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너도 북어지!'하던 시가 떠오르기 마련인데, 실제 내용은 그것과는 관계가 없다. 어쨌거나 북어대가리를 보면서 '선택'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다. 주인공과 친구는 창고지기를 20년 가까이 해온 사람들인데, 딱 부러지는 성격에다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그러면서도 마음 착한 주인공이 있다. 반면 친구는 창고지기 일을 지루해하며 무분별하고 어린아이 같다. 내용은 깊게 설명할 것이 없고, 결국 주인공은 친구 때문에 창고의 물건중 하나를 잘못 보내게 되는데, 이러한 실수 때문에 주인공은 그 동안의 나름대로 쌓아왔던 신념이 무너지게 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상자가 잘못 보내진 결과는 '아무 일도 없다'는 것이다. 이 경우 주인공이 겪게 되는 딜레마를 다루고 있다.
"만약 내가 그 동안 해왔던 철칙과 신념이 세상에 아무 영향도 주지 않고 있었다면? 이 규칙을 깬다 해도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면?" 내가 보기에는 이것은 바로 사람의 양심이다. 아무도 없는 새벽 3시의 횡단보도. 그 곳의 신호를 지키는 것은 바보짓일까? 주인공은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결국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것을 다시 선택하지만, 이미 그의 신념은 원래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내 마음 속의 등불과 같은 신념이 아니라, 신념이 또 한번 꺾였을 때에도 아무 일 없는 세상을 보기 두려운 의무감에서의 신념이 된 것이다.
또 하나의 선택은 주인공의 친구에게서 나타난다. 주인공처럼 답답하게 사는 것은 싫은 그다. 결국 노름꾼인 트럭 운전수의 딸과 결혼하면서 트럭운전을 배우게 되는데, 이것은 원칙이 아니라 '배짱'에 기반한 삶이다. 트럭운전수처럼 차라리 노련하고 약아빠졌다면 모르겠지만, 그는 어수룩하고 창고지기 생활을 20년 해 온 사람이다. 주인공처럼 단조로운 삶이 싫다고 불안한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 맞을까? 노름으로 모든 것을 잃은 그가 노름꾼과 같이 떠난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다. 그는 잔소리하는 주인공을 '의붓어미'라며 탓했지만, 창고를 떠나면서 누구보다 크게 웃었던 사람이지만, 나중에는 주인공을 제일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인 느낌은 다음과 같다.
1. 북어대가리로 국을 끓이는 냄새가 좋았다. 역시 연극은 이런 소소한 '진짜'가 있어야 재미있다.
2. 배우들의 목소리가 컸다. 특히 트럭운전수 역할. 물론 좋은 의미에서 컸다는 말이다.
3. 주인공 성격이 철두철미하고 칼 같은 것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트럭 운전수의 빵빵 소리에 일어난다는 것이 조금 어색했다(아주 조금). 주인공이 일어나는 장면을 보면서 군필자라면 누구나 자신의 이등병 생활을 떠올리게 될 텐데, 보통은 기상노래가 들리지 않아도 일정 시간이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지기 마련이다. 주인공의 성격을 보아서는 알람시계소리에 일어나거나 먼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상연작품 : 연극 '북어대가리'
* 날짜 : 3월 6일 (금)
* 시간 : 오후 8시
* 장소 :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갑작스럽게 가게 되어서 연극 내용을 보지 못하고 갔다. 단지 이 작품의 극작가가 '이강백'이라는 말만 보고 이 연극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예전에 교과서에서 이강백의 '파수꾼'을 가르칠 뻔 했던 인연으로 보게 된 공연작 '북어대가리'. 괜시리 제목이 파격적이라고 생각해봤다. '대가리'라는 속어가 들어가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다.
조카와 같이 보러 갔다. 사촌언니가 직접 차로 데려다 주셔서 지금까지 대학로에 연극을 보러 온 것 중에 가장 편하게 왔다. 길치인 내가 걷지 않고 차로 오니 이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사촌 언니, 쵝오~!! 동숭아트센터는 이번이 처음이다. 대학로에서 이렇게 큰 공연장이 있는지 몰랐다.
현재 동숭아트센터에서는 여러작품이 상연 중이다. '북어대가리' 간판이 멀리서도 보였다.
사촌동생과 같이 '북어대가리' 플래카드를 사이에 두고 찍었다. 인물샷은 자신 없어서리~~;;;
창고에서 생활하는 두 친구 사이의 갈등을 그렸다. 떠나려는 자와 남으려는 자 사이의 갈등을 '알레고리' 기법으로 그렸다고 했는데, 문학적인 의미(소설)로 접근을 했을 때 알레고리의 개념이 연극 속에서의 개념과 살짝 차이가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우화적(동식물 혹은 사물을 주인공으로)으로 알레고리를 기법을 적용을 하는데, 이 작품은 풍자와 교훈에 더 초점을 두지 않았나 싶었다. 가운데 여자분이 자신과 결혼할 남자의 친구를 유혹하는 장면에서 숨을 멈출 것 같은 정적과 남자분들의 침이 꼴깍꼴깍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예쁜 얼굴을 아니였는데, 그녀의 간드러진 목소리와 그녀의 몸매가 너무 매혹적이었다. 여자인 내가 보아도 친구의 아내가 될 여인이지만 남자라면 그녀의 유혹을 물리치기에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녀를 보면서 나 또한 다이어트의 시급한 필요성에 대해서 생각을 하였다.
--슬프게도 공연 도중 부재중 전화로 직장에서 걸려온 전화를 봐버렸다. 그래서 왜 전화가 왔는가에 대한 궁금증으로 인해서 작품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밤늦은 시간의 직장으로부터 전화는 직장인을 불행하게 만든다.
이 작품을 보면서 '명불허전'이라는 말과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