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에서 감각적인 연출을 보여주었던 ‘장유정’연출의 연극 데뷔작 ‘멜로드라마’.
작품은 ‘불륜’을 소재로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통속적인 소재를 이용하고 있지만 불륜을 미화하지 않으며 흔한 아침 드라마처럼 피해자와 가해자의 대립은 빠져있다. 오직 그 안에서 발견되는 인간들의 진실 된 갈등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얼핏 보면 뻔한 설정들이다.
남들 보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결혼 10년차 부부인 ‘찬일’과 ‘서경’. 하지만 그 부부는 서로에게 닿지 않는 대화만 하며 곪을 데로 곪아있다.
어떠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자인 ‘서경’, 이런 서경에게 지칠대로 지쳐있었던 무능력한 남편 ‘찬일’.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지능이 멈춰버린 아이같은 ‘미현’, 그녀의 동생이자 심장이식을 받고 시한부 인생이 된 ‘재현’. 그들과 교통사고를 같이 당해 똑같이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소이’. 소이는 죽은 그녀의 오빠 심장을 이식한 재현에게 심장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다 주며 재현과 약혼을 한다.
우연한 만남들이 모여 찬일은 아내 서경과는 전혀 다른 아이같이 순수한 미현에게 끌려고, 서경은 재현에게 끌리게 된다. 하지만 찬일은 “부부관계에는 지켜야할 의무와 책임이 있지만 사랑에는 의무가 없다.”고 얘기하고, 서경은 자신을 향해 끝없이 찾아오는 재현에게 “결혼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약속인데 그걸 깨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며 거부한다.
관객들에게 연극 ‘멜로드라마’는 과거 어느 영화나 아침드라마에서 볼 수 있었던 다소 진부한 스토리로 느낄 수는 있지만 배우들의 호연으로 각 배역이 겪는 상황에 맞게 관객들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게 해준다.
찬일 역을 맡은 최대훈 배우는 넉살스러운 찬일 역의 특유의 케릭터를 잘 빚어냈으며 뿜어내기보다는 다른 배우의 에너지를 흡수하며 전체적인 조화를 만드는 연기가 일품이었으며, 미현역의 전경수 배우는 순순함과 슬픔을 적절히 오가며 섬세한 감정을 탁월히 표현해 냈다.(유일한 원캐스팅인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거 같다.)
서경 역의 배해선 배우는 워낙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뮤지컬 배우인데 병적인 철두철미와 워크홀릭의 케릭터를 너무 잘 표현해주어 관객으로서 찬일이 느꼈을 감정과 행동 등의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거 같다.
재현 역의 조강현 배우는 배역이 느끼는 격한 감정들을 잘 표현해주 객석으로 전달하였다.(조금 거칠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하지만 다소 아쉬운 점도 있다면 시선의 불안함이 느껴졌던 장면이 다소 있었다. 특히 손을 어떻게 처리할지 몰라 하는 게 너무 보여서 공연을 보는 동안 조강현 배우의 손이 너무 불안했다.
가장 아쉬웠던 게 소이 역에 김나미 배우였다. 연기를 떠나 목관리가 전혀 안됐는지 첫 등장부터 대사를 듣는 동안 갈린 목소리가 나와서 듣는 게 너무 거슬렸다. (배우의 몸은 배우 것이 아닌데 말이다.) 다행히 나중가면서 목이 조금 풀렸는지 거슬림은 사라졌으며 소이 역의 케릭터와 감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장유정 연출의 작품은 ‘김종욱 찾기’, ‘오! 당신이 잠든 사이(오당신)’, ‘형제는 용감했다’ 등 대부분 봤었는데 항상 감각적인 스토리와 연출이 좋았었다. 이번 연극은 스토리 자체가 감각적이지만 대신 장유정 연출의 특유 위트 있는 대사들이 살아있으며 극 중간 중간에 웃음코드를 잘 배치해 놓았다. 작품 속에서 미술품을 통해 인물의 정서와 감정을 극대화하는 표현도 너무 좋았다. 이런 표현과 맞물려 조명과 음향 디자인이 너무 절묘했던 거 같다. 그 덕에 무대가 더 입체감이 있었고 긴장감을 끝가지 잡아주며 장면들이 매끄럽게 이어진 거 같다.
사람들은 결혼을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약속으로 여긴다. 하지만 그 약속을 지키는 부부들이 몇 명이나 있을까. 이 작품에서는 불륜을 미화하지 않고 불륜이 되어버린 상황 그리고 그 상황이 주는 갈등, 갈등을 겪는 사람들의 감정과 입장에 초점이 맞춰진 거 같다. 사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똑같은데 사람의 입장과 상황에 따라 사랑이 되고 불륜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런 입장과 상황이 영향을 주는 것은 결국 남들에 의한 시선을 의식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남들에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마음이 원하는 데로 가게 두었다면...서정은 재현에게 가고 찬일과 미현이 같이 살게 되었다면 서로 아파하지 않고 네 명의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았을까....물론 그랬다면 소이는 슬픔으로 가득해지겠지만 말이다. 적어도 네명은 행복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