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오주영은 초등학교 5학년 산호세 심포니 지휘자에게 발탁되어 11살에 산호세심포니와
협연을 시작으로 서울시립교향악단, KBS교향악단, 부산시립교향악단, 뉴욕심포니오케스트라, 로스앤젤레스필하모닉, 콜로라도심포니, 타코마심포니, 상트페테르부르크필하모닉, 프라하방송교향악단, 우크라이나국립오케스트라, 폴란드국립오케스트라, 체코레디오심포니오케스트라, 독일 라이프찌히컴머 필하모니 등 다수 협연하였다.
1996년 '뉴욕의영콘서트아티스트국제음악콩쿠르'에서 14세의 최연소자 우승으로 세계
무대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1998년 일본의 17개 대기업 후원으로 진행된 <아시안의 꿈>이란 페스티벌에 한국인 최초 선정 동경, 오사카 등 일본 데뷔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2003년 뉴욕의 카네기홀 데뷔 독주회에서 뉴욕의 콘서트 리뷰지로부터 “그는 천재적인 기질뿐만 아니라 진정한 거장의 테크닉과 음악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으며, 열정적인 연주자” 란 평을 받았다.
2006년 6월 한국의 5개 오케스트라와 순회 협연 및 도쿄에서 독주회를 가졌다. 또한 폴란드국립오케스트라와의 협연에서는 청중들의 열광적인 호응에 힘입어 연주 직후 재 초청을 받았다.
2007년에는 미국 영아티스트콩쿠르에서 현악 부분 전체 우승을 하였다.
또한, 런던 최고의 실내악 홀로 알려진 위그모어홀의 데뷔 콘서트에서 무려 6번의 커튼 콜을 받을 정도로 런던 음악 애호가들을 열광 시켰다.
특히 세계적인 지휘자 쥬빈 메타로부터 특별한 재능의 바이올리니스트란 찬사를 받았다.
줄리어드 음대에서 명교수인 故도로시 딜레이와 강효를 사사했고, 독일의 쾰른음대에서 2년간 세계적인 바이올린 교수 자카르 브론을 사사, 국내에서는 김복수 선생을 사사했다.
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 (한국인 최초 남자단원) 종신 단원으로 활동하였고, 현재 카타르필하모닉 악장과 Violin Solist로 활동하고 있다.
1996년 '뉴욕의영콘서트아티스트국제음악콩쿠르'에서 14세의 최연소자 우승
2007년에는 미국 영아티스트콩쿠르에서 현악 부분 전체 우승