 더블캐스팅 된 강필석씨와 이지훈씨의 장단점을 연출로서 평가한다면.
아이러니하게도 더블 캐스트가 있으면 그들이 서로 반반씩 섞였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이번에도 역시 그래요. 이지훈씨 같은 경우는 호흡도 상당히 빠르고 감각도 좋고, 순발력도 좋아서 주문을 하면 금방 찾아내는 편이에요. 반대로는 공연을 많이 해본 경험이 없어서 큰 줄기, 맥락을 잡고 가는 긴 호흡은 모자란 편이고. 필석씨는 반대로 사람이 가지고 있는 호흡 자체가 길어요. 그러다 보니까 템포감 있게 빨리 빨리 넘어가야 할 부분은 더딘 반면, 캐릭터의 긴 호흡은 유지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장점이 있죠.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서로 배운다면 더없이 좋은 동수들이 나올 것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도 배우라 출연 배우들에게 연기 지도를 많이 하지 않을까 하는데요.
지도까지는 아닌데, 연기 부분에 있어서는 많이 하는 편이에요. <내 마음의 풍금>이란 작품은 장면이 스펙타클 한 것도 줄거리가 엄청난 것도 아니거든요. 인물간의 캐릭터와 캐릭터가 부딪혔을 때 그 디테일한 교감 안에서 만들어지는 장면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연기적인 부분에 주문이 많아질 수밖에 없어요. 또 그런 표현이 살지 못하면 이 작품은 경쟁력을 잃는 작품이기도 하죠.


 그 동안 여러 장르에 걸쳐 수 많은 연출, 감독님을 만나셨습니다. 영향을 받은 연출님이 있으신가요.
거의 모든 작품을 하면서 영향을 받는 것 같아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매번 작품을 할 때 마다 배우는 것도 있고, 닮지 말아야겠다 라고 생각하는 것도 있어요. 특히 학교 다닐 때 김석만 선생님께 연출로서 가져야 할 덕목이나 자세에 대해 배웠고, 그 이후에 <록키호러쇼>나 <헤드윅>을 같이 했던 이지나 연출님에게는 작품을 보는 눈, 어떤 식으로 풀어가야 할 지 방향성을 잡는 것들에 대해 배울 수 있었어요. 그때는 배우 겸 조연출이었거든요. 학교 공연할 때 이윤택 선생님도 그랬고, <갈매기> 할 때 지차트콥스키 그랬고 많은 분들이 영향을 주셨어요.

 앞으로도 계속 연출로 선 오만석씨를 볼 것 이라고 기대해요. 스스로는 어떤 연출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직은 연출로서는 걸음마 단계에요. 부족한 게 너무나 많아요. 대신 그렇기 때문에, 무지함에서 오는 것 일수도 있지만, 제가 생각하는 부분을 조금 더 있지만 어필 하려고 노력할 수 있는 건 있어요.


"헤드윅, 몇 년 안에 출연"

 당연하지만 오만석씨는 현재 배우로서의 아우라가 강합니다. 그 중에서도  <헤드윅>에서의 연기를 잊지 못하는 분들이 많아요. 지난 2005년 초연 이후로 출연을 하고 있지 않은데, 또 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할 생각이 있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어요, 아직은. 한 마흔 살 되기 전에는 하지 않을까 싶어요. 몇 년 안 남았죠(웃음). <헤드윅>은 마음을 굳게 먹고 해야 할 것 같아요. 한지 벌써 5년이 됐고,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주 많은 부분을 비워놓고 하면서 채워가는 작품이거든요. 저 나름대로는 준비를 좀 하고 하려고요. 2005년에 시작할 때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내가 과연 이걸 소화해낼 수 있는 수준의 배우인가 하고. 그래서 처음에는 안 하려고 했었고요. 지금은 혹시라도 2005년에 잘 보셨던 분들이 다시 했을 때 실망해서는 안 되니까 더 조심스럽고요. 아마, 그래도 도전을 할겁니다.

 제작사에서 제안을 하지 않았나요.
매 시즌마다(웃음). 이번에 올릴 때도 하자고 하셨고. 언제 할거냐고 계속 그러셨죠. 전 준비를 철저히 하고 오르려고요.

 오만석씨는 뮤지컬 스타를 넘어선지 오래됐고, 영화나 드라마를 넘나들고 계시죠. 그러다 보니 어떤 작품을 출연할 것 인가가 더 고민될 것 같아요. 지난해에도 <드림걸즈> 한편만 출연하셨고요. 뮤지컬, 연극 배우로서 기다리고 있는 작품이 있다면 어떤 작품인가요.
멀리 봤을 때는 <맨 오브 라만차> 같은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며칠 전에도 <맨 오브 라만차>의 연출 데이빗 스완을 만나서 이야기를 했는데 실제로는 처음 만났어요. 전 데이빗 스완을 작품을 봤고. 데이빗 스완도 제가 했던 공연을 보고 가셨고요. 만난 자리에서 제가 때가 되면 <맨 오브 라만차>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고, 그분도 흔쾌히 같이 하자고 하시더군요.
연극은 체홉 작품은 했었는데 셰익스피어 작품은 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셰익스피어 작품도 도전해보고 싶고요. 연출이 됐든, 배우가 됐든 부조리 극에도 도전해 보고 싶어요. <고도를 기다리며>나, <왕은 죽어가다> 같은 작품을 좋아하거든요. 그런 작품도 언젠가는 해보고 싶어요. 올 2월에는 연극 <이> 계획이 있고요.

 배우 오만석의 모습은 드라마인가, 혹은 뮤지컬인가에 따라 다르게 보이더군요. 스스로 나에게 맞는 장르에 대해 생각해 보신적이 있나요?
아직 모르겠어요. 어떤 장르가 나에게 맞는 건지. 아까 연출도 작품의 성격에 따라 연출을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했듯이 연기도 장르에 따라 패턴이나, 작은 건 목소리까지도 조금씩 변화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게 진짜 나에게 맞는 것인지는 찾고 있는 단계지만 가급적이면 못 찾았으면 좋겠어요. 아, 이게 나한테 맞는 옷이다라는 걸 아는 순간 안주하게 될 것 같아요. 그건 제가 바라는 바가 아니고요. 어떤 장르던지 내가 그 옷에 몸을 맞출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지, 뭐가 어울리는 지 빨리 찾아서 강점으로 보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요즘 일일 연속극을 통해 아주머니 팬들까지 많이 생기셨어요. 뮤지컬 팬들은 조금 상실감을 느낄 수도 있겠죠(웃음). 배우 본인도 대중적인 인기로 얻은 것도 있지만, 잃는 것도 있을 것 같은데요.
개인적인 시간을 잃은 것 같아요. 바쁘게 지내다 보니까 내가 충전할 시간을 많이 갖질 못하거든요. 드라마와 공연을 번갈아 하다 보니까 거의 시기가 맞물려서 하나가 끝나고 나서도 충전할 시간이 없어요. 지금 같은 경우도 드라마를 찍고 있는 와중에 공연 연출을 하고 있고, 연출 무대가 올라가자 마자 바로 연극 연습을 해야 하는 상황이고요. 그래도 아직은 체력이 괜찮아서 소화가 되는데 비워내고 채우는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어요.

 제가 봤을 때 5년 이상을 한번도 쉬지 않고 활동을 하지 않았나 싶은데요.
사실 데뷔 한 이래로 한번도 쉬어본 적이 없습니다. 올해는 고민 중이에요. 연극까지 하고 쉴까, 아니면 영화, 드라마, 공연에서 들어오는 작품들이 있어서…할까…도(웃음).

 시상식 등을 보면 보면 상당히 재치 있고, 외향적으로 보이세요. 실제 성격은 어떠신가요.
글쎄요. 전 감정적이에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제 성격을(웃음). 감정적이면서도 때로는 냉정하고, 착한 면이 있으면서도 나쁜 면이 같이 있고, 외향적인 것 같다가도 외로움을 많이 타고 내성적이고, 하루에도 몇 번씩 달라요.

 다시 연습에 들어가셔야 하니, 마지막 질문을 드릴게요. <내 마음의 풍금>을 보실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요즘 세상은 대부분 디지털화 됐어요. 새로운 밀레니엄을 외친지 10년이 지났고, 그 사이 아날로그적인 것들이 거의 다 사라졌죠. 그러다 보니 느림의 미학이 없어진 것 같아요. 무엇이든지 빨리 되지 않으면 못 견뎌 하는 거요. 옛 것을 추억하는데 있어서 자꾸 인색해 지고 새로운 것, 새로운 것만 찾고 있어요. <내 마음의 풍금>을 좋아하는 건 제 스스로가 아날로그적 감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이 작품에는 느림의 미학이 있고, 추억에 대한 아름다운 성찰, 자기 자신에 대한 성찰을 갖게 합니다. 보시는 분들에게 의미가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객석에 앉으셔서 아날로그적 감성에 젖어 보셨으면 합니다.



글: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이미지 팩토리_ 송태호(club.cyworld.com/image-fa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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