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보고 나면 친구끼리, 가족끼리 이야기할 대화의 소재가 많이 생겨나고, 열띤 토론이 다시 시작될 거에요. 이 작품은 뇌가 섹시해지는 공연입니다.”
 
지난 24일 진행된 연극 <신인류의 백분토론> 프레스콜에서 배우 정선아가 전한 말이다. 유명 TV 토론프로그램 형식을 차용해 각계 전문가들이 치열한 토론을 벌이는 모습을 담아낸 연극 <신인류의 백분토론>이 무대에 올랐다. 지난 2월 2주간의 짧은 공연을 거친 후 완성도를 높여 선보이는 버전이다.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민준호 연출이 <우리 노래방가서 얘기 좀 할까><뜨거운 여름> 등에 이어 작/연출한 <신인류의 백분토론>은 기생충 학자, 종교철학과 출신 개그맨, 천문학 박사, 뇌과학자 등 다방면의 전문가들이 각기 창조론과 진화론을 옹호하며 벌이는 100분간의 토론을 그린다.
 

이날 약 60분동안 공개된 공연 장면은 리얼하면서도 코믹했다. 탁구 경기를 벌이듯 쉼없이 설전을 주고받는 배우들은 실제로 인기 강사나 학자들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들만큼 현실적이면서도 개성 있는 연기를 펼쳤다. 의상과 헤어, 말투 등 세세한 특징이 눈길을 끌었다. 흥분해서 상대방의 말을 끊고 순서를 가로채거나 어이없는 농담을 던지는 모습은 정치인들의 토론 장면을 떠올리게 했고, “예나 지금이나 쥐새끼가 문제야” 등의 대사도 웃음을 자아냈다.
 
작품의 매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각 인물들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각종 영상 및 통계자료를 활용해서 전개하는 이론이 지적 흥미를 자극했다. 메타인지와 빅뱅이론, 인공지능과 지적설계론 등 역사와 종교, 천문학과 생물학을 아우르는 다양한 이론이 펼쳐졌다.
 

민준호 연출은 <백분토론>을 보다가 패널들이 자기 주장만 하면서 싸우는 모습을 보고 이 작품을 착안했다고 말했다. 그들의 코믹한 모습을 공연에 담아내고 싶었다는 것. 그는 이 작품을 ‘말로 하는 서커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원래 간다 작품 중에 몸을 쓰는 극이 많았는데, 배우들이 나이 들다 보니 이들을 위해 몸이 아닌 말로만 펼쳐지는 서커스를 구상하게 됐어요”라고.
 
이번 작품을 만들기 위해 5~6년 전부터 다큐멘터리만 수 백 편을 봤다는 민준호 연출은 “(전문가들이 토론에서 하는 말들이) 사실 다 그 순간에만 맞는 말이고, 멀리서 봤을 때는 맞는 말이 아닌 경우가 많아요. 그 순간순간들을 내가 편집한다고 생각했습니다”라며 “우리가 관객 분들 대신 싸우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어요. 주인공들이 논쟁하는 모습을 보며 속 시원한 기분을 느끼실 수도 있고, 동시에 객관적인 판단도 해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라고 전했다.
 

배우들 역시 이 작품을 소화하기 위해 각 분야 전문가들의 강의 영상을 비롯해 많은 책과 자료를 공부했다고. 일부 배우들은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에서 참고한 구체적인 사람들의 이름도 언급했다. 뇌과학자 나대수 역의 오용은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와 뇌과학자 김대식이 강의하는 모습을 참고했고, 무신론자들의 선봉장 전진기 역의 진선규는 남성연대 대표였던 故 성재기의 말투를 참고했다고.
 
<종교는 왜 과학이 되려 하는가><세계종교 둘러보기><무신론 기자, 크리스찬 기자에게 따지다> 등 배우들이 언급한 일부 책들도 이들이 그간 얼마나 많은 공부를 했는지 짐작하게 했다. 사회자 신석기 역의 정재헌은 “공연이 진짜 토론에 가까워서 창조론이나 진화론에 대해 관심있는 분들이 재미있게 보실 것 같아요. 또 이런 내용을 공부로만 접하던 청소년들이 공부하다 치쳤을 때 봐도 재미있게 지식을 접할 수 있을 거에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무대에서 치열한 언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도 배우들에게 부담이었다. 기생충 박사 현충희 역의 유연은 “실시간으로 상처를 주고받고 리액션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나 자신과도, 상대 배우와도 공연을 적당히 하자고 타협할 수가 없어요”라고 말했고, 진선규 역시 “아무리 무대에 오르기 전에 마음을 다잡아도 논쟁을 하다 보면 실제로 상처를 주고 받게 돼서 힘들어요”라고 토로했다.
 
<신인류의 백분토론>은 여러 모로 배우들에게는 쉽지 않은 공연이지만, 그만큼 관객들은 얻어갈 것이 많을 듯하다. 공연은 오는 7월 9일까지 아트원씨어터 3관에서 펼쳐진다.
 
글: 박인아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iapark@interpark.com)
사진: 배경훈(Mr.Hodol@Mr-Hod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