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당신은 모르실거야'

아내와 연극 '당신은 모르실거야' 를 보고 왔습니다. 연극제목이 워낙 익숙하죠? 혜은이씨가 불렀던 노래제목입니다. 그 다음 가사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 어떤 연극인지 눈치채시겠죠? [연극 당신은 모르실거야]는 서투르고 투박하지만 한 여자를 사랑했던 한 남자의 사랑을 노래한 연극입니다.

[연극 당신은 모르실거야]는 소극장 천공의성에서 공연중인데

대학로에서 삼청동 가는 길로 따라 올라가시다보면 혜화초등학교 건너편에 있더군요.

소극장 '천공의성'에 들어서자 [연극 당신은 모르실거야] 포스터가 눈에 보입니다.

천공의성은 지하에 위치한 작은 소극장이여서

대기실도 무척 작았지만 내려가는 계단을 이쁘게 꾸며놓았습니다.

[연극 당신은 모르실거야]의 무대사진입니다. 일반적으로 공연이 시작되기전 배우가 나와 분위기를 잡아주는데 [연극 당신은 모르실거야]는 관계자분이 나오시더니 정말 짧게 "공연중 핸드폰 꺼주시고 촬영은 안됩니다. 지금부터 공연 시작하겠습니다. "라고 말씀하시고 휙 들어가버리시는데 남다름에 웃음이 났습니다. 그런데 공연중에 누군가 연신 사진촬영을 하는 소리가 들려서 신경쓰이더군요. 정말 이러시면 안되십니다. ㅜㅜ

[연극 당신은 모르실거야]는 무척이나 실험적 성격이 강한 연극이었습니다.

그리고 정통연극에 가까웠다는 느낌이었고 정말 소극장 연극이구나 싶었던 느낌?

공연이 시작되자 무대는 병원 중환자실로 변하고 커텐 뒤로는 오로지 산소호홉기에 의지한 채 식물인간으로 15년째 누워있는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한 여자만을 사랑한 서석구씨, 주인공 석구씨는 물리적인 현상은 정상적으로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5년전 어느 특정한 하루에 머문채 하루종일 병원에서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을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대체 석구씨가 왜 그런 것인지 연극은 몇명의 관찰자(딸과 매제)를 내세워 석구씨의 과거로 돌아가보는 스토리 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극은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석구씨와 그의 아내의 만남을 하나씩 하나씩 시대별로 거슬러 올라가 보여줍니다. 주인공 석구씨는 60~70년대 우리 아버지상을 보여줍니다. 사랑해도 사랑한다는 표현조차 쑥쓰러워 하지 못하고 그저 거칠어 보이지만 속은 따스했던 그런 아버지상이죠.

[연극 당신은 모르실거야]의 멀티맨, 멀티녀 두분 입니다. 관찰자 역입니다.

극중에서 딸로 매제로 의사로 클럽사장 등 다양한 역을 맡아서 바쁘게 움직이십니다.

[연극 당신은 모르실거야]의 여주인공 석구씨 아내

고등학생부터 할머니에 이르는 폭넓은 연령대를 잘 소화해내시더라구요

[연극 당신은 모르실거야] 어느새 막이 끝나고 배우들이 나와서 인사를 하시는 모습

석구씨역을 맡으신 배우님 목소리 짱이심~ ㅎㅎ

60년대 성우 스타일로 연기하실 때 웃었어요.

정말 잘 어울리시던..ㅎㅎ

제가 대학로 소극장을 처음 갔던 건 고등학교때였습니다. 당시 친구형님이 연극배우셔서 형님의 영향으로 대학로 소극장을 다니기 시작했죠. 벌써 지금으로부터 아주 오래된 이야기네요. 당시 대학로 소극장은 정말 열악했었습니다. 좌석도 특별히 없어서 맨바닥에 방석 하나 깔아놓구 앉아서 보기도 했고 지금처럼 다양한 무대장치도 없이 그저 배우들이 연기로 승부하던 시절이었죠.

특별한 무대장치가 없어도 배우들의 연기에 따라 다양한 공간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연극만이 가진 장점인 것 같아요. 그리고 정말 가까운 거리에서 배우들과 함께 호홉하고 그들의 눈빛, 손짓 하나 하나까지 느낄 수 있는 소극장이 가지는 최대의 매력이죠. 또 워낙 너나 할 것없이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이어서 특별한 무대장치 따윈 엄두도 못내던 시절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연극 당신은 모르실거야]는 오래전 그 시절의 소극장을 느끼게 해주더군요. 오로지 배우들만의 열정과 연기로 승부하던 그 시절이요. [연극 당신은 모르실거야] 초입부는 조금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병원에서의 장면과 석구씨의 과거로 넘어가기 전의 상황들이 조금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구요. 하지만 공연이 중반으로 넘어서면서부터 아니, 석구씨와 그의 아내의 회상으로 넘어가면서 그 두 사람의 연애시절 이야기에 관객은 미소를 짓게 됩니다. 아주 오래전 통금시절이 나오고 정말 어렵게 살던 60~70년대의 일상들이 스크린처럼 관객의 눈 앞에 펼쳐지면서 직접 겪어는 못봤어도 들었던 이야기들로 인해 공감이 가죠.

지금의 한국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다정하고 애정표현도 자연스럽게 하지만 과거 한국 남성들은 그러질 못했습니다. 그저 무뚝뚝하고 거칠기만 했던 그 시절의 아버지상, 하지만 그 시절에도 뜨거운 사랑이 있었고 요즘처럼 과감한 애정표현은 못했어도 사랑하는 여자를 안아주던 아버지들, [연극 당신은 모르실거야]는 마치 60~70년대 애정영화 한편을 보는 듯한 느낌으로 관객들에게 다가섭니다.

한가지 인상적이었던 건, [연극 당신은 모르실거야]에서 관객들이 웃음을 터트리던 장면은 배우들의 연기가 아니라 연극에 사용된 소품들이었습니다. [연극 당신은 모르실거야]에서 사용되는 모든 소품들은 종이로 만들어졌는데 마치 아이들이 소꿉장난에나 사용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렇다고 유치하다는 느낌이 아니라 신선했고 그 기발한 아이디어에 새로운 소품들이 등장할 때마다 관객들은 웃음을 터트립니다.

[연극 당신은 모르실거야]의 석구씨는 사고로 인해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아내를 15년째 변함없이 곁에서 지켜주는 그런 남편입니다. 그런데 왜 15년전의 기억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을까요? 그 의문을 아시고 싶으신 분은 대학로 [천공의 성]으로 가셔서 직접 알아내시길~ ㅎㅎ

[연극 당신은 모르실거야]는 기존 대학로에서 흔히 보던 작품들과는 성향이 확실히 다른 면을 보여줍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실험정신이 강한 연극이고 복고풍의 연극이라고 해야할까요? 아주 오래된 영화 한편을 무대위에서 만나게 되는 즐거움을 관객들에게 선사하죠. 불교에서 말하길 부부의 인연이 맺어지려면 삼천겁의 인연이 필요하다고 석구씨와 그의 아내가 만나 결혼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서 저 두사람은 정말 인연이었나보다 라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과거의 향수가 그리우신 분들, 또는 과거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어떻게 연애를 하셨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으신 분들에게 추천해드립니다.

연극이 끝날 때쯤이면 왜 연극의 제목이 [당신은 모르실거야]인지 아시게 될거예요~ ^^

아마 연극을 보시기 전엔 모르실겁니다. ㅎㅎ

대학로 '천공의 성'으로 가는 약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