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3월에 선보인 뮤지컬 <자나, 돈트!>에서 ‘어메이징’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배역이 있다. 주인공도, 멋진 완소남의 역할도 아닌, 수다스러운 여학생을 졸졸 따라다니며 시키는 대로 하는 어리버리한 ‘벅’이 바로 그. ‘말을 하려다가 중간에 짤리는’ 장면까지 있으니 긴 대사도 좀처럼 드물었던 그 역할에 ‘어메이징’이 붙을 수 있었던 것은 배역을 200% 돋보이고 맛깔나게 했던 김남호 때문이 아니었을까. 최근 창작 뮤지컬 <스페셜 레터>에서 병장 김상호 역으로 또 다시 가장 큰 박수를 받고 있는 그가 더욱 궁금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별 보다도 더 높아요~
말년 병장 김병장

“인터뷰를 하니까 조금 실감이 나네요(웃음). 배우는 자기 공연을 볼 수 없으니 객관적일 수가 없는데 커튼콜 때 ‘그래도 뭔가 잘 하는 건가?’하고 느껴요. 또 다른 역할로 섰을 때 이만큼 박수 못 받을 것도 알고, 더 힘들 수도 있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너무 기분이 좋아요.”

바짝 자른 머리에 얼굴을 가득 채우는 웃음의 김남호는 한껏 들떠 보였다. 그의 말마따라 ‘스타 마케팅’도 없는 창작 초연작 <스페셜 레터>가 관객들의 관심 속으로 가는 견인차의 단단한 바퀴 하나가 분명 그이기 때문이다.


김상호를 처음 만나게 된 계기와 느낌이 궁금해요.(waffle 님)
“처음에는 이병 이철제 역할로 저를 생각하셨더라고요. 김상호는 지금의 이미지가 아니라 ‘우락부락한 얼굴에 덩치 큰 스물 한 살’이 본래 설정이었죠. 그런데 저도 모르게 그 역할이 끌려서 계속 원했어요. 김상호를 하면서도 ‘이건 아닌데’하는 스텝들의 걱정이 있었지만 오히려 그게 자극이 됐고, 지금은 오히려 좋다고 하셔서 즐겁고 고맙게 하고 있어요(웃음).”

올해로 데뷔 9년째가 된 그는 2001년 이후 <맘마미아>, <알타보이즈>, <젊음의 행진>, <김종욱 찾기>, <자나, 돈트!> 등 꾸준히 무대에 오르고 있다. 항상 ‘기존 캐릭터와는 다른 의외의 모습’을 매력으로 만들어 내고 마는 자신의 활약을 두고 ‘메인과 앙상블 중간에서 관객들과 호흡하기에 가장 좋은 자리에 있기 때문’라고 이야기 한다.

“뮤지컬에서 와이어리스 마이크를 차잖아요. 순서가 남녀 주인공이 1, 2번이고 그 다음이 조연 순인데, 저는 거의 3, 4번 마이크를 맡더라고요. 현재 절 감초 역할로 봐주시고 있다는 게 딱 맞는 표현 같아요. 처음에는 상처도 나름 많이 받았지만 이제는 지금까지 했던 역할들이 다 마음에 들고, 오히려 그 역할들을 통해서 사랑을 받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가수의 꿈, 뮤지컬로 시작

뮤지컬 배우가 되기로 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dana21c 님, lienu 37님 외)
“강원도 양양에서 자랐는데 산 좋고 물 좋은 곳이라서 문명의 혜택을 못 받았거든요(웃음). 뮤지컬이라는 건 전혀 알 턱도 없고 오로지 가수가 꿈이었어요. 그런데 입시 치르면서 백제예술대학 뮤지컬과 진로 부분에 가수가 있는 거에요. 그리고 그 때 백지영씨, 장우혁씨가 그 과에 있었어요. 최고였죠. 아, 여기 가면 가수 될 수 있는 길이 있나보다, 한 거죠(웃음).”

5남매 중 막내로, 큰 형과 열 다섯 살 차이가 나는 늦둥이 아들의 선택에 유독 아버지의 반대는 심했지만 ‘학교에서 1, 2등이 아니면 밖에 나가서 더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나름 장학금도 받고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도 감당하는 열혈 청년은 대학 2학년 때 본격적인 뮤지컬의 길로 들어섰다.

“학교 졸업작품으로 <그리스>의 대니 역을 했어요. 누구는 미니어처냐고(웃음). 학교 다닐 때 <미스 사이공>의 크리스, <록키호러쇼>의 프랑큰 커터 등 정말 하고 싶은 건 나름 욕심 있게 꿰차고 했고 계속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사회 나와서 너무나 많은 상처를 받았죠. 지금까지 받고 있고(웃음). 그런데 그 때 그 욕심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목숨 걸고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한번 뮤지컬로 들어서니 가수를 시작하기에 어려운 점이 있다”는 그이지만 여전히 자신의 음반을 갖는 꿈은 살아 있다.

“군대도 해군 홍보단에 가수병으로 들어갔어요. 당시 이루마 형, 마술사 이은결 형과 함께 있었죠. 제가 고참이었는데 절대 김병장처럼 후임을 괴롭히지 않았어요(웃음). 이곳은 꿈이 있는 분들이 수 차례 오디션을 봐서 들어오는 부대라 일반적인 군대와는 전혀 달라요. 사람 대 사람으로 각자 목표에 충실하는 분위기죠. 실은 앨범을 내보겠다는 욕심으로 최근까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연습도 하고 있었는데 공연과 병행하는 게 쉽진 않더라고요.”

유쾌한 긍정의 힘

평소 모습은 어떤가요?(ssonglove81 님, ardently 님 외)
“일단 밝은 게 맞아요. 예전에는 혼자 있는 거 좋아하고 모임 같은 것도 싫었고. 때로 조용히 있고 싶은데 제가 그러면 오히려 주변에서 걱정해 주셨죠. 겉으로 그렇게 보여진다고 해서 내가 항상 그래야 하나,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그렇게 보여지는 게 아니라, 저는 원래 그런 것 같아요(웃음). 지금은 밝은 제가 좋고 혼자서도 잘 놀아요(웃음). 어차피 정말 힘들 때는 힘들 수 밖에 없잖아요. 그런 게 아니라면 정말 밝게 살고 싶어요.”


다른 배우와 차별화된 자신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cbseven 님)
“본인 입으로 매력을 말하라고요?(웃음) 다른 배우분들도 이해를 못하시는 게, 도대체 김남호가 어떤 매력 때문에 주말에 사식도 공연장에 넣어주시고, 끝나고 갈 때마다 잘 챙겨주시는지, 저도 의아해서 카페에 글도 올려봤어요. ‘제가 어떻게 보이길래 절 사랑해 주시나요?’ 하고요(웃음). 모든 분들이 실력이 아니라 밝은 모습 때문이라고 대답하시더라고요. 김남호라는 배우는 에너지가 엄청나다고. 그런 에너지 때문에 밝은 기운이 보이신데요.

‘무대 위에서 너무 유쾌했는데 밖에 나와서 보니 변함이 없다’라고요. 사람이 먼저 되어야 좋은 배우가 된다고 생각해요. 배우는 사람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사람으로서 덜 되어 있다면 그거야 말로 진짜 정말 가식적인 ‘연기’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늘 하고 있죠.”

작품 특성상 크고 역동적인 안무가 많은 <스페셜레터>에서 커튼콜 때까지 지치지 않는 에너자이저의 모습으로 ‘군대스리가’를 부르는 그에게 “정말로 안 힘드냐”는 우문을 던져봤다.

“그 곡 부르고 나면 배우들이 다 난리가 나죠, 물 계속 먹고. 근데 전 가만히 앉아 있어요.전 땀이 정말 안 나거든요. 그렇게 힘들지도 않고요. 다들 신기해 해요. 며칠 전에 다른 일로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는데 제가 1분에 심장이 40회 정도 뛴데요. 보통 사람들이 7,80회고 마라톤 선수들이 60회 정도인데(웃음). 의사선생님이 저보고 운동하냐고, 이건 우리들이 바라는 이상의 몸이라고(웃음).”

흑인 근육을 가지셨다는 소문이 들릴 정도던데요.(mythgirl79 님)
“목소리가 흑인스럽다는 얘긴 들어봤는데, 근육 쪽은 처음인데요?(웃음) 따로 운동을 하진 않는데 남들보다 조금 움직여도 근육이 잡혀지는 몸이라서 참 감사하죠. 그런데 사진 찍어주신 거 보면 이놈의 허벅지나 종아리는 좀 속상해요, 조금만 길었다면(웃음). 분명 에너지를 내면서 확확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건 이런 근육이 아닐까, 하고 항상 감사하죠.”


기회가 없다는 게 아쉬워

작은 키에 대한 본인의 아쉬움은, 도전해 보기도 전에, 무언가를 보여주기도 전에 ‘김남호 캐릭터’로 역할이 나뉘는 부분에서 더해진단다.

“음악에 욕심이 있어서 그런지, 주옥 같은 뮤지컬 넘버들, 관객들을 닭살 돋게 만드는 넘버들은 대부분 주인공들의 노래잖아요. <미스 사이공>의 ‘Why God Why’나 <지킬 앤 하이드>의 ‘This is the Moment’는 저도 워낙 연습을 많이 했고 할 수 있는데 오디션장에서 연습하는 노래가 아예 다르더라고요. 캐릭터 때문에 못하게 되는 부분이 아쉽죠. 때론 저만의 캐릭터가 있어 보이는 게 속상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당분간은 부정하지 않으려고요. 아직 내공이 부족한 걸 느끼거든요.”

앞으로 가장 해 보고 싶은, 도전해 보고 싶은 배역은 무엇인가요? 진중하고 무게있는 역할은 어떠신가요? (anta99 님, tmdgml4215 님, soracall84 님)
“아직까지 밝고 경쾌한 이미지의 배역을 많이 해 왔지만, 앞으로는 진중한 역할도 해보고 싶죠. 뮤지컬 <피노키오>에서 피노키오 역할은 저 만의 자부심일 수 있겠지만, 제가 정말 잘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있어요. 목표가 되었죠. 또 <헤드윅>도요. 이미 기존 헤드윅이 눈에 익으셨던 분들이 놀랄 수도 있겠지만, <알타보이즈>에서 저만의 ‘미친 마크’를 보여줬듯이 저만의 헤드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또 관객들에게 눈물로 감동을 드리고도 싶은데, <미스터 마우스>의 인후 역할도 해 보고 싶어요.”

차기작이 ‘도장 찍기 전’이라 이야기 할 순 없지만 같이 하는 배우들도 너무나 좋아 정말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며 한껏 기대감을 나타내던 김남호에게 배우로 걸어감에 가장 큰 힘을 물었다. 그는 10년 차 배우의 여유가 아닌 신인 보다 더한 패기로 방점을 찍었다.

“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아닐까요. 많은 오디션에 떨어지면서도 계속 뮤지컬 밖에 할 수 없는 건, 그래도 나는 할 수 있다,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 언젠가는 뮤지컬에서 김남호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하겠다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고, 또 앞으로 더 힘들고 흔들릴 날이 많겠지만 배우가 자기 스스로 다 했다고 생각하면 정말 그게 끝이잖아요. 자신의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으려고요.”




글: 황선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una1@interpark.com)
사진: 다큐멘터리 허브_신혜(club.cyworld.com/docuheb)




[ⓒ 플레이DB www.playdb.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