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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소년의 은밀하고 위험한 글쓰기, 연극 ‘맨 끝줄 소년’

작성일2019.10.24 조회수5153

“어떤 애야?”
“맨 끝 줄에 앉아. …좀 특이하지. 제대로 된 아이거든.”

맞춤법이 엉망인 학생들의 작문 숙제를 검토하는 데 지친 한 교사는 어느 날 제법 잘 쓰인 글을 발견한다. 교실 맨 끝 줄에 앉는 소년 클라우디오가 쓴 글이다. 아직 부족한 점도 많지만, 어딘지 특별한 인상을 남기는 소년의 글에 매료된 교사는 그에게 디킨스, 톨스토이, 제임스 조이스 등의 책을 빌려주며 남다른 관심을 기울인다.

문제는, 소년의 작문이 같은 반 학생 라파의 집을 은밀히 관찰해 기록한 글이라는 것이다. 수학공부를 도와주겠다는 핑계로 라파에게 접근한 소년은 그 집에서 훔쳐본 라파 부모의 일상을 글로 써내려 가고, 그 작문을 검사하는 교사는 타인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균열을 함께 들여다보며 묘한 죄책감과 위태로움을 느낀다.

지난 2015년 국내 첫 무대에 올라 2017년 앙코르 공연까지 큰 사랑을 받았던 연극 ‘맨 끝줄 소년’이 2년 만에 무대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주인공 클라우디오 역에 전박찬과 함께 안창현이 새로 캐스팅됐고, 문학선생 헤르만 역 박윤희, 헤르만의 부인 후아나 역 우미화, 라파의 어머니 에스테르 역 김현영 등이 다시 참여한다. 이들은 지난 23일 열린 프레스콜에서 작품의 전막을 시연한 후 출연 소감을 밝혔다.

‘맨 끝줄 소년’은 스페인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가 2006년 발표한 희곡이다. 수학과 글쓰기 외엔 관심이 없는 소년 클라우디오와 그의 작문 실력을 알아본 문학교사의 이야기를 그린 이 작품은 실제와 허구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며 펼쳐지는 글쓰기 속으로, 위험한 욕망과 그로 인한 윤리적 갈등 속으로, 또 삶과 예술에 대한 여러 수학·철학·문학적 은유 속으로 관객들을 초대한다.

이 연극은 원작에 대한 깊은 이해와 감각적인 연출로 2015년 국내 초연을 성공시킨 故 김동현 연출의 유작이기도 하다. 올해 공연에서는 초연 당시 드라마투르그로 참여했던 손원정이 2017년에 이어 다시 연출을 맡았다.

손원정 연출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김동현 연출이 만들어놓은 큰 틀을 충실하게 따르려 했다”고 이번 공연의 방향을 밝혔다. 국내 초연에서 공유했던 발상과 미장센을 그대로 유지하되, 라파 부모들의 일상을 좀 더 현실감 있게 보여주려고 했다고.

이 연극을 ‘현실과 예술에 관한 이야기’라고 정의한 손 연출은 “예술이 현실을 어떻게 그리고 반영하는지, 또 우리가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 안에서 무엇을 욕망하며 또 때로는 어떻게 배신당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동시에 지극히 평범한 중산층 부부의 현실에 숨은 적당한 허위와 균열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올해 공연에서의 다른 변화는 두 명의 클라우디오가 참여한다는 것이다. 초연 때부터 큰 호평을 이끌어낸 전박찬이 세 번째로 클라우디오로 분하고, 여기에 영화와 연극을 오가며 활동해온 안창현이 새로 합류했다.

세 번째 공연에 대해 "솔직히 부담감이 컸다"고 속내를 토로한 전박찬은 “한 작품을 세 번 한 경험도 많지 않았고, 초연 때와는 다른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파트너 안창현 배우가 있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안창현 배우가 제시했을 때 탐나서 '나도 따라해보면 어떨까'라고 얘기할 만큼 오순도순 잘 해왔다”고 연습 과정을 전했다.

이번 공연을 ‘맨 끝줄 소년’에 참여하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는 그는 “이 작품은 자꾸 욕심나고, 또 어느 순간 외로워지기도 하는 작품이다. 극중 ‘이제 끝이다’라고 말하는 클라우디오의 대사처럼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바람도 함께 밝혔다.

문학교사 헤르만 역 박윤희와 그의 아내 후아나 역 우미화는 이 작품의 여러 숨은 의미를 짚었다. 이 연극의 인기에 대해 “다음 순간 어떤 장면이 펼쳐질지 모르는 스릴러적 요소가 있어서 관객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는 박윤희는 “연습하며 나와 아내의 관계도 돌아보게 된다. 이 극은 적당히 예의를 갖추면서 동시에 서로 적당히 냉소하고 인정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큰 분란은 없는 평범한 부부들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고 말했다.

우미화는 극중 미술품을 두고 ‘뭘 의미하는 거야'라고 묻는 헤르만에게 ‘아무것도 없어. 그냥 존재하는 거야'라고 답하는 후아나의 대사를 예로 들며 “연극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냥 그 물질성으로 관객과 대면하는 것이다. 연출도 자기 생각이 있고 배우들도 함께 분석해서 극을 만들어가지만, 결국 관객이 공동창작자가 되어 각자 느낀 것들을 가져가는 것 같다”며 “클라우디오의 대사 중에도 ’그냥 느끼는 거에요’라는 말이 있는데, 단순한 말이지만 삶과 문학과 예술과 연극에 모두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며 이번 작품을 통해서 다시금 곱씹게 된 점들을 나눴다.

연극 '맨 끝줄 소년'은 24일 개막해 12월 1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서 볼 수 있다.

글: 박인아 기자(iapark@interpark.com)
사진: 예술의전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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