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있는 성폭력 피해자들 외침을 외면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분들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목적으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지난 25일, 오후 3시가 되자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인도에 연극·뮤지컬을 사랑하는 관객들이 삽시간에 모여들었다. 이날 관객들은 공연계 성폭력 피해자들의 ‘미투(#Me Too)운동’을 응원하고 지지하며 혐의가 드러난 사람들에 대한 비판과 그들의 처벌을 요구하는 '연극뮤지컬관객#위드유 집회'를 열었다.
 
최근 연극계에 성추행, 성폭행을 폭로하는 미투 운동이 시작돼 배우 이명행, 조재현, 조민기, 한명구, 연출가 이윤택, 오태석 등의 혐의가 제기됐다.
 

이날 집회 주최 측은 "지난 몇 주 동안 공연계에 많은 성폭력 피해 제보들이 이어졌다. 심적 고통을 기꺼이 부담하면서까지 용기를 낸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고 외쳤다. 그들은 혐의가 드러난 사람들에 대한 비판과 처벌을 촉구하며, 피해자에 대한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집회는 별도의 신청 없이, 준비와 당일 진행까지 모두 관객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졌다. 공연을 좋아하는 일반 관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집회의 스태프는 "직업과 나이가 다른 일반인 3명이 뜻을 같이해 이번 집회 모임 준비를 시작했고, 관객들의 십시일반 후원금과 각 분야의 스태프 지원자들과 함께 집회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이날 공연장 대신 거리로 나온 관객들은 "범죄자는 자숙 말고 자수하라. 성범죄자들은 관객이 거부한다"며 일침을 놓았다.
 
온라인으로 사전에 신청받은 자유 발언자 중 연극과 뮤지컬을 사랑하는 일반 관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관객은 "꼬리에 꼬리 무는 성범죄자들의 소식에 분노에 잠을 못 이루며,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고 운을 떼며, "공연계를 떠나지 않고 범죄자들의 몰락을 지켜보겠다. 그들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3시에 시작된 집회는 주말 낮 공연을 보고 집회에 참여하는 관객들의 참여가 늘어나 열기가 점점 뜨거워졌다. 집행부는 이날 600여 장의 전단을 준비했다. 검은 마스크를 쓴 채 거리를 메운 집회 참석자들은 '피해자들의 용기 있는 폭로를 지지합니다', '공연계 성폭력 아웃(OUT)이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시위에 참여했다. 공연계 종사자, 대학생, 10대 청소년, 현직 초등학교 교사 등 현장 자유 발언자들의 소신 있는 발언에 집회 참가자들의 응원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즉석에서 자유 발언을 한 공연계 전공자라고 자신을 밝힌 20대 여성은 "공연에서 많은 위로와 응원을 얻고 전공으로 삼게 됐다"고 밝히며, "나에게 힘이 되어준 공연 뒤에 얼마나 추악하고 끔찍한 일들이 숨어 있었는지 그동안 깨닫지 못했다. 그저 이 바닥은 원래 이런 거라고, 이런 걸 한 번쯤 겪어 봐야 진정한 예술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거라고 스스로 피하고 자신을 미워했다. 그동안 나만 유난 떠는 일이라고 입을 다물기도 했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숨지 않겠다. 썩은 뿌리가 뽑힐 때까지 침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현장 집회 참가자 29세 이 모 씨는 "주말이나 시간이 될 때마다 공연을 보러 다니는 관객이다.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예전부터 공연계에 암암리에 이런(성폭력) 소문이 났었다. 이번에 집회를 한다고 해서, 조금이나마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고 참여하게 된 소감을 밝혔다. 그는 "마음이 아프지만, 이제라도 미투 운동이 시작돼서 다행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공연계가 이번 일을 계기로 바뀌면 좋겠다. 공연을 너무 좋아하지만, 앞으로 공연의 선택이 줄어들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집회 한편에서는 연극관계자들이 관객들의 애정 어린 응원에 감사를 표하며, '감사합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함께 집회에 동참했다. 연극관계자는 "관객들에게 감사해서 연극 선후배들과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는 큰 충돌 없이 마무리했으며, 주최 측은 “생업을 포기하고 집회를 준비했다"며, "향후 추가 집회 계획은 없지만, 뜻을 이어서 하실 분이 있다면 준비 과정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전했으며, "앞으로 공연계에 올바른 변화가 이뤄지도록 대중들이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글/사진: 강진이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jini21@interpar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