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만하면 기사화되는 독거노인의 고독사를 다루고 있다. 포스터에도 보이는 세진빌라라는 곳을 배경으로 이 곳에서 나름의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주민들이 언젠가부터 풍기는 악취에 시달리다, 정작 원인을 알 것 같은 순간부터는 외면하기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제목 아래 붙어있는 부제 '아무도 모른다'는 인물들의 이러한 행동을 암시하는 문구이기도 한 셈이다.

요즘 이런저런 이슈로 (독거)노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회자되고 있으니, 이런 주제와 소재를 다루는 연극으로는 시의적절한 편이다. 게다가 70분이라는 짧은 공연시간에도 불구하고 빌라 공동체로부터도 은근하게 또는 스스로 소외되려 하는 노인의 처지와 그의 어려운 경제적 환경 및 거주 여건 같은 것들을 극 속에 녹여내어 보여주었다는 사실은 이 작품이 단순하게 노인의 불쌍한 처지에 집중하려 하지는 않았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악취의 원인을 모르는 것처럼 굴면서 서로에게 불평을 해대던 빌라의 주민들이 사실은 냄새가 나기 시작했던 때부터 대략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태도를 보인 주민 중에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나선다는 부녀회장과 '공동체'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살며 지식인으로서의 권위를 내세우던 장교수까지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은 세진빌라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를 구성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가 이 문제를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했다. 또한 더 이상 냄새를 참을 수 없고 우연히 누군가 이 사건의 실체를 직접 확인하였던 순간에도, 또 다른 누군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것을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결국 직접 마주보아야 하는 시점에서는 모두가 같은 생각으로 스스로 행동하는 것을 포기해버렸다. 그리고는 사회복지사가 방문하는 날이니 그들의 할 일을 빼앗으면 안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물론 최종적으로는 당연히 사회 시스템이 책임져야하는 게 맞지만 바로 앞에서 실체를 드러내 보여주는 모습마저 외면하는 사람들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이 마지막 장면 역시 연금 하나 만들어놓고는 노인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하는 순진한(또는 악랄한?) 사람들을 묘사하는 부분이었다.

보고 있노라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노인 문제에 대한 외면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으로서 의미가 상당하지만,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연극이 사회의 겉과 속을 그대로 옮길 수는 없다는 점이 연극 '냄새 풍기기'가 가진 가장 큰 약점을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극 속 등장인물들이 할머니의 처지를 외면한다는 것이 우리 사회 전체 수준에서 사람들이 노인 문제를 외면함을 상징한다 하더라도, 개인과 개인으로서의 직접적인 인연이 전혀 없는 사회 문제와 끼니나 명절 쇠는 것을 챙길 정도로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던 사람 사이의 문제는 서로 접근하는 방식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예컨대 독거노인이 지하 단칸방에서 한참 보이지 않는다고 할 때 그 분이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던지 별 관심이 없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자주 접촉을 했던 관계라면 어찌 여러 사람이 한 번에 그렇게 외면할 수 있을까. 법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빌라의 주민들이 할머니의 죽음에 대해 물어야 하는 책임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외면한다는 점이 쉽게 이해가지는 않았다. 직접 방문을 열어 죽음을 내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점이 겁 난다면 경찰에 신고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할 일을 다 할 수 있고, 많은 고독사가 이런 방식으로 밝혀지지 않던가. 그런데도 신고조차 하지 않고 모두가 외면해버리는 것이 실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이웃으로서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도덕적 책임을 걱정할 수는 있겠지만, 최후의 발견마저 사회복지사에게 떠넘겼을 때의 책임은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더 커질 터이니 이 역시 조금만 더 생각해본다면 당연히 신고를 했어야 한다.

이 작품의 주제에도 해당할 수 있는 부분일텐데 여기서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행동을 모든 등장인물들이 한번에 보여주니, 중요한 고리 하나가 빠져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들의 행동에 대하여 어떤 결정적인 단서 하나가 아쉬웠다.

배우들의 연기는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분은 역설적으로 가장 등장시간이 짧았던 할머니 역의 배소희 씨였는데, 짧은 등장 몇 번으로 고독한 노인의 뒷모습이라던가 이미 쪼글아들어버린 그의 일생이 느껴졌다. 게다가 배우분의 사진을 보니 몇십 살은 올려서 연기한 것 같던데, 어찌나 자연스럽던지...

반면 할머니를 제외한 인물들이 모두 작품의 시작부터 끝까지 거의 내내 등장했고 비슷한 비중을 갖고 있었던 중에서도 중요한 이벤트를 많이 담당했던 어떤 역 같은 경우는 (미안하게도) 보거나 듣기가 힘들 정도였다. 중2병을 연상시키는 대사들이 계속 되는 것이야 대본에 따랐을 터이니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씹거나 오물거리는 발음이 몇 번이나 계속되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건가. 다른 배우들의 열연과 너무 차이가 나서 좀 많이 눈에 띄었다.

연극 '냄새 풍기기'가 갖는 사회적 의미가 작지 않으니 잘 됐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런 만큼 아쉬웠던 부분도 크게 다가오는데, 위에서 내용이나 연기 상의 아쉬운 점을 언급했지만 사실 가장 크게 다가온 부분은 오프닝이었다. 빌라 주민들이 모두 등장하여 쿵짝 거리는 음악에 맞춰 각자 춤을 추다 한 곳을 응시하는 그 오프닝... 뭐, 물론 그들 모두가 무언가를 외면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겠지만,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나 의미에 전혀 걸맞지 않은 음악과 춤이다. 특히 음악은 도대체 이 작품에서 사용하기 위하여 들었을 후보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질 정도로 어색해서, 듣고 있으니 내가 다 어디에 숨고 싶어질 정도였다. 오프닝 장면만 놓고 보자면 '대학로에서 오픈런으로 장기공연하는 60분짜리 코미디 연극'이 딱 연상되는 수준... 물론 그 이후 극이 진행되면서 어느 정도 이미지를 회복하기는 하지만 오프닝을 보면서는 그냥 나갈까 싶은 생각까지 들었으니, 제발 바라건대 바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