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에서 유를 만드는 사람 작곡가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보통 아이를 낳는다고 표현할 만큼 창조를 하는 작업이에요. 그래서 정치, 경제, 역사, 문화 등 여러 분야부터 주변의 모든 것에 관심이 많아야 합니다. 물론 타고나는 것도 있지만 끊임없이 공부를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저는 타고난 작곡가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 리처드 로저스 같은 사람이고 스티븐 손드하임은 정말 공부하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해요. 모두 대단한 사람들이죠.
가장 중요한 건 지금은 그저 그런 사람일지 몰라도 늘 좋은 사람이 되길 노력하는 사람, 지금 보다 10년 후가, 10년 후 보다 죽기 전이 더 좋은 사람일 수 있는 사람, 작곡가는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악인 아버지의 영향 아버지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국악과 김영재 교수세요. 그래서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국악을 들어왔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성가대를 하면서 서양음악이 갖고 있는, 국악과는 다른 아름다움에 감탄했었고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곡 쓰기 숙제를 했는데, 정말 재미있는 겁니다. 악기를 다뤄도 금방 싫증을 내는 저에게 아버지는 작곡을 권유해 주셨는데, 아버지가 잘 보신 거에요(웃음). 국악예고에 진학해 곡을 써서 콩쿨에 1등을 하기도 하면서 작곡에 재미를 붙였습니다.

대학시절 뮤지컬과의 만남 같은 대학 학생이었던 장유정 연출이 뮤지컬 작곡가를 찾는다고 해서 함께 작업을 한 게 뮤지컬과의 첫 만남입니다. 첫 작품은 뮤지컬 <송산야화>였고, 두 번째 작품은 지금 <오, 당신이 잠든 사이>의 전신인 <드레싱 해드릴까요?>에요. <드레싱…>은 장유정 연출의 졸업작품이기도 했죠. 시간이 남아서 2주 동안 만든 작품이 <김종욱 찾기>였습니다. 단돈 20만원으로 만든 작품이었죠(웃음). 이 작품을 보고 재미있다고 생각하신 공연계 분들의 협조로 2006년 대학로에서 공연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추진력 추진력이 있어서 작업을 빨리 하는 편이에요. 막히면 그 상황을 빨리 벗어나려고 해요. 만약 작가와의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했다고 판단되면 작가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정 안 되면, ‘생각했던 뮤지컬이나 가요 스타일이 무엇이냐’고 묻기도 해요. 작가들이 이야기를 하면 아, 그런 스타일을 원하는구나, 하고 감을 잡습니다. 그리고 빨리 진행을 하죠.

오기,칭찬 오기가 있는 편이기도 해요.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곡이 ‘베드로의 노래’인데 원래 짧은 이 곡을 스태프나 배우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날 집에 가서 6페이지를 쓰고, 다음날 곡을 들려줬습니다. 배우가 정말 기뻐하면서 연습을 많이 해 왔어요. 그런 욕심쟁이들을 만나면 순간적으로 마찰이 있을 수 있지만 서로 시너지 효과를 냅니다. 또 칭찬을 받으면 더 열심히, 신나 하면서 곡을 써 내려가기도 하고요(웃음). <소리도둑>은 그래서 정말 재미있게 작업했고, 음악도 정말 잘 나온 작품이었어요.



지금 하고 있는 작품 저는 지금 하고 있는 작품이 제일 좋아요. 할아버지 할머니는 첫 손주가 예쁘고, 엄마는 막내가 예쁘다고 합니다. 막내가 안쓰럽고 짠하니까요. 지금 하고 있는 작품이 내 인생 최고라고 생각하며 항상 곡을 만들어요. 내일 죽을지도 모르니 항상 지금 최선을 다해야지요.




국악에서 R&B까지 지금까지 여러 음악에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국악을 많이 듣고 자랐고, 트로트도 굉장히 좋아해요. 트로트 뮤지컬을 준비하고 있을 만큼(웃음). 클래식, 월트디즈니 노래를 좋아하고, 한때 R&B에 심취하기도 했어요. 발라드도 좋아하죠. 그래서 제 곡은 조금 조금씩 여러 분위기가 있습니다. 적시적소에 알맞은 음악들을 넣으려고 해요.

튀지 않고 잘 맞는 옷 내용과 가사에 딱 맞는 곡, 딱 맞는 옷 같은 노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드라마를 이해 잘한다, 이런 말 들었을 때 제일 기분이 좋아요. 뮤지컬에서는 음악 하나만 좋아도 상황과 캐릭터에 맞지 않으면 쓸모가 없거든요. 김혜성만의 따뜻함이 있고 혼자 튀려고 하지 않는, 상황과 가사를 잘 흡수하는 음악을 추구합니다.





너무 많아서 적어왔습니다^^

<사운드오브뮤직> ‘도레미송’_ 이 작품의 ‘도레미송’같은 노래가 정말 만들기 어려워요.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멜로디를 가졌어요. ‘마이 페이버릿 싱스’(My Favorite Things) ‘에델바이스’ 등 모두가 정말 예쁜 곡들입니다. 리처드 로저스는 천재라고 생각해요.

<지킬앤하이드> ‘원스어펀어드림’(Once upon a dream)_ 이 곡을 분석하면 정말 간단한 구조이지만, 정말 좋은 곡이에요. 마찬가지로 <미스 사이공>의 ‘와이 갓 와이’(Why God, Why)도 심플한 곡인데, 그 상황과 잘 맞아 떨어져서 좋아합니다.

<렌트> ‘원송글로리’(One song Glory)_ 제가 건강 염려증이 좀 있는데, 이 노래를 들을 때 마다 난 죽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웃음). 나만의 ‘원송글로리’를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신이 번쩍 나죠.

<더 라이트 인 더 피아자>_ 이 작품의 노래는 오케스트레이션의 세계에 빠지게 해주죠.

조지 거쉬인 ‘아이 갓 리듬’(I Got Rhythm)_ 이런 곡이 정말 쓰기 어려운 곡입니다. 따라 부르긴 얼마나 쉬운 지 몰라요. 가사도 훌륭하고요. 재즈 기반의 탄탄한 멜로디가 정말 부럽습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_ 뮤지컬은 아니지만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내가 정말 소피가 돼서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게 하더군요. 정말 행복했어요. 이 곡은 그 순간만큼은 꿈을 꾸게 하고, 하늘을 날게 해주죠.

<인어공주> ‘파트오브유어월드’(Part Of Your world)_ 초등학교 때 애니메이션으로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전율을 느꼈어요. 모래요정 바람돌이, 붕붕, 이런 애니메이션을 보다, 월트디즈니의 인어공주를 보고, 거기에 나오는 노래를 들었을 때 그 충격이란.

<뱃보이> ‘홈퍼유’(Home for You)_엄마가 말을 못하는 아들에게 계속 말을 거는 장면이 있어요. 나중엔 아들이 허밍으로 부르는데, 대위법으로 진행되죠.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노래에 담아서 포인트를 짚어주는 게 뮤지컬인데, 그에 맞는 노래였어요.

<드림걸즈> ‘아임 체인징’(I’m changing)_ <드림걸즈>의 노래는 모두 좋아합니다. ‘앤 아임 텔링 유 아임 낫 고잉’(And I'm telling you I'm not going) 라는 명곡을 다들 아시겠지만, 또 하나를 꼽으라면 ‘아임 체인징’. 이 노래를 들으면 너무 눈물이 납니다.





개그맨 시험에 지원하다 대학 시절에 개그맨 시험을 본 적이 있어요. 정말로 재미있는 선배가 있어서 둘이 개그를 짰는데, 시험 전 날 그 선배가 참가를 못한다고 하는 겁니다. 너무 아깝잖아요. 그래서 혼자 가서 즉흥적으로 했죠(웃음). 진짜 붙을 줄 알았는데 떨어지더군요. 그 당시 작곡 선생님이 “네가 합격하면 널 잡지 않겠다. 그런데 떨어지면 동아 콩쿨에 나가라”라고 하셨어요. 떨어졌으니 약속대로 콩쿨에 나갔고, 거기서 상을 받았어요. 내 길은 이 길인가 보다 싶었습니다(웃음).

즉흥적으로 쓴 곡 <김종욱 찾기>의 ‘오, 이젠’이라는 곡이 원래는 없었어요. 그런데 장유정 작가가 글을 쓰다 갑자기 곡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고, 전 흐름이 끊긴다고 반대를 했어요. “내가 유치하게 써줄거야”하며 그 자리에서 쓱쓱 쓴 게 그 곡이죠. 그런데 그런 곡이 반응이 좋을 때면 희열을 느낍니다(웃음).




하루하루 더 좋은 사람 되기 좋은 곡을 쓰고 싶고, 그러기 위해선 하루하루 좋은 사람이 돼야 하는 것. 정답은 알고 있습니다. 실행하기가 쉽지 않지만요.
멋있는 인품이 있는, 늙은 작곡가가 됐으면 좋겠어요. 나이가 들수록 음악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정말 마음 좋은 타샤 튜터 같은 곡을 일구는 할머니가 되는 게 꿈입니다.



작곡가에 대한 시선 한국 사람들은 참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뮤지컬을 봐도, 그 음악이 어땠나 보단 내용이 어땠는지에 훨씬 관심을 가지니까요. 작곡가로서 조금 서운할 때도 있습니다. 작품을 해도, 뮤지컬임에도 불구하고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없을 때가 더 많죠. 어떤 배우, 연출, 음악감독, 그 이하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소한 사항이지만, 음악에 대해서도 작사/작곡이라고 표기합니다. 저도 제가 더 어리니까 예의라고 생각해서 순서를 그렇게 해왔지만, 미국에서 그렇게 쓰니 함께 하는 사람이 짜증을 내더군요. 당연히 작곡가를 먼저 써야 한다고. 물론 유명한 작사가는 먼저 넣기도 하지만 보통은 작곡을 먼저 표기하는 게 당연시 합니다. 이런 작은 점에서부터, 공연계 전반에 걸쳐 작곡가, 작가에 대한 관심이나 언급이 없단 건 작곡가로서 속상한 일입니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 작품에 들어갈 때 계약 사항도 작곡가에 대한 처우가 열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창작자는 계약금으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로열티로 살아가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 점을 중요시 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특히 어린 작곡가는 더욱 나쁜 계약을 하곤 합니다.

저작권 문제도 우리나라는 사각지대인 것 같습니다. 저도 없는 <김종욱 찾기> MR를 뮤지컬 학생이 가지고 있는 걸 보기도 했으니까요.

결론은, 창작을 존중해 주셨으면 합니다. 작곡가는 엄마거든요. 아이가 한 명 탄생하는데 엄마는 쏙 빠지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스태프가 있기 때문에 배우가 있단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뮤지컬 작곡가라고 하면 돈을 바라보고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일을 좋아하고 열정이 있기 때문에 하는 일입니다. 창작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주는 일이 뮤지컬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정리: 송지혜 기자(매거진 플레이디비 song@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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