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가능인구 5.5명당 고령자 1명을 부양하고, 65세 이상 인구의 수가 유소년 인구의 99.5%에 육박하는 나라. 30만 명이 넘는 고령자가 고독사의 위기에 처해있는 나라. 바로 2016년 대한민국이다. 더 이상 고령화 사회와 고독사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시복지재단이 2013년 서울경찰청 변사사건을 조사한 결과, 서울에서만 하루에 6건이 넘는 고독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런 현실 속에 연극 <고모를 찾습니다>가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캐나다의 국민작가 모리스 패니치(Morris Panych)의 대표작 <고모를 찾습니다>는 19년간 26개국에서 공연된 작품으로,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번 한국 초연에서는 주로 브라운관을 통해 만나볼 수 있었던 배우 정영숙이 고모 그레이스 역을,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으로 2015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은 배우 하성광이 조카 켐프 역을 맡는다.

지난 19일, 주한 캐나다대사관 1층 스코필드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구태환 연출과 정영숙•하영광 두 배우를 통해 19년 전에 캐나다에서 쓰인 작품이 2016년 한국에서 전하고자 하는 의미를 짚어볼 수 있었다.
 

#고모와 조카를 통해 전하는 고독한 사회

구태환 연출은 “원작 제목은 Vigil, ‘간호’이다. 편지를 통해 고모의 임종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조카가 30년 만에 고모를 찾아오는 이야기다. 한국 공연에서 ‘고모를 찾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바꾼 것은 ‘고모’가 가진 의미에 주목했기 때문”이라고 운을 뗐다.

“우리 사회가 모계에서 길러지는 전통이 있듯 서양도 마찬가지다. 상대적으로 고모보다 이모가 더 가깝게 느껴질 텐데 왜 그 많은 가족과 친척 중에 ‘고모’일까, 왜 ‘조카’일까 생각해봤다. 먼 친척으로 느껴지는 고모의 임종을 조카가 맞이하러 간다는 설정을 통해 우리 사회의 고립되고 고독한 단면을 더 잘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이번 작품을 통해 처음으로 2인극에 도전하는 정영숙은 “외로움은 비단 중년이나 노년만의 것이 아니라, 바쁜 삶 속에 쫓기듯 살아가는 청년들을 비롯해 현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가진 아픔”이라고 전했다. 그녀는 이 작품을 통해 외로움을 품은 서로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출연을 결심했다.

“시아버지를 10년간 모셨지만, 저희와 함께 사는 동안에도 아버지의 외로움은 크지 않았을까. 바쁜 삶 속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적었다. 함께 살더라도 지워낼 수 없는 고독이 있는 것처럼, 소외된 삶 속에 생기는 외로움은 매우 크리라 생각한다.”
 

2인극이지만 고모 그레이스에 비해 압도적으로 대사가 많은 ‘켐프’ 역의 하성광은 ‘대사의 양’에도 원작자의 의도가 담겨있다고 답했다.

“켐프는 대사가 굉장히 많은데, 왜 고모는 대사가 없을까 고민했다. 아마도 말하고 싶은 사람과 듣고 싶은 사람이 만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말하고 싶어도 들어줄 사람이 없었던 사람과, 듣고 싶어도 이야기를 해줄 사람이 없었던 두 사람이 만난 거다. 서로 왜 말하고 싶었는지, 왜 듣고 싶었는지를 잘 녹여내면 두 사람 간의 호흡을 잘 풀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연극 <고모를 찾습니다>는 주인공 켐프가 고모 그레이스로부터 곧 세상을 뜰 것 같다는 편지를 받고 임종을 지키기 위해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고모를 찾아가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30년 만에 찾아온 조카를 앞에 두고 고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둘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함께하게 된다. 해를 넘겨 새해를 함께 지내던 어느 날, 경찰이 이 두 사람을 방문해 놀라운 소식을 전한다.

이 작품은 비단 중년과 노년의 외로움만을 시사하는 것이 아니라, 켐프의 유년시절을 통해 성장환경이 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담아내기도 한다. 부모에게 양육 받을 기회를 상실하는 아픔, 고통을 성인이 되면서 그대로 간직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삶과 죽음, 그리고 외로움 등 다소 어두운 이야기를 빠른 템포로 유쾌하게 전하는 연극 <고모를 찾습니다>는 오는 11월 22일부터 12월 11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글: 조경은 기자 (매거진 플레이디비 kejo@interpark.com)
사진: 김윤희 (www.alstudi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