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환영. 선돌 극장에서 공연하고 있습니다.
무척 기대되는 작품이었어요.
김이설 작가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에다가 연극인 대상 연기상,대상,스텝상을 수상한 작품이라서 더욱~
작품 자체가 소설을 베이스로 해서인지 장면 장면을 연기하는 게 마치 슬라이드 필름을 보는 듯 했어요.
이 건 아마도 배우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네요.
연기 장면은 분절적이고 시간대도 카오스지만 공연이 끝나면 머리 속에서 재조합됩니다.
여 주인공 윤영 역을 맡은 김 설 배우 참 대단하시네요!
왜 이 공연이 19금인지 알겠습니다.
전 이 작품을 보면서 참 폭력적이다 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가난한 집의 장녀로 태어나 아버지는 일찍 돌아 가시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던 윤영은
여동생과 남동생 마저 책임지며 그야말로 노동으로 뼈가 굵어지며 컸습니다.
잘나고 똑똑하고 세상에 자랑하고 싶던 여동생은 정선 도박판에서 창녀가 되어 생사를 알 수 없고,
남동생은 하는 일 없이 빈둥대며 지내면서 암까지 걸려 집안의 돈을 다 빨아 먹습니다.
그녀에겐 가족이란 존재가 마치 흡혈귀와 같아요.
고시원에서 마주쳐서 알게 된 남자와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지만 남자는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핑계로 일을 하지 않고,
태어난 아이조차 걸음을 걷지 못하는 장애아였습니다.
남편이 점점 공부도 하지 않고 아기 돌보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싫던 윤영은 아기를 시어머니께 맡기고
남편을 직업소개소를 통해 취업을 시키지만 그만 그도 출근 사흘만에 다리를 다쳐 버립니다.
윤영은 열심히 일하며 살아 왔습니다.
그녀는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죄로 이런 저런 육체 노동을 하며 살아 왔고 그 것이 당연한 줄 알고 살았습니다.
집에서 멀어 픽업 차량으로 출퇴근을 해야 하는 왕백숙집에서 일당 7만원을 받으며 12시간 노동에
2끼 식사를 제공받던 윤영은 어느 날 별채의 존재를 알게 되는데 시간당 10만원을 받을 수 있는
성매매를 시작하게 됩니다.
사장이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이 어려운거지 나중에는 덤덤해지는거라고.
윤영은 몸을 팔고 돈을 받습니다.
점점 변해가는 그녀는 점점 참을성도 잃어가죠.
짐승같은 인내력과 고통을 참아내던 그녀였는데 말입니다.
삶의 모든 순간이 물속에 잠겨 숨이 막혀 죽을 듯 해도 그녀는 끝까지 삶을 살아냅니다.
여러가지 일이 있었으나 그녀는 생존을 택하죠.
성매매면 어떻고 삼겹살집에서 돼지 누린내에 쩔어 살면 어떻고 왕백숙집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가면 어떻냐고....
그녀의 선택을 저는 어리석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사장이 말했듯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는 시스템이 아주 옛날부터 존재해 왔었던거죠.
그런 시스템을 유지,발전시키는 것도 세상을 살면서 만나는 숱한 사람들인거니까요.
성매매라는 것이 고대부터 현대까지 지속되어 왔기에 미래에도 없어지지 않을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그리고 제 생각엔 성매매를 하기로 결정한 것은 윤영의 선택이었다고 봐요.
그래서 그녀도 시스템을 유지하는 하나의 요소가 된거라고.
지금 제가 보는 세상은 흑과 백으로 나뉠 수가 없다라고 생각됩니다.
예전엔 그 건 틀렸어! 그건 맞아! 하고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점점 더 세상을 알 수가 없고
선도 흐릿해지기만 합니다.
윤영의 세상이 회색이었듯 제 세상도 회색인가 봐요.
세상 어디에 희망이 있단 말입니까?
세상 누구를 믿으라는건가요?
자기 자신도 알지 못 하고 통제하지 못 하는데 우린 오히려 타인을 너무 쉽게 믿는 건 아닐까요?
서로의 존재가 그냥 상처와 흉터만 만들게 되는 상태에서 사람은 과연 사랑을 말하고 행동할까요?
사람이 늙는다는 건 희망이 없다는 걸 자각할 때 부터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윤영의 처지만 희망이 없는 건 아니죠.
대한민국 국민 누구를 붙잡고 물어도 절망적인 말만 할겁니다.
그래서 저는 윤영이 불쌍하다라든가 왜 그런 선택을 했어? 하고 묻지 않으려구요.
그녀는 살기로 마음 먹었고 흔들리는 실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 같은 세상속에서 존재하기로 한거니까.
질기디 질긴 생명력으로 매춘을 하든 노동을 하든 그녀는 살아내고 있으니까.
절망스러운 상황속에서 불평하기 보다 부지런히 살고 있으니까,저는 그녀를 응원하겠습니다.
당신만이 그런 게 아니야.
라고 언젠가 다른 윤영을 만나게 되면 얘기해 주고 싶어요.
그리고 나에게도.
노인의 주름살 하나 하나에 스토리가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봤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비밀 정도는 다 가지고 사람은 늙어가는거죠.
더러워도 못 해 먹을 짓거리를 한다고 해도 우리,살아 갑시다.
개 똥 밭에 굴러서 온 몸에서 개 똥 가루와 개 똥 냄새가 난다고 해도 말입니다.
누군가는 희망을 가지고 세상을 찬란하게 보며 살아가더라도 그 건 타인의 삶 일 뿐.
붙잡을 것 없이 허우적대며 숨이 막히더라도......살아가요!
모든 윤영을 응원합니다.
모든 왕사장을,왕사장의 아들을,윤영의 부모형제를,자식을,그녀를 개같이 대하던 손님 새끼들마저 응원합니다.
그런 카오스가 인생이니까.
계절은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모든 것은 변하고 잔인한 것은 시간이죠.
그런겁니다.
삶이라는 게.
궁금하던 작품 잘 보고 왔습니다,덕분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